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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러플 Aug 23. 2016

스마트 폰

#3 살아있는 순간을 포착하라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시인의 경험이 좋은 시를 낳기 마련이다. 그래서 시인은 시 자체다.


이 시를 어느 시인에게 줄까? 어느 시인이 이 시를 가장 잘 표현할까?

시가 시인을 찾아온다.  작곡가가 그 곡에 맞는 가수를 찾는 것처럼...


이렇게 시상이 오면,

정말 열심히 시를 완성해야 한다. 중간에 포기하거나 대강 쓴다면 그 시는 다시 다른 시인에게 넘어가서 다른 시인에 의해 완성될 것이다. 시상이 온 것은 내가 선택받은 것이다. 이 시를 가장 잘 완성할 수 있는 시인에게 맡긴 것이기 때문이다. 시를 완성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분명 다른 시인이 완성할 것이다.


시에도 완성품이란 감이 있다. 발표작일지라도 완성작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다. 새로운 시상이 내게 왔을 때 심혈을 기울이고 영혼을 담아 창작해야 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 단 한 편 뿐인 시를 탄생시켜야 한다. 그 누구도 쓰지 않은 시를...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시를... 그 누구도 덧붙일 수 없는 시를...


좋은 시는 어느 순간 떠오르는 시상의 기록에 달려 있다. 자다가도 떠오르는 시상이 있고, 길을 가다가 우연히 발견하는 시상들이 있고, 가만히 있다가 어느 순간 떠오르는 시상들이 있고, 백지를 펼쳐놓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떠오르는 시상들이 있고,...


여러 가지 일상 속에서 시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러한 시상들은 보다 낯설고 보다 새로워야 좋다. 그래서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것들을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것이 시 창작에는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순간을 바로 기록해야 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히기 마련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기록할 수 있는데 귀찮아서 게을러서 기록하지 않았다면 쉽게 잊히겠지만 기록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분명 그 시상은 보다 더 다듬어져서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아무튼 생생한 기록에 대해서 오늘 시창작 놀이를 시작하고자 한다.

스마트 폰을 가지고 다니면서 맘에 드는 것들을 사진으로 찍자. 혹은 영상을 촬영하고 혹은 소리를 녹음하고 혹은 바로바로 SNS나 블로그를 통해서 메모를 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기록을 해서 가지고 있다가 시간 날 때 시 한 편으로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생생한 기록을 통한 시상은 좋은 시를 창작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바탕이 된다. 그 순간의 시상은 있는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에 완성된 시는 읽는 이에게도 생생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관련 시창작 놀이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오늘 시창작 놀이는 놀이와 동시에 시창작이다.


# 사진/소리/영상/텍스트

1.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영상을 녹화한다.
2. SNS나 블로그에 사진과 영상을 올리고 관련 메모를 한다.
3. 시간 날 때 사진/영상과 글을 정리하여 시 한 편으로 완성하자.


# 순수 텍스트

1. 그때그때 스마트폰으로 SNS나 블로그에 메모한다.
2. 메모한 글을 시간 날 때 시 한 편으로 완성하자.






순수 텍스트에 대해서 실례를 통해서 시창작 놀이를 해보도록 하겠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카카오스토리(나만보기)를 주로 사용하다가 최근에는 트위터에 가감하게 메모를 한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는 브런치(발행 전 작가의 서랍)에 직접 메모한다.  '작가의 서랍'에 하는 메모는 텍스트가 길어지고 내 안의 말들이 많이 나오는 반면, 트위터는 절제되고 주관이 보다 정제된 말을 하게 된다. 순간의 메모는 트위터가 딱인 듯싶다.


트위터가 메모하기 좋은 이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트위터는 SNS라는 열린 공간에 직접 메모를 하는 것이다. SNS의 독자를 의식하건 안하건 무의식적으로라도 독자를 인지하고 있기 마련이다. 순간의 메모에 트위터가 괜찮은 이유는 독자를 인지하고 메모를 한다는 것과 제한된 글자 수로 메모를 해야 한다는 두 가지 이유다. 시창작을 위한 메모는 짧은 시어들의 작성과 행구분 등이 자연스러운 것이 좋기 때문이다.


어쩔 땐 딱 한 줄만 떠올라 메모하는 경우도 있다. 트윗은 그러한 메모를 공유하는 SNS이기에 더욱더 짧은 글들이 활발하다. 제가 트윗을 처음 시작할 때 했던 메모가 있습니다.


생략은 생략과 소통한다


이 메모 하나를 통해서 트윗을 시작하자마자 유명하신 분이 저를 팔로우하셨고 저도 맞팔하고 리트윗 되어 팔로워 분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 그때 참으로 신기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이 한 줄의 시상으로 시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졸고「말」입니다.







