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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야매 Jul 09. 2019

대마초의 불평등

합법화된 대마초와 인종차별

대마초 합법화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에서는 ‘그린 러시’가 한창이다. ‘그린 러시’란 양지로 올라온 대마초 시장을 향한 투자 열풍을, 19세기 금광을 찾아 너도나도 서부로 몰려들던 이른바 ‘골드 러시’ 현상에 빗댄 신조어다.


수 십 년간 음지에서 성장해오던 대마초 산업은 빛을 보자마자 빠른 속도로 그 거대한 몸집을 드러내고 있다. 미 의회 합동경제위원회(Joint Economic Committee)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합법적 대마초 시장의 매출액은 약 13조 원에 도달했고, 이는 점점 늘어나 2022년에는 27조 원 이상의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합법화 후 빠른 속도로 그 크기를 드러내고 있는 대마초 산업 (미의회 합동경제위원회 자료 토대로 차트 재구성)

돈 냄새를 맡은 투자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새로운 녹색 빛 땅에 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가능성은 푸르면서도 주인이 없는 이 분야는 그야말로 신대륙이다. 투자자들 눈에 주인 없는 이 땅은 어디든 깃발만 꽂으면 손에 돈다발을 쥘 수 있는 금싸라기 땅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인이 없다는 것은 겨우 투자자들만의 착각일 뿐이다. 신대륙 같은 대마초 산업 분야에도 사실 원주민이 있다. 대마가 불법이던 시절부터 체포의 위협을 무릅쓰고 몰래 물건을 거래해오며 산업을 비옥하게 만들었던 음지의 대마초 업자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글에서는 그들의 사연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범법자인 대마초 업자들에게 집중해야 하는 이유를 먼저 짚고 넘어가는 것이 순서에 맞겠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그들은 결국 범죄자에 불과하다. 그들이 불법으로 일궈 왔던 대마 시장에서 밥그릇을 뺏기던 말던, 우리가 그 사정까지 알아야 할 까닭은 무엇일까? 투자자와 대마초 업자의 인종에 초점을 맞추면 힌트가 보인다. 닉슨 대통령이 선포한 ‘마약과의 전쟁’ 이래로, 수 십 년간 이루어졌던 인종차별적 처벌의 맥락을 읽어야 한다.


미국 내에서 마약을 뿌리 뽑겠다고 시작된 마약과의 전쟁. 경중을 막론하고 마약 사범에 대한 무관용 주의적인 체포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특히 대마초 관련 범죄에서 흑인을 위시한 유색인종은 차별의 피해자였다. 미국 시민 자유 연맹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마초 소지로 기소된 인구의 십만 명당 비율은 흑인이 백인보다 3.43배나 더 높았다. 흥미로운 부분은, 흑인과 백인의 대마초 흡연율이 별반 차이 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백인이 흑인보다 달리기 실력이 좋아 경찰로부터 더 잘 달아날 수 있었다는 주장을 할 것이 아니라면, 검거 과정에서 선택적 체포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처벌에 관한 불평등은 흑인 사회의 정상적인 유지를 불가능하게 했다. 그저 대마초를 소지했을 뿐인, 폭력적이지 않은 흑인들을 대거 전과자로 만들어 버렸다. 전과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게 된 그들은 빈민층이 되거나 빈민층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워졌다. 대마초 사범에 대한 지나친 무관용 주의가 유색인종 지역사회의 해체를 빠르게 불러왔다. 무관용 주의가 백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은 더욱 눈여겨볼 부분이다.


대마초와 관련된 불평등은 합법화가 이루어진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는 처벌의 영역이 아닌 산업에서의 불평등이다. 상식적으로 대마초가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면, 대마초를 음지에서 팔던 사람들도 따라서 양지로 올라와야 자연스럽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마초는 볕 위로 올라왔지만, 그 대마초를 여태껏 다루어 왔던 사람들은 여전히 볕 밑에 있다. 그들 대신 볕 위에서 재미를 보고 있는 것은 백인들이다.


그간 대마 판매의 역사를 고려한다면 백인 소유 대마사업체의 높은 비율은 아이러니하다 출처: Marijuana Business Daily

마리화나 비즈니스 데일리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 합법적인 대마초 판매점을 운영하는 소유주의 81%가 백인이다. 산업 내 인종 비율은 벌써 무너졌다. 지난 수 십 년간 대마 산업을 이끌어 온 유색인종들은 대마초에 관해서 누구보다 전문가이지만, 그 전문성을 수익으로 전환하는데 실패했다. 그 이유를 하나로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들이 산업에 진입을 시도할 때부터 겪게 되는 차별이다.


