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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야매 Feb 09. 2019

얼마 전, 소매치기를 당했습니다.

피해자가 되었기에 느낀 것들


미국에서 핸드폰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출처: pixabay


얼마 전에 소매치기를 당했습니다. 잠시 한 눈이라도 팔면 뭐든 사라지는 곳이 미국이라고, 항상 조심하라고 귀따갑게 들어왔건만, 잠깐 방심한 틈에 일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한인 타운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오랜만에 한식이나 먹지 싶어 의자에 기대 앉은 채 핸드폰으로 음식점을 정신 없이 찾아보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열차가 역에 정차하고 문이 열리는 찰나,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흑인 남성이 제 손에 들려 있던 휴대폰을 낚아채갔습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지라 무슨 상황인지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해 이역만리 타지에서 추격전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도와달라는 간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그 남성을 뒤쫓아 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도망친 그 길은 동양인에게 우호적인 거리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도움을 요청하며 그를 쫓는 제게 그 동네의 주민들은 조용히 하고 꺼지라는 대답을 돌려주었습니다. 그들의 적대적인 시선과 목소리 속에서 저는 추격을 그만 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만에 하나 그를 잡더라도 그 거리에서 핸드폰을 뺏고 경찰이 올 때까지 그를 묶어둘 자신이 없었으니까요. 너무나 분하고 화가 났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같이 있던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경찰에 연락하고 리포트를 작성하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지요.


사건 이후, 저는 더 좋은 핸드폰을 샀고 용의자를 잡아간다는 경찰의 연락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저를 괴롭히는 일들이 있습니다. 언제 또 사건의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항상 저를 감싸 안습니다. 누군가 뒤에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질 때면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고 핸드폰을 꽉 움켜쥐게 됩니다. 이제 미국의 그 어떤 거리를 걸어도 예전과 같지 못합니다.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항상 주변을 경계하게 됩니다. 그날의 그 시선들이 저를 불안케 합니다. 고작 소매치기 한 번에 과민반응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저도 다른 사람을 통해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 어떤 것인지 함부로 상상하고 섣불리 판단하려 하지 마십시오. 저도 아무렇지 않은 체, 별 일 아니었다는 체하며 살아가고 싶고 또 그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살아간다 한들 그것은 모두 체일 뿐이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못 들은 체하고 있다는 것도요.


또 하나, 사건 이후, 위로의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이 곳은 한국 같지 않으니 제가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고요. 그 분들이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저도 알지만,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마치 ‘네가 사건을 당한 이유는 네가 조심을 덜 했기 때문이야’라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왜소한 동양인이 지하철에서 정신 놓고 핸드폰에만 열중하고 있었으니 범죄자 눈에 딱 들어왔을 수 밖에요. 조금 더 주변을 경계하고 조심했으면 아마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의 당사자가 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조금 이상합니다.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피해자가 조심해야 한다니요. 마치 사건의 책임이 피해자에게도 주어지는 모양새입니다.  비난은 제 핸드폰을 낚아간 그 남성에게만 주어져도 충분한 것 아닌가요? 저는 이미 핸드폰도 잃었고 그 안에 있던 소중한 사진과 자료들까지 모조리 날려보냈는데, 이 일에 제 책임까지 있다는 뉘앙스를 듣고 있자니 어딘가 억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 사건으로 머나먼 타지에서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대학생 남성으로 한국에서 살아갈 때는 겪지 않아도 됐던 상황이지요. 대신 이제야 피해자의 시선에서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피해자가 겪어야 하는 정신적 고통과 주변의 목소리들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간 들어왔던 사회 약자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떠오르고 마음에 와 닿기 시작합니다. 직접 당사자가 되어보기 전까지는 그들의 고통을 함부로 알 수 없습니다. 겉으로만 언뜻 보고 감히 재단해서는 안되겠지요. 미국에서 불미스럽게 얻은 경험이 뜻밖의 교훈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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