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품고 간직하는 말 한마디
내가 여행일을 오랫동안 하면서 변한 것이 있다면
계획형 J성향에서 무계획, 즉흥적인 성향인 P가 된 것이다.
해외 출장 시에 가장 중요한 서류인 여행 확정서에는
촘촘하게 시간대별로 짜여있다.
여행을 마치 미션 수행하듯이 다 해내야만 하는데 모든 여행이 그렇듯 변수가 너무나 많다.
항공, 호텔, 날씨, 교통, 긴급, 응급 상황 등을 포함해서
셀 수도 없는 다양한 경우들을 언제나 헤쳐 나가야 한다.
이제는 별별일(?)을 다 겪어서인지 이제는 당황하지 않고 어떤 상황을 마주해도 초월한 것처럼 너그럽게 해결하려고 하는 편이다.
아직도 어려운 것은 결국 '사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넘어 몇 날 며칠 같이 여행을 하는 것은 경력이 아무리 쌓여도 녹록지 않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컴플레인이 날 때가 종종 있는데
한 번은 손님이 크로아티아 호텔에서 컴플레인을 걸어서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일일 텐데
그날도 나는 내 잘못이 아닌 일에 책임을 지고 해결을 해야 하고 사과를 해야 했다.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손님이 원하면 뭐든지 해야 한다는 낡은 서비스업 철학에 매우 지쳐 있던 시점이기도 했고 여행이 일이 된 삶에 대해 회의를 느끼던 시기였다.
아직 마음이 채 치유되기도 전에
마음을 무덤 속에 꽁꽁 묻어놓고서 동유럽 출장을 또 떠나게 되었다.
이번에는 또 오스트리아 호텔이 오버부킹으로 취소되어 체크인 한 시간을 남겨놓고 옆 나라 독일 호텔로 가라고 통보가 왔다.
내가 손님이어도 납득이 안되고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을 설득시켜야 하고
기사 아저씨도 추가로 운전을 2시간이나 더 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여행을 일로 한다는 건 너무나 많은 변수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일정표 상으론 예정에도 없던 지명도 처음 듣는
독일의 낯선 시골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이 밝았다.
변동된 일정으로 출발시간이 여유가 생겨서
날씨도 너무 좋아서 혼자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손님이 다가와서 하는 말이
인솔자님 '오늘은 수월한 하루 보내세요!'
그 말을 듣는데 뭉클했다.
좋은 하루, 행복한 하루가 아니라 수월한 하루라는 말은 처음이었다.
나보다 연장자인 손님들이 가끔 내게 건네는
말 한마디들이 잔상이 오래 남는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가끔 삶이 고단한 날이 있을 때마다 아름다웠던 독일 풍경과 유난히 포근했던
'수월한 하루'라는 말을 마음에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