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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Dec 15. 2023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아니, 그땐 엄마가 내 딸 해요.

오랜만에 아이들 학원 라이딩 중에 틈이나 엄마랑 통화를 했다.

"오늘은 시간이 있나 보네?"란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로 우리의 대화는 시작했다. 엄마의 목소리는 오늘도 참 다정하다. 바빴던 하루동안 잠시나마 온화한 목소리에, 내 마음도 녹아내린다.


엄마는 뜬금없이 목걸이를 하나 해주겠다고 하셨다.

갑자기 무슨 목걸이냐고, 괜찮다고 말하니 엄마랑 동생이랑 우리 셋, 커플 목걸이를 하나씩 맞추고 싶다고 하셨다. 너희들한테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며 엄마 마음이니, 그냥 받으라고만 하신다.


엄마가 해준 게 없다니 무슨 말인지...

엄마는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내 아침식사와 점심 도시락을  입맛에 맞게 싸주셨고 입 짧고 반찬투정 심한 큰딸 비위를 다 맞춰가며 들어주신 분이다. 손이 많이 가는 갈비, 잡채, 식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고, 명절 버금가는 식사들을 내가 해달라면 묵묵히 해주셨다. 네 살 터울 여동생과는 달리, 유난히도 요구 사항이 많았던 나에게 힘들 법도 한데, 딱히 힘들다는 내색 없이 키워주신 분이다. 과일을 먹으면서도 모양이 뒤틀리거나 이상한 건 '이건 엄마가 먹을게. 넌 이쁜 거 먹어. 넌 이쁘니까." 란 말로 일상 속에서도 난 이쁘다는 말을 들으며 정말 그런 줄 알고 자랐고, 아이들에게도 이쁜과일을 먹이고, 자투리나 못난이는 내가 먹는 엄마가 되어갔다. 엄마가 그랬던 것 처럼, 나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첫 아이를 낳고 키우며, 워킹맘으로 지내야 했을 때는 집 근처로 이사오라고 도와주겠다고 손 내밀어 주신 것도 엄마였고, 그렇게 손주를 키울 때도 아픈 허리 부여잡고 업어가며 키워주시다 디스크가 터져 수술까지 하셨는데 항상 더 못해주셔서 미안하다고만 하시는 분이다.

나는 엄마 같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런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리 살지는 말아야지. 난 내 인생을 내 나름대로 멋지게 살아내고 말테야!라고 생각했던 적이 수없이 많았다. 엄마 같은 인생은 한평생 자식이나 남편을 위해 희생만 해야 하고 결국 남는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과 살 부대끼며 살아가는 요즘 드는 생각은, 살면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인생이어서 '참 행복하다.‘ 사랑은 받는 것만이 행복이라고 믿었 던 내 어리고 철없었던 지난날과는 다르게, 나를 보며 사랑을 표현하고 웃음 짓는 내 귀여운 아이들에게 퍼주는 이 사랑이 마냥 설레고, 두아들과의 사랑은 오직 내 짝사랑일지라도 행복하다.


엄마는 내 친구들에게도 참 잘해주셨다. 내가 중1 때 소나기가 억수같이 내리던 한 여름날이었다. 굴러가는 나뭇잎만 봐도 깔깔대고 웃던 친구와 나는 어차피 우산을 써도 비바람에 옷이 젖으니 그냥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걸어가자고 했었다. 우리가 신나게 비를 맞으며 집으로 갈 때, 교복과 책가방과 신발은 흠뻑 젖어들고 있었다. 온몸이 흠뻑 젖은 우리를 보고 엄마는 얼른 교복을 벗으라며 감기 든다고 걱정해 주셨다. 옷과 신발, 가방이 젖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게 아니라, 마냥 즐거워 보이는 우리를 보며 웃음만 지으셨다.  그리고 따뜻한 우유와 간식을 주시며 놀라고 했다. 한참을 놀다 친구가 집에 갈 무렵. 신발은 드라이기로 다 말려놓으셨고, 친구 교복은 깨끗하게 삶고 빨아 다려주셨다. 친구는 바쁜 엄마 덕에  이렇게 빳빳하게 다려진 블라우스는 입어본 적이 없다며 행복해하는 얼굴로 돌아갔었다. 이 친구와는 지금도 멀리 떨어져 살지만 여전히 절친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친구가 말하기를 너희 엄마의 한입에 쏙쏙 들어가던 김밥은 정말 맛있었다며, 도시락통에 담겼던 그 때깔 좋은 김밥이 참 부러웠다며, 아직도 그 시절의 추억을 꺼내 이야기해 준다. 엄마는 내 입이 작으니, 김밥도 항상 작고 이쁘게 한입에 쏙쏙 들어가도록 싸주셨던 기억이 그제야 난다. 맞아. 그랬었지...


