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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러플 Aug 29. 2016

커피

#4 감각으로 시적 메모하기


   시는 감각으로 쓰는 것이다. 시인의 감각은 유와 무의 모든 감각을 말하고 유와 무를 넘어서는(현실과 비현실을 넘어, 감각과 비감각을 넘어) 또 다른 차원의 감각을 포함하여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은 시간과 공간으로 한정된 차원이다. 시인은 이러한 차원을 벗어나 11차원을 넘어 무한 차원으로 감각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을 나는 무한 감각이라고 말한다.


   3차원에서의 시공간에서의 감각은 흔히 알고 있는 오감이다.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지고 ...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되어 육감이다. 느끼고 ... 더 나아가 칠감, 팔감, 구감, 십감, 십일감, ... 무한감...


   또한 3차원의 시공간에서도 시를 쓰기 위한 기본 전제는 동시성과 공존이라는 인식이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제한을 넘어서야 한다. 그 기본 방법이 바로 모두 같은 시간, 모두 같은 공간이라는 사고에서의 창작이다. 서사 구조가 아니라면 시인은 시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시상을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오감에서 육감으로 넘어가게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이다.


   쉽게 말해서, 시간과 공간을 없애라는 것이다. 그러면 3차원에서 시적 표현을 그나마 구현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기본 바탕을 만들어야 한다. 이처럼 시인들은 타고난 감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뭔가 이상해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시인은 길을 가다가 한 자리에 서서 한동안 멍하니 서있곤 한다. 그것은 다른 차원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라고 바라본다면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가끔 멍때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것이다. 무언가에 홀려서 혹은 걱정거리로 멍때리기를 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아무런 의도 없이 멍때리기를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의 감각이 아마도 다른 감각을 사용하고 있는 중일 것이라고 인지를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시상이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온다. 꿈속에서도 오고 길을 가다가 갑자기 뇌를 스치면서 언어로 전환되어 빨리 메모하라고 알려준다. 이러한 감각에 대해서 이해가 여전히 안 된다면 텔레파시를 생각해 보라. 말을 하지 않아도 이심전짐으로 통하는 경우를 떠올려 보라. 


   텔레파시는 육감과 칠감에 속한다. 이렇게 쌍방향 무의식의 소통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지만 과학적으로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과학에서는 뇌의 파장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한다. 돌고래의 주파수(파장)는 음파(초음파)에 해당되는 것으로 뇌파와는 또 다른 차원이다. 오감에 의한 파장은 시공간에 제한을 받으며 잘해야 육감까지 발전 가능하다. 하지만 육감에 의한 파장은 시공간을 초월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우주와 우주 사이에 현실과 꿈 사이에 파장이 전달되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가설이다. 이런 식으로 차원과 병행하여 감각이 무한 감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듯싶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진행하겠다. 이러한 무한 감각을 인지하고 살아가야 시를 쓸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난해하다고 하는 시들이 바로 감각의 폭이 더 넓은 시들이 된다. 이해가 잘 되는 시들은 대다수 오감에 의한 시들이다. 이렇듯 쉬운 시와 어려운 시는 감각의 차원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겠다. 


   "왜 시를 어렵게 쓰세요?" 

   이 말은 결국 오감에 의한 시를 쓰란 말과 동일하다. 물론 오감에 의한 시를 쓸 수 있다. 하지만 억지로 오감만 생각하고 써야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시인은 무한감으로 시를 쓰는 사람이다. 오감에만 한정된다면 진정한 시를 쓸 수 없다. 진정한 시인이 아니다. 


   우선, 감각의 폭을 넓히는 연습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의 실례일 뿐입니다. 시인의 감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감각의 영역은 상상력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만 우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시창작 놀이를 시작해 봅시다. 


  오감 > 육감 > ... > 무한감


   한 가지 사물을 바라보고 오감을 떠올리고 일반적으로 적어봅니다. 일반적으로 메모를 하면 서술형이 되어 버리겠죠. 

   자, 바로 앞에 커피가 놓여 있습니다. 향기가 좋습니다. 갈색입니다. 뜨겁습니다. 맛은 평범합니다. 고요합니다.   이러한 다섯 가지 오감에 대한 기본 메모를 해보았습니다.  오감을 썩어 보겠습니다. 


따뜻한 향기가 좋습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갈색입니다 

여름처럼 뜨겁습니다 

검은 맛은 평범합니다 

당신과 나는 고요합니다 


   위에 오감을 썩어서 서술한 문장은 시적 메모(표현)가 아닙니다. 서술어가 주관적이기에 서술어를 이제는 모두 생략해야 합니다. 시에서 조사와 술어가 최소화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 입니다. 갈색, 맛, 평범, 고요 등의 단어도 보다 타자화 시켜서 표현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래서 시상을 메모할 때는 서술형이 아닌 명사형으로 표현하는 것을 습관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사나 어미들은 시의 전개를 위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될 때 사용하면 됩니다.

