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힘은 위대하다
10년 만에 이직을 하며,
나는 ‘공기’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생존을 위해 숨 쉬는 공기 말고,
조직 안에서 흐르는 공기,
사람 사이에 스며드는 공기.
그리고
그 공기에 나를 맞춰보려 애썼던 시간들에 대해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눈빛,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분위기,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이해하는 암묵의 룰들.
처음엔 그 공기가 너무 낯설고 차가웠지만,
나는 그 안에 나만의 호흡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사우나의 냉탕과 열탕에 익숙해지듯,
시간이란 위대한 힘을 또 한 번 깨달았다.
그건 적응이라는 이름의 평화였다.
시간이 지나 공통분모가 늘어나면서,
말귀가 트이기 시작했다.
마치 영어 듣기가 트이는 순간처럼,
말보다 먼저 그 사람의 리듬이 느껴졌고,
표정과 손짓 속에서 맥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같이 웃고, 같이 놀라고,
때로는 조심스럽게 한마디 거들며
나도 이 공기 속에 조금은 스며든 사람처럼 느껴졌다.
처음 몇 해 동안은 정규직 인사이동 시즌이 오면
나는 늘 구경꾼이었다.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무슨 맥락인지도 알지 못한 채
회식 자리에 앉아 박수를 치곤 했다.
이곳의 인사이동은 유난했다.
공채 출신들에게 정기 인사는
조직 내 ‘인정의 집약’이었으니까.
물론 나에겐 꼭 필요하거나 간절한 일이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직장인에게는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라는 걸 안다.
가족의 생계와 노후가 걸린 구조 속에서,
‘직장’은 생존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실 나는 그 이벤트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적은 없다.
하지만 여기는,
그 이벤트 자체가 조직을 움직이는 에너지였다.
나는 그 안에서,
애초에 그런 목표를 품지 않은 나 자신이
더 이질적인 존재처럼 느껴졌다.
인정받고 싶었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의 인정은
이 구조 속엔 없다는 걸
너무 오래, 너무 깊이 느껴야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이름을 아는 사람도 생기고, 함께 일하며 정든 얼굴도 늘었다.
어느 날부터는 인사이동을
‘구경’이 아니라 ‘공감하며 바라보게’ 되었다.
축하해줄 사람, 위로해줄 사람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건 영원히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이곳에도 나를 붙잡아준 몇 가지가 있었다.
그건 인정이었을 수도,
루틴이었을 수도,
몰입이었을 수도 있다.
좋은 사람도 있었고, 좋은 순간도 있었다.
무엇보다 일이 정말 좋았다.
인정 욕구가 강했던 나는
비딩에서 이겼을 때의 쾌감,
고객이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줄 때의 그 감각을 온몸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렇게,
고객의 인정과 시장의 반응을 먹고 자라났다.
그런인정이 나를 춤추게 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일했고,
내 호흡으로 버텼고,
적응이라는 이름으로 평화를 느끼며 살아냈다.
지금 와서 생각한다.
‘그건 어쩌면 평화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품었던 나만의 온기’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