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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러플 Sep 03. 2017

헬로시티

하루 한편의 쉬운 시쓰기 #85


헬로시티*

황현민




검은 연꽃이 피고 지는 언덕을 오르자 헬로시티가 한눈에 들어왔다. 헬로키티가 살 것만 같은 다섯 개의 작은 도시, 만 원을 결제한다.



1. 영원

너무나 일상이 되어버린 바보상자들, 네모난 디지털 껍질들이 각양각색으로 지지직거리며 곧 끝장날 것처럼 아날로그 한다. 이미 골동품이 되어버린 진공관 박스들, 전기가 사라지면 금방 죽어버릴 거북선 한 마리가 도시를 활보한다.


2. 환상

설탕과 무지개로 만든 시티, 우주처럼 반짝거리며 판타지보다 더 판타지 한 마법의 도시,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 곁에서 낮잠을 자는 호박 한 덩어리가 부풀어 오른다. 아트가 아니라 고요한 드림이야


3. 재생

유기되고 병들고 적폐하고 불쾌한 쓰레기들, 쓰레기라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걸까? 생사가 아니라 양심을 되살리는 것, 창조는 잃어버린 것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 나라도 부활할 수 있을까? 종이 바다 위로 나룻배 하나가 지나간다. 아파트를 잔뜩 실은 채로


4. 사는냐 죽느냐

얼굴 없는 사람들, 바위 같은 머리들, 약육강식과 자본의 파편들, 침묵은 가짜고 도시는 바보투성이야, 허공에 열린 샌드백은 죽을 때까지 흔들거릴 거야. 딱딱한 정육면체 속으로도 암흑은 스며들고 깃털처럼 평화로운 시간이 흘러 다닌다. 미세한 빛과 바람이 일어나 투명한 비닐을 나풀거린다. 등푸른 구름 하나가 각양각색의 모양과 빛깔로 춤을 춘다. 유일하게 풍경을 담을 수 없는 장소에서 덜컹, 심장을 놓아 버렸다. 허공마저 살아 숨쉬고 하늘보다 더 하늘 같아 보이는 그 속으로 나도 풍덩, 빠져 버렸다.



1번부터 4번 까지는 지상이고 5번은 지하다. 왜 5번은 지하일까? 도시와 도시 사이로 날개를 접었다 펼쳤다 하면서 붉은 돼지가 이유도 없이 식식거렸다.



5. 탄생

헬로시티의 종점, 아이들은 왜 지하로 여행을 떠났을까? 꿈과 희망을 시작한다는 제로의 도시, 마지막은 팩트고 낯설음이야, 두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원시, 그래서 시작이야. 시작부터 너무 슬퍼서 너무 슬퍼서 아무도 내려가지 못했다. 곧장 헬로시티를 벗어나 희뿌연 사무실로 돌아왔다. 출구에서 마주친 한국의 거북선이 너무나 초라했다. 



지하는 1층이었고 지상은 2층이었다. 나의 하루는 늘 3층이었지만 4층 같은 정오를 만들고 싶었다. 아무래도 인공은 온몸으로 느낄 수는 없을 것 같다.  






* 2017 아시아 태평양 현대미술 헬로우 시티, 대전시립미술관에서 2017년 6월 23일~10월 9일까지 개최하는 전시회다. 갤러리 번호는 실제와 다름을 밝힌다. 탄생이 전혀 기억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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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9. 3. 시골집에서

아무래도 인공물을 보면 온몸으로 느낄 수가 없다. 머리를 버리고 가슴으로 다가가려 해도 영 느낌이 오질 않을 때가 많다. 예술이란 인공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헬로시티에서 나를 매혹시킨 것은 (누구나 그럴 것이지만) 신지 오마키의 "시간" 이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촬영 금지다. 역시나 촬영 금지할 만큼의 작품성이 높았다. < Luminal air space - time, Fan, Control PC, choth, electric code, LED light 5mx8m. 2017 > 잊지 못할 풍경이었다. 인공을 잘 살려도 이렇게 매혹적일 수 있을까? 이 작품 속에 푹 빠져 들었다가 다음 갤러리로 이동하는 순간, 모든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인공이란 그런 것이다. 온몸으로 느낄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춤, 바람이 불면 허공이 춤을 춘다. 꽃과 나무들만 흔들거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들이 흔들거린다. 바람이 부니까 두 팔을 번쩍 올리고 바람을 느낀다. 그러다가 어깨를 들썩이고 바람을 따라 바람을 잡고 춤을 추는 것이다. 그것이 온몸으로 추는 춤이 아니겠는가? 근래는 바람도 없이 사람들이 춤을 춘다. 그것을 과연 춤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을 과연 예술이라고 해야 할까?  

이 시는 머리로 쓴 시다. 어쩔 수 없다. 머리로 쓴 시 한 편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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