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한편의 쉬운 시쓰기 #121
노페이퍼
황현민
없다면
너도 없고 나도 없고 세상도 우주도 없나니
종이 한 장에 다 들어있음이라
눈을 뜨건 눈을 감건
보이는 모든 것들은 종이 한 장뿐이거늘
빛도 암흑도 종이 한 장 속에 있나니
내가 종이일 때
내 님은 오고 종이 위에서 사랑이 꽃필 지나니
지금의 소중함과 함께 종이의 위대함을 새삼 기록할 지어니
없다면
나도 없고 너도 없고
붓도 시도 없고 책도 가방도 사이도 없나니
한순간에 모두가 사라지나니
다 종이 한 장뿐이란 것을
태고 적부터
한 장 한 장 우리가 살아 가고오고 살아 있다는 것을
그래도
이 종이 한 장 버릴 수만 있다면
있다면
그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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