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도 아닌 새끼. 짐승만치 못한 놈. 아빠는 주변 사람들이 조금만 싸가지가 없는 것 같으면 그 사람들 욕을 내 면전에서 하곤 했다. 엘레베이터에 탄 이웃에게 인사를 했는데 인사를 받아주지 않고 폰이나 보고 있다는 식이었다. 또 언제는 급히 뛰어가 엘레베이터를 타려고 하는데 사람 오는 거 뻔히 알면서 닫힘 버튼을 누른다는 식. 서울에서 오래 산 나는 아빠가 쓸 데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정을 기대한다고 생각했고. 가끔은 따끔하게 말했다. 요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그렇게 좋게 안 봐. 젊은 사람은 오히려 낯선 사람이 인사하는 걸 무례하다고 생각할 걸. 아빠는 그 말을 하는 나를 똑같이 경멸하는 표정과 어투로 대했다. 늘 같은 화를 내게 표출하는 아빠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묵묵히 듣고 침묵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침묵이 견디기 힘들어 아빠를 피하고 외면했다. 내가 나의 목소리를 내면 인간도 아니게 될까봐. 내가 짐승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내가 만나고 어울리는 서울 사람들은 아빠의 말대로라면 인간도 아니고. 짐승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람들은 아빠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싸가지와 따뜻한 정을 기대하는 것을 강요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그러면서 내가 무슨 싸가지 없는 말과 행동을 하건 서로 웃으며 이해해줄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는 너무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화를 내는 선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고 살았다. 눈치보지 않고 살고 싶었다. 침묵하지 않고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다 밖으로 꺼내며 살고 싶었다. 아무것도 강요 받기 싫었다. 아빠와 멀리 떨어지면 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래서 뉴질랜드로 떠났다. 그런데 내가 봤던 영정사진 속 아빠의 얼굴은, 나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아까 전에 물을 마시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소변이 마렵기 시작했다. 옆을 보니 아까 전에 책을 읽던 아저씨도 이어폰을 꽂은 채 자고 있다. 아까 눈 가리개에 목베게 까지 완전 무장을 하고 잠에 들었던 여자는 잠에서 깨어 헤드폰을 끼고 아이패드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일어나야 하는데..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몸을 창문에 부착하며 옆으로 기울여 일어났다. 바깥 발을 내 옆 좌석 앞 바닥에 빼 양 손을 앞 좌석의 손잡이에 가져다 놓는다. 슬금 슬금. 뒤를 보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보이며 몸을 의자쪽으로 부착하고 양 발을 꽃게처럼 옆으로 움직인다. 어쩔 수 없이 슬쩍 아저씨의 모인 정강이에 내 종아리가 스쳤다. 아저씨는 간신히 든 잠에서 깼는지 손으로 자기 좌석의 팔걸이를 짚었다. 죄송합니다. 숨처럼 말을 내뱉으며 더 살며시 양 발을 움직인다. 내가 아저씨 무릎 앞을 지나가고 있는 때였다. 영화를 보던 여자는 아이패드를 올려 놓은 앞 의자 테이블을 미리 접고 있었다. 그리고는 아이패드를 옆구리 의자 빈 공간에 넣더니. 모아놓은 허벅지와 정강이를 복도 바깥으로 뺀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말을 속삭이며 간신히 복도로 나왔다. 푹신푹신한 비행기 복도 바닥을 신발로 맞닿으며 한 칸씩 한 칸씩 걸어갔다. 복도 끝 앞 세 번째 열 쯔음에 한 승무원이 서서 오른 편 창가 쪽 객석의 손님을 바라보고 이야기 하는 중이다. 미리 눈으로 가늠해보니 내가 승무원 가까이 지나갈 때까지 승무원은 자세를 바꾸거나 자리를 비켜주지 않을 모양새였다. 걸으면 걸을수록 창가 쪽을 바라보고 있는 승무원과 가까워져갔다. 나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잠시 지나갈게요. 말을 내뱉었다. 자리를 막고 있던 승무원은 이제야 내가 왔다는 걸 눈치 챈 듯 오른 손을 세번 째 열의 짐칸을 붙잡고는 몸을 좌석 쪽으로 기울여 자리를 비켜줬다. 화장실을 표시하는 픽토그램이 더 가깝게 보였다. 깜깜한 비행기 내부에만 있어서 그런지 그 픽토그램을 내는 초록색 빛이 눈부셨다. 눈을 가늘게 떠서 화장실 문 쪽을 바라봤다. 화장실을 들어가는 문은 옆으로 밀어야 했다. 왼 손을 몸 바깥으로 벌려 화장실 문을 열고는, 몸을 집어넣고 아직 손잡이에 걸치고 있는 왼 손을 다시 몸 쪽으로 당겼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고. 문 쇠고리로 문을 잠갔다. 비좁은 화장실에서 혼자가 된 나는 마침내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크게 울음이 터졌다. 이제 아빠는 죽었다. 더 이상 아빠의 눈치를 볼 필요도, 피할 필요도 없어졌다. 그런데 이제 아빠는 나에게 전화하지도 않는다. 아빠를 볼 수도 없다. 발걸음을 좀 편하게 해도 된다는 듯이 오른 발을 오른쪽으로 크게, 왼 발을 왼 쪽으로 크게. 팔자걸음으로 걸어가 소변기에 가까이 다가갔다. 급하게 물내리는 쇠버튼을 두 어번 두드리며 눌렀고. 세면대 앞에 서서 손을 씻으며 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내 얼굴을 바라봤다. 1초. 2초. 3초. 4초. 5초. 물을 틀어놓고 계속 그렇게 바라봤다. 무언가 따뜻한 게 얼굴로 올라오고 있었다.
