콩닥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신랑 입장을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는 게 정말 실감이 나질 않는다. 난 결혼하기 전부터 남자라고 해서 조선시대 양반처럼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사는 삶을 꿈꾸지는 않았다. 여성들도 남자와 똑같이 사회생활을 한다면 남성도 가사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연애시절부터 내 주위 동료들의 아내들처럼 요리하는것을 좋아하거나 남편을 살뜰하게 챙기는 스타일은 아니었기에 처음부터 그런 부분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였는지 결혼 초기부터 요리를 하고 밥을 차리는 일은 모름지기 내 일이 되어버렸다.
깨소금 냄새가 한창이던 신혼 초 때는 내가 아내를 위해 요리를 만들고 밥을 차리는 일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입시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아내는 매일같이 밤늦게 퇴근을 해서집으로 돌아왔고 시험 때는 주말도 없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아내가 집안 살림까지 신경 쓴다는 것은 사실 힘든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 직장에서 퇴근을 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몸이 천근만근이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나보다 연약한 아내가 더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퇴근 후에도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아내를 위해 정성껏 요리를 준비했다.
그런데 그런 내 행동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아내는 학원 일을 그만두고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긴 지금도 여전히 요리를 하거나 밥을 차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결혼 후 13년이 된 지금까지도 나는 아내에게 따뜻한 밥을 얻어먹어 본 기억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 생일이라는 날이 있어서 1년에 한 번은 아내가 지은 밥과 미역국으로 밥을 얻어먹기는 하는데 오래간만에 요리를 해서인지 희한하게 그날은 아내의 신경이 바짝 곤두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내가 오해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느 날부턴가 나는 속에 있던 이러한 불만을 아내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도 다른 남편들처럼 아내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 좀 먹어보고 싶어."
나는 내심 아내가 '미안해, 여보. 앞으로는 나도 요리에 관심을 가져볼게.' 하는 정도의 말은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내 주위에 결혼한 여자들 보면 나처럼 남편 생각 많이 하는 사람도 없어! 그깟 밥이 뭐 그리 대수라고 그런 걸로 서운해해?"
너무나도 당당한 표정과 말투로 화를 내는 아내. 지금 생각해도 진짜 어이가 없다.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아내에게 밥에 대한 나의 철학과 생각을 심오하게 얘기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나는 밥 차리기 싫어!'였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아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혹시 '나는 당신의 밥 따위나 챙기는 밥순이가 아니야!'라는 것은 아닐까?
말로만 남편을 많이 생각하고 정작 행동은 하지 않는 내 아내. 여전히 결혼 13년 차가 된 지금도 아내와 난 식사 때만 되면 서로 눈치게임을 한다. 밥을 먹자고 먼저 얘기하는 사람이 밥을 차리게 될 확률이 높아서 아무리 배가 고파도 상대가 먼저 밥 먹자는 얘기를 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상대에게 말을 걸지 않는 우리 부부의 눈치게임!
어느덧 내 나이도 반세기를 향해 가고 있는데 나는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이어나가야 하는 걸까? 집에서 밥도 한 끼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는 처량한 내 신세. 이래서 예전 어른들이 음식 솜씨가 좋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해야 한다는 얘기들을 하셨나 보다. 웃기는 얘기지만 우리 아내는 다시 태어나도 나랑 결혼을 하겠단다. 그러면서 나를 향해 은근히 무언의 압박을 가한다.
'당신도 다시 태어나면 나랑 결혼할 거지?'라는 눈빛으로.......
매번 그런 상황이 연출될 때마다 참 난감하고 부담스럽다. 특히 그 눈빛.......
'여보, 난 다시 태어나면 요리 잘하고 밥 잘 챙겨주는 여자랑 결혼할 거야!'
혹시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신랑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먼저 결혼한 선배로써 조언을 해주고 싶다.
요리를 싫어하는 여성이랑은 절대 결혼하지 마라. 만약 죽어도 그 여성과 결혼을 해야겠다면 결혼 후에는 늘 외식할 각오를 해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결혼 생활 내내 누구(?)처럼 따뜻한 밥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