   자, 한 가지 사물을 보고 이제는 시적 메모를 다시 해보겠습니다. 오감도 1차적인 메모를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따뜻한 사람의 향기

가을을 닮은 갈색 동그라미

톡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 여름처럼 / 뜨겁게

허공을 걸어가는 맛 / 검정아

당신과 나의 염화미소


   자,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최소한의 오감에 의한 시적 표현이 되겠습니다. 시창작 놀이도 이 정도로는 1차적으로 (오감을 통한) 커피라는 대상을 표현해야만 할 듯 합니다. 하지만 시는 이렇게 쓰지 않죠? 당연히 육감이 함께 포함되어야겠죠. 시인은 기본적으로 육감(여섯 가지 감각)으로 시를 출발합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이렇게 표현하지 않고 여섯 가지 감각이 아우러져서 시적인 표현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시를 쓸 때 가장 중요한 자세입니다. 이 육감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감각이 아니라 주간이 배제된 '주관 밖의 감각'이라는 것이어야 합니다. 감각이란 것은 주관이 배제되어야 감각입니다. 주관은 그저 내 생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순수하게 내가 아닌 타자로부터 오는 육감을 표현해야 합니다. 시에서 주관의 배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타자로 나아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대상으로(타자로의) 내가 동일화(동시성, 공존, 편재, 초월 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관(나)을 감춰야 합니다. 아니, 의도적으로 나를 배제시켜야 합니다. 주관이(내가) 시에 없어야 합니다. 사실 저도 주관이 개입되어서 잘 되지 않습니다. 노력해야지요.

   더 나아가서는 새로운 나를 창조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새로운 나는 주관이 아닌 전혀 새로운 주체입니다. 새로운 주체는 나도 아니고 대상도 아닙니다. 숨어있는 주체(주관, 또 다른 나)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다양한 주체로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쓰는 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한 편의 시에 다양한 주체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창작 놀이를 시작해 볼까요. 앞서 설명한 것은 시적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드리고자 두서없이 작성해 보았던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시적 표현의 여섯 가지 감각을 토대로 시적 메모를 아래와 같이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따뜻한 사람의 향기

어느 별에서 날아온 입술처럼 따뜻한 아메리카노
사람의 향기

  

   # 가을을 닮은 갈색 동그라미

만종* 속의 아이를 닮은 가을빛
열다섯 송이 해바라기*가 있는 동그라미

     * 밀레의 그림
     * 고흐의 작품 '15송이 해바라기가 있는 꽃병'에서 빌려 옴


   # 톡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 여름처럼 / 뜨겁게

톡도 없이 갑자기 떠나가 버린 폭염처럼
뜨겁게 뜨겁게 


   # 허공을 걸어가는 맛 / 검정아

같은 허공을 맴도는 말
검정 검정 걸어가는 맛
 
검정아,


   # 당신과 나의 염화미소

코끼리를 먹고 사향을 먹고 이슬을 먹고
우주를 돌고 돌아
내 앞에 당도한 사람아

두 손을 꼭 잡고 
나를 바라보며 웃는 검정아


   자, 어떠신가요?

   '커피'라는 대상을 통하여 시적 메모를 해보았습니다. 저는 메모를 하면서 '하루한편의 쉬운 시쓰기'를 병행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시어, 시구들을 메모하고 보다 구체적인 시적 메모를 만드는 놀이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금방 좋은 시를 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시인들은 보통 메모를 할 때 맨 마지막에 했던 것처럼 1차적인 메모를 합니다. 뛰어난 시인들은 메모가 바로 시 한 편이 되곤 한답니다.


   오늘 시창작놀이는 커피(따뜻한 아메리카노)라는 대상을 통하여

   오감을 통한 것부터 시작해서 육감을 더해서 여섯 가지 감각을 하나로 하여 시적 메모를 창작하는 과정을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고자 했습니다. 만족하셨는지요?

   이렇게 시창작 놀이를 많이 해보시기를 권장드립니다. 


   다음은 이성복 시인의 시론 <극지의 시>에서 일부 발췌하여 아래 열거하겠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을 만나면 묻고 싶은 게 있었어요. 아름다움이 뭐예요? <중략>”

“일본 중세에 ‘노(能)’의 미학자로 제아미(世阿彌)라는 분이 있어요. 그는 아름다움을 아홉 단계로 나눴어요. 그 가운데 3등이 뭐냐면, 하얀 은그릇에 흰 눈이 소복이 담긴 상태예요(銀玩裏盛雪). 얼마나 예쁘겠어요? 그런데 3등밖에 안 돼요. 다음은 눈이 천 개의 산을 덮었는데, 하나의 봉우리만 안 덮여 있어요(雪覆千山 爲其麽高峯不白). 이것은 너무 아름답지요. 하지만 2등일 뿐이에요. 1등은 뭐겠어요. ‘신라의 한밤중에 해가 빛난다(新羅夜半日頭明)’라고 했어요. 한밤중에 해가 빛나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언어도단의 세계예요. <생략>”

“<생략> 그런데 ‘신라의 한밤중에 해가 빛난다’라는 말이 제일 멋진 거 같아요.”

“3등은 왜 예쁘겠어요. 동일성이지요. 흰 눈에 흰 그릇이나 동일성이잖아요. 2등은 차별성이에요. 모든 봉우리가 하얀데 봉우리 하나만 까맣게 드러나니 말이에요. 어떻든 3등과 2등, 동일성과 차별성은 현실에 있는 것들이에요. 그렇지만 ‘신라의 한밤중에 해가 빛난다’는 것은 현실 경계를 넘어선 거예요. 다시 말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사라진 아름다움이지요.”

이성복(2015).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시: 대담 이우성’. 『극지의 시: 2014~2015 이성복 시론』. 서울: 문학과지성사. 1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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