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공포증을 아시나요?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새를 무서워했다. 그중에서도 닭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다. 어린 시절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를 아이들이 귀엽다고 만지고, 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바퀴벌레가 작다고 귀여운 게 아닌 것처럼 병아리도 작다고 귀여운 게 아니었다. 고백하자면, 병아리도 무서웠다. 옛날에는 시장에서(그때는 마트가 없었다.) 살아있는 닭을 닭장에 넣어두고 팔았다.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도 그 골목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소리가 들리는 것도 싫었기 때문이다. 시장의 시끌벅적한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신경이 그쪽으로 향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날은 오빠와 둘이 엄마 심부름으로 시장에 갔던 날이다. 하필이면 닭이 있는 골목을 꼭 지나야 만 했다. (지금에 와 생각하니 다른 길이 있었지만 그 길로 향했던 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꼭 지나야 만 하는 그 골목 입구에서 발이 땅에 붙어버렸다.
“겨울아, 눈 감아.”
슈퍼맨의 목소리가 이보다 멋질쏘냐. 오빠는 동생의 손을 잡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래, 듬직한 우리 오빠가 있었지. 자기는 동생을 놀리고 괴롭혀도(사실 딱히 괴롭힌 기억은 없지만 엄청 많이 놀리긴 했다.) 다른 아이가 동생을 괴롭히거나 놀리면 끝까지 응징하고 복수해 주었던 우리 오빠. 오빠만 믿을게. 오빠 등뒤에 꼭 붙어서 눈을 감고 한 발씩 앞으로 갔다.
“오빠, 다 와가?”
”아니, 아직. “
앞이 안 보인다는 불안함에다 무서운 닭들이 있는 곳을 지나간다는 생각까지 더해지자 나무늘보도 재촉할 속도로 한걸음 한걸음 내디뎠다.
꼬꼬댁거리는 소리가 가깝게 들리는 건 환청인가 실제인가 이상하네 생각하며 눈을 뜨는 순간 바로 앞에 닭장이 보였다. 웃기려고 준비하던 오빠는 너무 놀라 소리도 잘 못 지르는 동생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지금도 몹시 미안해하지만, 닭장 바로 앞은 아니었다고, 네가 그렇게까지 무서워할 줄은 몰랐다며 애처로운 항변을 한다. 하지만 좁은 시장 골목길에서 멀어봤자 얼마나 멀었겠는가. 장난기 많은 오빠는 동생을 놀려주고 싶은 마음과 충격요법으로 닭공포증을 극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랬다고 하지만, 그날 아빠엄마에게 눈물, 콧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나고 또 혼이 났다. 끝나지 않는 그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가족 모두에게 나쁜 오빠라고 구박을 받으며, 명절날 결혼하라는 소리를 듣듯이 만날 때마다 되풀이되어 오빠를 괴롭힌다.
닭을 왜 무서워하느냐고, 새가 뭐가 무섭냐고 묻는다면, 모든 것이 다 싫고 무섭다. 자세히 적기에 무서우니 그냥 이렇게 뭉떵거릴 수밖에 없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걱정이 되었다. 엄마가 무서워하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이가 새에 대해 알기도 전에 '저건 무서운 거야'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아이에게 그런 삶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 이든이가 알아채지 못해야 해. 엄마의 눈물겨운 작전이 시작되었다.
도시에서 엄마의 가장 큰 적은 비둘기다. 개체 수도 개체 수거니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강심장은 이미 범접불가이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 보자’ 따위의 마음가짐은 이미 사람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은 도시의 비둘기들에게는 우스울 따름이다. 이제부터 엄마에게 필요한 건, 10미터 앞을 내다보는 시력과 언제고 비둘기가 나타나면 유모차의 방향을 부드럽게 전환할 수 있는 핸들링, 그리고 여우주연상급 연기이다. 아이가 클수록 연기는 자연스러워졌지만 갑자기 근처로 날아드는 비둘기에 움찔움찔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동물원에서 새들이 모여있는 곳은 아빠와 갔고 먹이를 주는 곳들도 아빠와 둘이 들어갔다. 엄마의 화장실 급한 연기는 일품이었기에 이든이의 의심을 피할 수 있었고 어릴 때의 이든이는 조류보다는 곤충과 파충류를 더 좋아해서 아주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아이가 7살이 되었다. 때가 되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긴장을 덜했더니, 움찔움찔거릴 때가 점점 많아졌다. 눈치를 조금 챈 듯하다. 먼저 말해야겠다.
"이든아. “
“응?”
“엄마가 할 말이 있는데, 엄마는 사실 비둘기를 안 좋아해. 조류가 좀 무서워."
"왜? 왜 무서워?"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어릴 때부터 좀 무서워했어. 이든이가 어릴 때에는 엄마가 무서워하는 걸보고 네가 새는 무서운 거구나라고 생각할까 봐 안 무서운 척했었는데, 이제 7살이니까 좀 큰 것 같아서 이야기하는 거야. 이든이는 혹시, 비둘기 무서워?"(제발, 아니라고 해 줘.)
이든이의 말에, 추운 겨울 따뜻한 햇살에 눈이 녹아내리듯 스르륵 마음이 녹아내렸다. 비둘기로부터 엄마를 지켜주는 7살이라니. 그런데 이든아, 엄마는 파닥파닥 거리는 것도 싫어. 우리 그냥 돌아서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