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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러플 May 30. 2020

백선에 얽힌 경험과 연상되는 것들

하루한편의 쉬운 시쓰기 #179

백선에 얽힌 경험과 연상되는 것들

황현민





봉황을 닮아 봉황삼이라고 불렀다지 줄여서 봉삼이라고도 부르던데 난 봉 잡았다고 봉삼이란 줄 알았지


선아,

너의 이름을 누가 지어준 거니?


내가 아는 너는 봉황이 아니라 백사를 닮았던데 길다란 하얀 넝쿨 같았지 그래서 백선이라고 불렀구나 었는데


2미터가 넘는 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그 전설의 주인공을 내가 만날 줄이야 왜 나는 너를 캐냈을까? 새하얀 뿌리를 포기하지 않고 쫒았지 큰 소나무를 지나서 큰 바위를 지나서 검은 흙 듬뿍 퍼내어 너를 안고 집으로 데려와 내 침대에 너를 뉘었었지 그날 난 바닥에 누워 곤하게 잠들었었지 내 키보다 더 큰 너와 나란히 하룻밤을 보냈었지 나보다 키가 큰 너를 부럽고 신기해하면서 말야


너를 만난 곳은 사람이 드문 깊은 산속이었어 너를 캐낸 시간은 반나절이었었나 긴 하루였었지 다음 날 너를 깨끗이 씻겨 햇살 곁 그늘에 놓아두었지 네 키가 많이 줄어든 후에야 끓여도 먹고 술을 담궈도 먹고 그랬었지 처음엔 네 뼈를 제거하지 않아 도로아미타불이었었어 아마도 홧병이 낫던 게야 그다음부턴 뼈를 제거하고 복용했지만 내 키보다 더 큰 너를 두 번 다시 만나지는 못했어


그때 네가 말했잖아


이파리가 긴 타원에 끝이 뾰족한 것들은 뿌리가 흩나서 흔하디흔한 봉삼들이야 나처럼 이파리가 둥글고 키가 커야 진짜 삼이라구 한 가닥으로 굵고 길게 땅속 깊숙이 또아리를 틀면서 나는 자라났지 길고 긴 잠에서 내가 깨어난 첫 순간이 바로 오늘이야 자네가 운이 참 좋은 거야


이파리가 둥글어서 나를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이파리 흔치 않아 나를 만나기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려울 거야


네 말이 맞았어


어쩌다 한 번 어린 너를 만나면 그 이파리 몽땅 따서 호주머니에 넣어 돌아왔어 귀하디 귀한 어린 백선들 그 누구도 캐가지 못하게 말야


어린 백성들,

다 자라기도 전에 뿌리째 뽑혀 요절해 버렸다고 통곡했잖아


너는 평범한 사람을 닮은 이름이었다지 서 작가의 말처럼 ㅁ을 깎아 ㅇ을 만들려다가 그만 부러져서 ㄴ이 돼버렸다지 떡잎부터 다르다는 말도 너로부터 생겨났다고 했지


하얀 꽃들이 피고 지면 깍지마다 새카만 열매들 익어가는데 잘 익은 열매가 곧 씨앗이라서 옷깃만 스쳐도 깍지가 팝콘처럼 터져버리는데 도깨비들 장난치는 줄 알았는데


툭툭 투둑둑 투두둑 툭툭

깍지가 터지면서 총알처럼 날아가 버리는 검정들 그중에서도 너의 달들이 가장 새카맣고 윤기가 흘렀었지 힘도 좋아서 십 미터 이상 멀리 흩날렸었지


신선들이 먹는다는 선단이 바로 너의 달이 아니었을까? 너의 달 한 알 주워 삼키고는 산행을 했었는데 덕분에 무척 든든했었지 딱 두 번이야


너의 씨알들 손안에 한줌 담아와선 뒷뜰 그늘진 곳에 심었었는데 여지껏 소식이 없어 아, 이건 딱 한 번뿐이야 너의 달들도 네가 살던 숲속에서 살고 싶었나 봐


미안해, 선아





















같은 백선일지라도 이파리가 살짝 다르다네. 같은 원일지라도 더 둥근 게 길이 2미터가 넘게 자란다는 진삼이라네. 같은 백선일지라도 뿌리가 크게 다르다네. 잎이 다르면 뿌리도 다르다네. 한 가닥 길게 자라나는 뿌리를 가진 삼은 흔치 않다네. 옛날에야 지금보다 훨씬 많았겠지만 지금은 전설 속 삼이 되었다네.






#백선 #백선이야기 #백선도진짜는따로있다네 #백성이되려다가백선이되어버렸다네 #ㅇ이되려다ㄴ이되어버렸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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