퍼시픽 스탠다드와의 인터뷰에서, 대마초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데야 포춘 씨가 털어놓은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사연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네트워크를 다지고 투자자들을 만나기 위해 네트워킹 행사에 갔을 때였어요. 저는 그곳에서 제게 인사조차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었죠. … (중략) … 결국은 문제는 자본이에요. 자본이 있어야 그걸 가지고 다시 돈을 벌 수 있죠. 하지만, 당신이 여성이거나, 유색인종 혹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면 투자를 받는 것이 훨씬 어려워져요.”


인터뷰가 실린 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하려는 유색인종들은 백인이었다면 겪지 않아도 될 다양한 장애물들을 만나게 된다. 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이 그것이다. 투자를 받는 것부터 시작해 기존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네트워크에 진입하는 것, 조언자를 얻는 것 심지어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마저 쉽지 않다. 대마 사업 역시 이러한 장애물들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


물론 대마초와 유색인종을 둘러싼 논리가 퍼즐 조각처럼 딱 맞아 들어가지는 않는다. 어쨌든 그간 대마초를 팔아왔던 것은 법 밖의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피해를 더욱 입어야만 했던 그들의 입장은 공감받을 필요가 있다. 같은 행동을 해도 피부색 때문에 받아야 했던 부당한 피해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합법화 이후 마땅히 기회로 그들에게 주어져야 했던 부분은 자본을 가진 백인들이 독차지해버렸다. 대마초가 불법이던 시절, 대마를 향한 무관용적인 체포는 유색인종들의 삶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반면, 돈이 될 것 같은 대마 산업을 향한 ‘그린 러시’는 백인에게만 해당할 뿐, 흑인과 히스패닉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Photo by Vladimir Solomyani on Unsplash

앞선 타코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신이 아무리 한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한들, 미국에서는 그것이 성공으로 이어진다고 보장할 수 없다. 특히 당신이 부유한 백인 남성이 아니라면 말이다. 피부색과 당신의 배경이 당신의 성공 가능성을 결정짓는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세워진 미국 사회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것은 미국 사회의 현실이자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질서의 현주소다. 어쩌면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를 전복시키자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가장 발전된 자본주의를 가지고 있다는 미국의 사례로 비추어 보았을 때, 지금의 자본주의는 어딘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가장 발전된 자본주의에서마저 이런 오류가 발생한다면 교정이 시급하다. 쉽게 왈가왈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명쾌한 답안을 찾는 일이 쉬울 리도 없다. 하지만 틀린 것이 있다면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고쳐야만 한다. 그 오류가 우리 모두의 삶을 집어삼키기 전에 말이다.


간단히 생각하면 큰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오직 내가 바라는 것은, 피부색과 자본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돌아갈 수 있는, 상식이 지배하는 세상이 오는 것, 그 뿐이다.



참고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2013). The War on Marijuana in Black and White. New York: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Joint Economic Committee. (2018). The National Cannabis Economy.

McVey, E. (2017). Chart: Percentage of cannabis business owners and founders by race. Retrieved from https://mjbizdaily.com/chart-19-cannabis-businesses-owned-founded-racial-minorities/

New Report: The State of Legal Marijuana Markets, 6th Edition | BDSA. (2019). Retrieved from https://bdsanalytics.com/new-report-legal-marijuana-markets-projected-to-reach-23-4-billion-employ-nearly-a-half-million-americans-by-2022-effective-end-of-federal-prohibition-is-in-sight/

Posner, L. (2018). The Green Rush Is Too White. Retrieved from https://psmag.com/economics/the-green-rush-is-too-white-hood-incubator-race-weed

Ross, J. (2018). Legal marijuana made big promises on racial equity — and fell short. Retrieved from https://www.nbcnews.com/news/nbcblk/legal-marijuana-made-big-promises-racial-equity-fell-short-n952376

김광기 (2014). 미국의 소득 불평등과 부의 불평등, 그 현황과 진단, 사회 이론.

허경미 (2018). 미국의 대마초 합법화 과정 및 주요 쟁점 연구, 한국경찰연구, 17:2, 29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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