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일러플 Jul 29. 2016

섭패 - 박서영

#1 싯구 추출하기



시와 수필의 경계는 없다. 좋은 수필은 시와 같기 때문이다. 굳이 다른 점을 따지자면 이렇게라도 표현할 수 있겠다.


수필은 이야기가 있고 그 속에 시를 담는다.
반면 시를 풀어 쓰면 수필이다.
좋은 수필에서는 시를 추출할 수 있다.


시전문 잡지『시인동네』여름호에, 박서영 시인의 수필 「섭패」가 실렸다.  박시인의 글을 읽고, 수필은 이래야지, 하고 감탄했다.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시를 수필 안에 심는다. 너른 이야기 땅 위에 씨앗처럼 시를 뿌린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응집과 확장으로 섭패를 통한 아우라를 전달한다.


이야기 흐름과 시적 카타르시스가 중첩되며 하나의 시가 많은 것을 포용하고 전달한다. 초반의 하얀 것들이 마지막 순간 검은 색 뒤에 숨는다. 순간을 본다.


정말 멋지다.


중간 중간 시적 문구만 뽑아도 시 한편이 된다. 그래서 문자그대로 뽑아 보았다.


섭패



전복 껍데기를 갈고 갈아서
한 장의 얇은 종이

순간을 본다

하얗게 내린 작업실은 흰 시간만을
온몸도, 거미줄 쳐진 두꺼비집도 작은 시계도 바닥도
그 흰 시간에

빛의 조각들
어떤 무늬든 새길 수 있으리라

손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일들
귀에 대면 바다의 숨결이 들릴까?

영혼의 조각
좋은 색은 빛을 발하여 우주의 기운을얻는다

순간을 본다

나무와 전복 껍데기의 혼례
검은 일상의 시간 속에서 사라진 흰 시간들

미지의 조각들은 어느 시간에 가서 박힐까
그리고 빛을 낼까

가장 영롱한 기억만을 남기고
검은 시간 속에 박혀 조용히 빛을 낸다

나는 본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사라졌으나
여전히 남아 있는 나의 흰 시간들

가장 아름다운 시간들이 사방으로 움직인다 뭔가 희미하게 빛나는 순간들을 본다


책 위에 연필로 밑줄을 긋고 옮겨 보았다.


시인동네, 2016년 여름호 中에서 - 시대의 장인들






은 문장에서 단어와 문구를 그대로 뽑아서 시를 만들어 보세요.


추출하여 시를 만드는 놀이는 두가지입니다. 제가 지금 추출한 것처럼 토시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추출하여 연결하는 것이 첫번째이고요. 조사와 술어를 맘대로 바꿔서 보다 쉽게 추출하여 완성할 수 있는 놀이가 두번째입니다.


여러분들도 좋은 글을 만나면 이렇게 시창작 놀이를 한 번 해보세요. 좋은 글을 만나면 연필과 지우개를 준비하세요. 정말 멋지지 않나요?


이것은 시창작 놀이일 뿐입니다. 창작이 아니오며. 무엇보다 타인의 문구를 인용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여 발표하는 것은 저작권 위배이오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자, 이제는 자신의 글에서 추출해 보세요. 방법은 아시겠지요?

시를 쓰기 전에 먼저 산문(수필)을 써보는 겁니다. 그림 그리는 분들이 스케치를 먼저 하듯이요. 그때 그때 생각나는 것을 생각나는대로 메모를 해둡니다. 자신이 메모한 글에서 싯구들을 추출해서 자신의 시를 창작하는 겁니다.  시가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에게 혹은 시를 처음 쓰시는 분들에게만 권장합니다. 실제 시인들이 이렇게 시를 쓰지는 않거든요. 시는 새하얀 종이 위에서 출발합니다. 반면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좋은 수필을 쓰시게 될 겁니다. 어떤 분은 시보다 수필이 한 수 위라고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쓰다보면 좋은 수필이나 좋은 시가 만들어지겠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