침묵이 아니라
좋은 것은 생략형이라며
당신은 늘 그랬다

나도 생략이길 바랬다
영원히

모임이나 타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아끼는 것이다

당신과 나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처럼

한때는
몸과 몸 마음과 마음이
모두 그랬지요

단 둘이 만나
그동안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생략은
생략과 소통한다


- 대문 밖 골목에 앉아 혼자 울고 있는 당신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이렇게 메모 하나가 시 한 편이 되곤 합니다.






오늘은 나도 모르게 트위터를 열고 메모를 했다. 그리고는 시로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브런치에 와서 시로 완성하기 전에 시창작 놀이를 통해서 시창작을 제시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자, 내가 올린 트위터의 글이다.


# 트윗 하나

덥다고 방구석에
너무 오래 처박혀 있다
생각해보면
방구석에 더위 하나를 더 키운 셈이다
알을 품듯
더위가 더위를 품고 있다
박차고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래, 어여 나가자
미친놈처럼 쏘다녀 보자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 트윗 둘

언제부턴가
연락을 끊고 살았다
수많은 연락을 받고
수많은 출석을 했던 시절이
아득하구나
이제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
단 하나의 연락도 받지 못하는 나는
인생을 헛살은 것이리라
그렇다
자책하라
그래도 지금 내게는
연락이란
외로움의 헛된 부산물일 뿐이다


위의 메모를 오늘 했었다. 두 가지다. 위의 텍스트를 보면 마침표가 없는 이유는 글자 수 제한 때문에 마침표나 말줄임표를 자연스럽게 제외시켰다. 시는 산문과 달리 행과 연의 호흡을 위하여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물론 마침표를 찍을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의 호흡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행갈이를 했다. 일반적으로 메모를 하면 나는 행갈이 없이 하게 되는데... 트위터에서는 자연스럽게 행갈이를 하게 된다.

(아~, 지금 트위터를 홍보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자, 그럼 이것을 시로 완성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두 가지 메모는 거의 동시에 진행되었기에 그리고 그 순간의 나의 상태와 심정을 반영하였기에 시로 완성할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솔직한 메모이며 SNS를 인지한 절제된 메모이기에 시로 완성하기에 정말 좋은 메모입니다.


우선, 두 메모를 여러 번 읽어 봅니다.

내가 왜 이 메모를 했을까? 나는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일까? 두 메모의 연결고리는 또 무엇인가? 제목을 뭘로 할까? 포인트는?...

지금 저의 경우는 대강 이 정도는 우선 파악하고 시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메모를 했을 당시의 저의 상황들을 떠올려 봅니다. 이 두 메모를 읽고서 순수하게 당시 상황을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그 순간의 자신이 되어 봅니다. 다소 시간이 걸릿 듯하네요.


그리고 두 개의 트윗에서 시선을 떼고 하얀 백지를 바라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는 처음부터 다시 써내려 가야 합니다.



연락



폭염 속에서도
만나야 할 사람은 서로 만난다

미친놈처럼
여기저기
문자와 톡을 날린다

더위 먹고 미친 병은
죽어서도 고치기 어렵다던데

덥다고
너무 오래 방구석에 처박혔다
알을 품은 지 스무날이 지나고
방의 껍질은
한 겹 한 겹 떨어졌다

알 속에서 사람이 나왔다
알에서 나온 그녀는
그림을 그리고 낙인을 찍고
새빨갛게 빨갛게
방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빨간 숫자들을 주워
달아난 그녀에게 톡을 날렸다

외롭나요?
외로움이란 헛된 부산물이지요
당신은 게으름의 산물이고요

더 이상 찾지 마세요
나는 지금
당신과 연락 중이니까요

밖은 여전히 뜨거웠다

걱정 마세요
오늘 밤부터 비가 내릴 거예요


시 한 편을 완성해 보았습니다. 다소 멜랑꼴리 하네요.






물론, 비밀스러운 글은 저도 SNS에 메모하지 않고 별도 메모를 합니다. 노트나 한글 문서에 주로 작성을 하곤 합니다. 급하면 카카오스토리 나만보기로 작성하곤 합니다. 일기를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가장 좋은 메모가 일기니까요. 일기를 많이 쓰면 여러모로 좋습니다. 일기를 쓸 때도 될 수 있으면 시적으로 표현하면서 일기를 쓰는 것이 좋습니다. 시인은 일기도 시적으로 쓰게 됩니다.  아무튼 비밀스러운 시는 온라인이 아닌 지면이나 나중에 시집 안에 묶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진짜 소중한 시는 몰래 간직하는 것이니까요.


자, 어떠세요? 메모의 소중함을 알고 순간의 메모를 해나가기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있는 그대로 생생한 메모가 시상이 되어 시 한 편으로 완성될 수 있으니까요.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SNS나 블로그 메모를 통한 시창작 놀이의 한 가지였습니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순간의 메모를 적고 그것을 모아서 시 한 편으로 창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PS.

물론 작은 수첩에 연필로(펜보다도) 메모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당연하죠. 하지만 요즘 스마트폰 하나 들고 다니기도 번거로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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