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나의 편인 엄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식은 부모를 필요로 할 때 효자가 되는 걸까?”
아니, 사실… 나 자신이 그렇다.
나는 나쁜 딸이다.
혼자 외로이 지내는 엄마에게
안부 전화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바쁘니까, 다음에 하지 뭐.”
그렇게 넘긴 날이 많았다.
업무 전화는 제시간에 받으면서,
엄마 전화에는 “거절”을 눌렀다.
아니, 여러 번.
그렇게 미뤄진 말들이 내 안에 켜켜이 쌓였다.
그런데 요즘, 내가 힘들어지자
자꾸만 엄마가 생각났다.
하소연할 곳이 필요했고,
누군가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있어도 되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수시로 전화를 걸었고,
엄마를 보러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늘 그 자리에 있던 엄마가 있었다.
긴 대화도 필요 없었다.
따뜻한 밥 한 끼,
아무 말 없이 바라봐주는 눈빛,
그리고 “그래도 괜찮다”, “애썼다”는 짧은 한마디.
그 순간 깨달았다.
내 마음의 안식처,
내 자존감의 근원은 엄마였구나.
엄마가 필요해서 찾아온 딸을
수많은 날들을 외로이 보냈을 우리엄마는
엄마는 엄마의 아기를 그저 반겨주셨다.
“왜 이제 왔니”라는 말도 없었다.
그저 품어주셨다.
그런데 나는 생각했다.
이런 게 효도라면,
나는 왜 그걸 잘 못했을까.
그게 부끄럽기도 하고,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아까운 엄마의 날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앞으로 잘하면 다행이다.
오늘의 글은 나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시작이 조금 늦더라도,
엄마는 언제나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일 테니까.
모든 사람이 엄마를 필요로 하는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는 모두 그런 시간을 지나왔다.
한 아이가 태어나 5살이 되기 전까지의 시간.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 시기의 아이는 이미 평생의 효도를 다 한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가
부모에게 해주는 가장 큰 효도는,
바로 **‘존재 그 자체’**다.
눈빛 하나, 웃음 하나,
서툰 손짓 하나에도
부모는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지친 하루가 위로받고,
삶의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그 시기, 아이는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효’를 건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예전의 다짐이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존재만으로도 고맙다고 말했던 나의 다짐.
그리고 이제는 믿고 싶다.
나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엄마에게는 충분히 기쁜 딸이었을 거라고.
그 믿음 사이에서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오늘도,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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