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일러플 Aug 07. 2016

아가씨

#2 영화를 보면서 메모하기


영화 한 편을 보면서

장면, 대사, 떠오르는 이미지 등 메모를 하면 좋다.


이렇게 메모한 것들을 가지고 시 한 편을 창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들은 영화보다 다큐멘터리를 자주 본다고 한다.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가 훨씬 리얼하니까 그럴 게다.


오늘은 영화를 보면서 동시에 메모를 하면서 시 창작 놀이를 해보기로 한다.

영화 제목은 <아가씨 - The handmaiden>이다. 박찬욱 감독이 영국의 사라 워커스가 쓴 작품을 영화화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미 <핑거 스미스>라는 드라마로 제작된 바 있다.


영국 드라마  <핑거 스미스>






영화 <아가씨>를 보면서 아래와 같이 메모를 해보았다.

메모는 여러 가지다.

그대로 받아 적거나 혹은 시적으로 바꿔서 적거나 혹은 전혀 다른 상상으로 적거나 혹은 제 멋대로 적으면 된다. 영화를 보면서 하는 메모는 분명 영화를 통해서 얻은 감흥일 테니까

그냥 자유롭게 메모를 하자. 그뿐이다.  



막 도착한 숙희가 아가씨 방을 몰래 훔쳐 본다. 곧 아가씨를 만나고 그녀의 향기에 취한다.



가시는 나를 처음 보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잘 생겼으면 잘 생겼다고 미리 말을 했어야지


약속을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절대 거짓말은 하지 마


벚꽃나무,

어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과 똑같을까


비가 내린다


이곳에도 도서관이 있다지?

어디야

저긴가


가시의 엄마는 왜 목을 매달았을까?



끔찍한 변태가 머무는 서재, 아가씨가 숫남자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곳, 음란 서적이 빼곡하고 지하실 입구가 있는 곳



뱀 같은 사내가 도서관 속에 살고 있다


헤비, 헤비,

뱀은 무지의 경계선이야

더 이상 들어오면 안 돼


목욕을 할 때 사탕을 빨면

내가 얼마나 달콤한지 넌 알아?

아, 이 냄새였구나

손으로 어금니를 핥을 때 나는 소리였구나

가시는 그렇게 가시를 사랑한다

미끈미끈해요


가시는 서로의 가시로 태어난다



숙희가 애기씨 목욕을 시키고 송곳니를 갈아 주는 장면이 나온다. 둘 사이에 묘한 감정이 싹트는 욕실.



작은 뱀이 와서 가시에게 시를 가르친다

가시의 가시에게 잉크를 하며

밀실로 끌어당겨 선물을 건넨다


가시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 줘


아무것도 모르는 뱀 대가리가

가시를 유혹하려 애쓴다


내가 씻기고 입힌 것들 중에 이만큼 이쁜 것이 있었나?

가시가 가시의 뒤태를 바라본다


의자가 억지로 뒤로 넘어졌다

이렇게 해놓니까

아가씨 같다 가시가 가시에게 아가씨라고 불렀다

처음처럼


자려고 하면 너의 얼굴이 자꾸 생각나



 아가씨가 숙희에게 자신의 옷을 입혀 준다. 너도 아가씨 같구나



이 많은 단추들은 다 나 좋으라고 있는 거잖아

단추를 풀면 그 안에 순백의 사탕이 있지

그 속을 만져 봤으면...


가시가 가시를 입히고 가시가 가시를 벗긴다

뱀 두 마리가 사라지면

가시와 가시 사이에 무언가가 오고 갔다


시를 쓰기 위해 젊은 뱀을 기다리는

첫 가시와

그 가시를 바라보는 마지막 가시


종이 두 번 울렸다


뱀의 숨결이 가시의 볼을 스쳐가며

시가 익어간다


당신 앞에 서있기가 겁이 나요

봉숭아 물이 아주 많아요 가시의 속 마음을 한입에 베어 문다


거의 다 익은 거 같아



잘 익은 복숭아를 한 입에 베어 먹는 사기꾼 백작, 거의 다 익은 거 같아



젠장,

너의 엄마가 들보에 목을 매달기 전까진

널 많이 안아 주었을 거야, 그렇지?

난 내가 태어나면서 엄마 목을 졸랐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울 엄마가 웃었나요?

엄마는 천 편의 시를 쓰고 딱 한 번 천기를 누설했다

아니 울었지 많이 울었지

너를 낳고 죽을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고


갑자기 가시가 왜 이럴까?