또, 중학교 체육대회날이다. 어느 초가을쯤 열렸던 체육대회날 반바지를 입고 긴 상의를 입었는데, 그만 달리기 하다 친구와 발이 엉켜 넘어져 버렸다. 넘어지며, 운동장 모래바닥에 슬라이딩해 버렸고 무릎에는 지금도 도드라진 큰 상처가 생겼다. 그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고 피도 많이 났고 많이 아팠다.

보건실에 가서 간단히 처치를 하고, 집에 가서 "엄마, 나 넘어졌어" 하며 징징댔더니 우리 엄마는 내 상처를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 우리 딸  많이 아팠겠다며, 그걸 보면서 난 정말 엄마에겐 소중한 존재구나. 내가 아파하면 엄마는 더 아파하는구나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 지금의 나보다 몇 살이 더 많은 엄마는 나에게 세상 최고 따뜻하고 여린 분이셨다.  


아이들을 키우며 난 엄마처럼 정성을 쏟는다. 아들 축구교실 유니폼이  구겨졌을 때는  다리미로 다림질을 해주며 엄마를 떠올렸다. 블라우스를 뽀얗게 빨아서 어깨가 칼각지도록 다리미질을 해주었던 그때, 난 그게 당연한 건 줄만 알았다. 내 블라우스는 두장으로, 항상 입고 벗어놓으면 엄마는 새하얗게 삶고 빨아 다림질을 해서 옷걸이에 걸어주셨다. 남편에게 유니폼 사진을 보내었더니, 왜 펜티도 다려주지 그러냐며 날 놀린다. 난속으로 생각한다. '괜히 부러우니깐!'  

아침밥은 항상 갓 지은 밥과 반찬으로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게 노력하고, 아직 아이니 그럴 수 있지 하며 웬만한 잔소리는 삼켜낸다. 잔소리는 무의미한 말임을 알기에 숨을 고른다. 엄마가 했던 것처럼...



엄마집에 가서 아이들과 친구처럼 놀다, 장난이 심해질 즈음에 지켜보던 엄마가 한마디 하신다.

"초록아, 연두야. 엄마는 할머니 딸이야. 너희 할머니의 소중한 딸한테 그렇게 하지 마. 그럼 할머니가 속상하잖아."

어릴 때도, 다 커서 마흔을 앞둔 어른이 되어서도 엄마는 내 든든한 버팀목이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이며, 든든한 사랑이다. 가끔 손주보다도 더 딸을 사랑해 주시는 엄마가 곁에 계신다는 게, 얼마나 심적으로 든든한지 모른다.


엄마랑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둘만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핑계들로 엄마랑 단둘이 떠나는 여행을 해 본 적이 없다. 더 나이가 드셔서 장거리 여행이 힘들어지기 전에 엄마와 단둘이 오붓하게 잊지 못할 추억 하나 만들어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빌어본다. 새록새록 추억들을 한아름 쌓아 두고 두고 꺼내볼 수 있게 말이다.


오늘은 꼭 엄마한테 전화를 해야겠다.

매일 필요할 때만 엄마를 찾는 나를 반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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