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서서히 멀어질 준비
“엄마, 채원이가 나한테 ‘야, 이 마마보이 xx야’라고 했어.”
헉. 많이 놀랐지만,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그 말 들으니 초록이 기분이 어땠어?"
“뭐, 채원이 원래 그런 말 잘하잖아. 그러려니 했지.”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아들이다.
채원이는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의 작년부터 지금까지 같은 반 여자친구이다. 털털한 성격에 장난치기 좋아하는 여자 친구라, 우리 아들은 채원이를 편한 친구사이라 여기고, 친하게 지낸다. 아들들과 아파트 일층으로 내려가 배드민턴을 치거나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채원이를 만나 종종 함께 놀기도 했던지라, 나도 채원이를 잘 안다. 키도 크고 인사도 잘하는 싹싹한 친구란 걸.
아이와의 대화는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xx라는 욕이 기분 나쁜 게 아니라, 그 앞의 마마보이가 귀에 거슬렸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내 남자 짝꿍. 이경환.
유달리 얼굴이 하얗고 눈동자가 검은색이 아닌 갈색이었던, 찰랑거리는 머리칼을 가진 멋진 친구였다. 집도 잘 살았고, 옷매무새도 깔끔한 그 친구가 난 그냥 미웠나 보다. 아니 부러웠나 보다. 친구가 내 쪽의 책상으로 넘어오는 게 싫었고, 말을 거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마마보이라고 놀렸다. 지금 같으면 학교폭력감이다. 왜 그랬는지 그 이유까지 분명히 생각이 나지 않지만, 아직도 그 이름이 생각이 나고 그 아이의 얼굴이 분명하게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난 아주 많이 미안함을 가지고 있나 보다. 그때도 참관수업이 있었는데 그 친구의 엄마가 짝꿍인 나에게 인사를 하며 "우리 경환이랑 친하게 지내렴" 하신걸 보면 경환이도 집에 가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어렴풋이는 했나 보다.
지금의 우리 아들처럼...
아이 학교에서 생존수영수업이 있어 도우미로 신청을 했다. 5번 중 2번, 수업에 참관하여 수업이 끝난 후에 여자친구들의 머리만 말려주면 되는 일이라 늘 그랬듯이, 아무 생각 없이 신청을 했는데 동생이 한 마디 했다.
"언니. 초록이가 마마보이라는 말을 듣는 이유가 있네. 학교를 또 갔어? 이제 적당히 가." 생각해 보니 아이를 위해서, 학교를 위해서 봉사하기 위해 난 생각보다 학교를 자주 가는 편이었다.
급식모니터링, 녹색어머니, 수영도우미, 학부모회, 운영위원회 그 외 많은 학교 활동들을 참여하고 그 안에서 뿌듯함을 느꼈던 나인데, 적당히 가야 한다니... 동생의 말을 들으니 생각이 더 많아진다.
이제는 우리가 멀어져야 할 시간. 나중에 또 만나요~
그렇다. 우리도 서서히 거리 두기를 해야 할 시간이 왔나 보다. 이 기특하고 귀여운 내 첫사랑과 어떻게 멀어지지?
생각만으로 마음이 아득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너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서 이제는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아이는 곧 사춘기를 맞이할 것이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호환마마보다도 무섭다던 중2병도 함께 올 것이다. 그러다 차츰 성인이 되어 갈 준비를 하겠지? 아이는 생각보다 더 단단하게 커 나가고 있고, 더 일찍 독립을 할 것 같다.
유퀴즈 제170화 김붕년 교수님 편을 여러 번 돌려 보았다.
"당신 자녀를 나와 아내에게 온 귀한 손님처럼 여겨라."
귀한 손님이 집에 왔을 때처럼 극진히 대접하고, 소중히 여겨 개별자로 존중해 주며, 언제 떠날지는 모르지만, 군대, 학교, 결혼 등 언젠가는 떠날 수 있는 사람이니 올 때 귀하게 온 것처럼 가고 싶어 할 때 언제든지 가게 해주는 것. 올 때 귀하게 왔으니, 너무 감사한 일이니 그 아이한테 정말 우리가 온전히 애정을 쏟고, 좋아하는 거 응원해 주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것. 눈물이 났다. 언젠가는 떠날 것이라 눈물이 난 게 아니고 귀한 손님을 더 극진히 대접하지 못한 미안함에 마음이 아팠다.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네가 원하는 대로 더 애정을 쏟고 귀하게 대접하리라. 한번 더 다짐했던 순간이었다.
이제는 정말,
서서히 멀어질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내 첫사랑 내 아들.
너랑 나는 유달리 잘 맞는 사이였어.
서로 바라보는 눈에는 꿀이 뚝뚝 떨어졌고
유난히도 안기길 좋아하는 넌. 내 껌딱지였지.
둘이 카페를 가도 차분히 앉아 엄마를 기다려주는 아들이었고
좀 커서는 카페를 가도 대화가 통하는 친구였어.
세상에 그런 아들이 어딨 냐고 물어오면 내가 너를 그리 보니 그렇게 크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그런 아들.
그게 바로 너였어.
내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은
줘도 줘도 더 주고 싶은 그 마음.
엄마가 된 뒤 알게 된 그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