버섯 동자들이 계단을 구르고 굴러 떨어진다

여기로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런 날엔 카메라가 있어야지

가시와 뱀의 키스

가시는 달리고 달렸다

가시는 가시를 생각해선 안돼

나는 시집을 내어 저 은하수를 건너갈 거야 맛난 세계를 만나고 더 멋진 가시를 쓸 거야

가시를 잊어야 해 가시를 잊어야 해

종소리가 끊어졌다



아가씨와 숙희의 야한 밤, 두 사람의 사랑이 극에 달하는 순간



오늘은 여기서 같이 자

젊은 뱀이 나에게 청혼했어

난 지금 이대로도 좋아 너와 같이 있다면...


날 모르겠어?

발톱이 빨리 자라는 것을 보면 그놈을 사랑하는 거 맞아

사랑하게 될 거야


가시가 가시를 때린다

쪽방으로 쪽방으로 가시가 나방이 되어 날아간다


자유?

지하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지

큰 뱀의 혓바닥


아가씨를 위해 계단을 올리는 숙희, 아~ 아가씨에 위한 마음이 장난 아닌 듯...



여러 겹의 살을 벗기고 또 벗기어

옭아맸던 동아줄을 끊어 버리고 작은 돌계단을 쌓아

벚꽃 흩날리는 호수에 다다랐다


가시가 강물에 손을 얹을 때쯤

가시와 뱀의 결혼식이 끝나고 가시 하나가 슬피 운다


수많은 뱀들과 수많은 가시들이 시끌 버쩍한 낯선 땅

뱀 한 마리와 가시와 가시가 도착했다

밥을 한톨 한톨 주어 먹는 가시가

슬픈 가시를 자꾸 바라본다


뱀과 가시의 신음 소리 끝에 새날이 밝아오고

밤새 노래만 불렀던 새하얀 가시는 검은 가시를 바라본다

가시가 점점 미쳐가고

가시와 가시가 다시 아가씨 놀이를 시작하고

여기서 일주일 저기서 이주일


마침내 시집이 도착했다

뒤로 걷기 시작하는 가시

거대한 가시 대신 작은 가시가 벽에 갇히고

작은 가시는 벌레를 씹어 먹으면서 웃었다 비웃었다


구슬 한 개 입 안에 넣고

두 개의 구슬이 손을 때리면

가시는 울음을 멈춘다네






수렁에서 아가씨를 구하는 숙희, 뱀의 목을 처단하는 숙희



가시들은 뱀의 목을 처단한다

도서관 속의 모든 뱀의 역사들을 찢고 자르고

물속에 처박아 빨간 발 빨래를 시작한다


가시들의 해방

가시와 가시가 사랑을 한다

가시의 거시기와 가시의 거시기가 가위질을 한다

가시와 가시만이 가능한 사랑

오, 가시들의 사랑아


도망쳐라, 멀리 도망쳐라

가시는 가시만 있다면 행복하리라

너만 있다면 가시는 뱀이 소용치 않으리라

이 세계는 뱀의 세계

뱀의 세계를 물리치고 가시의 세계를 창조하라


가시들이여

모든 가시들이여 일어나라

세계라는 거시기의 목을 잘라버려라


가시들이여

가시들이여 가위질을 하라

너와 나의 사랑을 위하여



아가씨를 강요했던 음란 서적들을 뜯고 찢고 자르고 찌르고 물에 던져버리고 짓밟는 두 여자







백화점, 호텔 레스토랑, 떼깔 좋은 옷가지와 향수, 액세서리들

왜 그럴 것들을 좋아할까?

가시의 뱀은 고백한다

사실 돈 자체엔 관심 없어요 한 달치 월급으로 먹은 단 한 끼의 품위 있는 식사로 백작 호칭을 얻었죠

이런 멋진 태도를 위해 사는 겁니다

(이 세계는 체면 때문에 살고 대우받기 위해 태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단순한 것을 위해서 아등바등 서로 둥쳐먹으며 사는 것이란 말인가? 오오, 뱀들아 꽃뱀들아)


가시가 토해낸 포도주 세 방울을 먹고 뱀들은 모두 쓰러졌다

뱀이 연기를 내뿜는다

차갑고 푸르고 이상하게 아름다운




자유를 찾아 떠나는 두 여자와 아무것도 모르는 사기꾼 백작






달빛 고요한 바다 한가운데

가시와 가시 속에서

방울 소리 잔잔하게 흐르고 흘러넘친다

파도가 거세게 출렁거리는

둥근 바다 속으로


 


은방울 소리가 흐르는 거센 바다 위에 황홀한 보름달








한글명은 아가씨이지만, 영문명은 Handmaiden입니다. 시녀죠. hand(손) 대용 하녀라는 아주 끔찍한 단어죠. 영문 제목 때문에 약간 거부감이 들던 영화였는데요. 하지만 꽤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올드보이, 설국열차처럼 아가씨라는 영화는 시적인 상상을 하게 하고 시적으로 표현하기에 좋은 영화입니다.


