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꼭 이렇게 써야 했나?”라는 질문 앞에서
이 시리즈를 쓰며
내가 가장 많이 떠올린 문장이 하나 있다.
“이거 꼭 이렇게까지 써야 했나?”
그건 누군가가 나에게 던질 것 같아서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게 가장 먼저 물었던 말이었다.
조직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은
항상 조심스럽다.
누구를 겨냥하지 않아도,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안다.
그 불편함은 글의 톤 때문이 아니라,
그 안의 감정이 진심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래서 나는 종종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이 글을 조직 안의 누군가가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마도 반응은 이 세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첫째, 불편함.
“이거 꼭 이렇게까지 써야 했나?”
말로 꺼내지 않았던 걸 누군가 정확히 짚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던 사람일수록 더 불편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 반응은,
이 글을 쓰기 전 내가 내게 가장 먼저 품었던 감정이기도 하다.
둘째, 조용한 공감.
“사실 나도 이방인이었어.”
정규직이든 아니든,
조직 안에서 늘 중심에 있었다고 느낀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내 얘기를 썼지만,
그 안에서 자기감정을 발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셋째, 묘한 존중.
“쉽지 않은 걸 꺼냈구나.”
이야기의 결이 단정하고 정직하면,
비판조차도 비난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건 타인을 향한 글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해 되묻는 말이라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이 모든 가능성을 알면서도
나는 이 글을 쓰기로 했다.
그건,
말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오래 삼킨 진심이었고,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굳이 탓을 하자면,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자존감에 꽤 큰 상처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기록하면서,
이 감정에 머물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게 이 글을 쓰는 가장 솔직한 이유다.
왜냐하면, 나도 안다.
떠나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조직은 그 말을 진심으로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더 조심했고,
그래서 더 정제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하고 남기는 건,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때의 나를 이해시키기 위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처럼 이런 이유로 퇴사한 사람은 많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그 누구보다 오래 참고, 오래 애썼던 사람 중 하나였다는 걸.
10년.
그건 정말 길고 긴, 인내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이렇게라도 써야만 했다.
누구를 향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때의 나를 위해 쓰는 글이 있다면
그건 이렇게라도 쓰여야 한다는 걸
나는 이 시리즈를 쓰며 배웠다.
#조직생활 #퇴사후기 #일하는여자 #기록의힘 #감정의기록 #브런치글쓰기 #회복의서사 #중간의메모#감정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