이렇게 좋은 영화나 소설 한 편은 다수의 시를 창작할 수 있는 조력자 역할을 합니다. 뛰어난 원작이 훌륭한 영화 다수의 편을 탄생시키듯이 말이죠. 이미 영국에서는 <핑거 스미스>라는 드라마로 나와서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됐었다고 합니다.


오늘 이렇게 시 창작 놀이를 해보았는데요. 시 창작 놀이를 통해서 일반인들이 시에 쉽게 접근하는 것을 보여주고자 해보았는데요. 잘 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시인들의 시들 중에서도 영화를 보고 시상을 얻어 쓴 시들이 있습니다.

젊은 양안다 시인의 "공원을 떠도는 개의 눈빛은 누가 기록하나"라는 시도 레오 까락스 감독의 영화 <홀리 모터스>를 보고 영감을 받아 쓴 시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제 취향이 아닌 그 영화를 보았죠.

첫 장면부터 양안다 시인의 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요. 영화 내용과 양안다 시인의 시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지요. 당연히 그래야 창작이니까요. 내용이 유사하다면 모방이지 창조가 아니니까요.


시인들은 다큐멘터리를 많이 본다고도 해요. 다큐멘터리에는 많은 소재거리가 있거든요. 하지만, 이 역시도 다큐멘터리를 모방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새로운 창작의 상을 얻어 갈 뿐입니다.


위에 메모는 시가 아닙니다. 그저 메모일 뿐입니다. 이렇게 메모를 하다 보면 재밌게 시 창작 놀이를 할 수 있다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습관을 들이다 보면 영화 한 편을 보고 전혀 새로운 상상을 통하여 자신만의 시를 창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평소와 다르게 보다 구체적으로 보다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시는 모방이 아닙니다. 시인들은 남의 것을 훔치거나 바꿔치기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단지 영화를 통해서 새로운 정보를 얻고 새로운 정보를 통해서 새로운 시상을 얻을 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시적 언어로 전혀 다른 세계를 창조합니다.


오늘은 영화를 통한 메모하기를 해보았습니다. 이것은 시 창작 놀이일 뿐입니다.


이 영화 시작부터 제가 찾은 것은 '가시'였습니다. 아가씨란 단어에서 가시를 떠올리고 첫 단어로 '가시'로 출발해서 영화 내내 '가시'의 이미지로 메모를 해나가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한 번 메모를 해보시면 시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Ending - 가시가 가시를 처음으로 만났던 장소, 벽의 그림





시창작 놀이를 마친 후 시 한 편을 완성해 보았습니다. 

나름 '가시'를 살렸습니다. 제목은 「가시 가시 」입니다. 어떤가요? 괜찮은가요?


가시 가시
황현민



가시 가시 열렸네 벼랑 끝에 열렸네

은방울 네 개가 모여야 사랑은 이루어진다네

몸 속에 은방울 두 개씩 품고 가시 가시 외따로 살았다네

제 짝을 만나야 방울 방울 은방울 소리 울린다네

가시 가시 짝을 찾아 방울 방울 떠돌았네

방울 방울 은방울 흔들리기 시작했네 제 짝이 근처에 있다고 아주 작게 속삭였네

가시 가시 눈을 감고 서로의 은방울 소리 따라 군중 속을 걸어 갔네

그이는 누굴까?
그리운 내 님은 어디 있는 걸까?

가시 가시 우연히 부딪쳤네 방울 방울 은방울 소리 거세게 울렸다네

은방울 네 개가 모이면 불가능한 사랑은 없다 하네

가시 가시 첫눈에 반해 키스하네
방울 방울 하나씩 꺼내어
가시 가시 서로의 가시 속에 넣어 주었네
방울 방울 사랑을 속삭이고 가위질을 시작하네

이 세계는 뱀 대가리
뱀의 목을 싹둑싹둑 잘라 버렸다네

가시 가시 은방울 소리 바다를 출렁이고 보름달 되어 비추었네

방울 방울 열렸네 하늘 끝에 열렸네


자, 이렇게 시창작 놀이의 메모와는 다르게

전혀 다른 새로운 시를 창작해서 완성해야 합니다. 물론 이 시의 부제나 주석을 달아야 겠죠. 영화 <아가씨>를 보고 시상을 얻었으니까요


여러분들도 이렇게 시창작 놀이를 하고 

자신 만의 전혀 새로운 시를 창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섭패 - 박서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