*
“아. 승민씨. 지금 도착했어요?”
12시간이 다 지났다. 뉴질랜드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오니 집주인 분이 전화를 해둔 것을 확인해 다시 전화를 걸었다.
“네. 아유, 오랜 만에 연락 드리네요”
집주인은 내가 뉴질랜드에 살면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일을 구해야 할 때는 집세를 미뤄주기도 하였고. 집주인이 운영하는 한인 게스트하우스 를 통해 외딴 타지에 살면서도 종종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어 외롭지 않았다. 이 곳의 생활을 하면서 나의 은인이라 할 수 있을 인연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2주동안 지내면서 집주인에게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아니에요. 당연히 경황이 없었겠죠.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연락도 없어서 괜찮을 지 많이 걱정했어요.”
생각보다 나는 한국에서 별 일 없는 사람 처럼 지냈다. 장례식이 다 끝나고 나서는 조의를 표하러 온 친구들을 만나러 서울로 가 일주일 정도 있었다. 친구들 집에서 자기도 했지만. 이태원의 게스트 하우스를 2박 3일정도 잡아 생활하느라 마치 꼭 여행에 온 것 같았다. 친구들과 아빠 이야기는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랜만에 서울의 좋은 음식점, 좋은 카페에서 만나 서울에서는 어떻게 지내는지. 그리고 나는 뉴질랜드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할 따름이었다. 그러고 남은 기간은 다시 고향인 군산에 내려가 엄마와 아저씨가 있는 집에서 지냈다. 만난 사람들과 뉴질랜드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지내는지. 내가 생활하는 곳은 얼마나 멋진지에 대해서나 이야기 했지. 이 곳에서 내가 누구의 도움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다시 뉴질랜드에 와서 집주인과 오랜만에 연락하는 게 꼭 몰래 바람피다 걸린 사람처럼 미안했다.
“감사합니다. 이제 공항에 나와서 택시 타고 집으로 갈 것 같아요”
“그래요. 아직 정신 없을텐데 집에 짐 풀고 푹 쉬어요. 그 게스트하우스 부엌 냉장고에 어제 하고 남은 스튜 있는데. 그거 먹으려면 먹어요. 저는 오늘 아는 지인이 집에 와서 교외에 구경가느라 집에 늦게 들어올거에요.”
당연히 돌아오는 당일 날 집에서 얼굴이라도 볼 줄 알았는데. 사정이 있으면 어쩔 수 없는데 그래도 이상하게 서운했다. 그냥 그만큼 큰 일이었으니까.. 기다리던 내 가방이 내 앞까지 다가왔다. 나는 잠시 핸드폰을 왼 쪽 옆 구리에 끼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서둘러 가방을 한 쪽 어깨에 메고는 다시 대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고 오세요. 아 그리고 집세는 다음달까지 꼭 내도록 하겠습니다.”
“에이 그런 건 일단 신경쓰지 마요. 마중이라도 해줬어야 했는데 미안해요. 그럼 조심히 오고, 내일 아침에 봐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도 벌써 그 집에 1년 반 동안 생활했으니까. 이번 달을 빼면 월세는 조금씩은 미뤄질 때가 있었어도 꼬박꼬박 잘 내고 지냈다. 게스트하우스에 손님들이 오면 주인처럼 친절하게 맞이해주고 같이 주변 좋은 장소 같이 놀러가주고. 집주인이 잠시 한국에 갈 일이 생기면 내가 직접 손님을 받는 수고를 할 때도 있었다. 물론 평상시에 게스트 하우스 건물을 내 것처럼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지. 나도 그 생활이 즐거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마냥 집주인이 내게 은인처럼 뭔가를 베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음이 더 가벼워졌다. 공항 로비에 나가니 오후 다섯 시 주말이라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 중에는 한국에서 뉴질랜드로 돌아온 가족을 맞이 하기 위해 기다리던 한국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이런 외딴 해외에서 지내다 보면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한국 사람 한 명의 목소리만 들려도 어쩔 줄 모르게 시선이 그리로 향하게 된다. 나는 어쩌다보니 그 한국인 가족이 가는 길을 뒤따라 공항 밖으로 나왔다.
6월이 된 뉴질랜드의 바깥 공기는 쌀쌀했다. 비가 조금 왔었는지 바닥은 젖어있었다. 2주 전 뉴질랜드의 옷차림 그대로라 바깥에 오래 있기는 싫었다. 공항 문 건너 편으로 빈 택시가 보였다. 나는 가방 끈을 지껴 잡은 채 서두르는 걸음으로 그 택시를 붙잡아 차 안에 탑승했다. 차를 타고 15분 정도 지났을까. 이제 집에 다 와갔다. 그 몇 분동안에 택시기사와 꽤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날씨가 쌀쌀하지만 하늘이 참 예쁘다고. 한국 사람이라는 말에 자기는 아이들이 다 크면 와이프랑 한국에 꼭 가볼 거라고 했다. 나는 가볼만한 몇 곳을 추천해줬다. 내가 이 곳이 좋은 점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처음 마주친 사람과도 반갑게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것. 가볍게 안부인사를 묻고 서로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 아빠가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들에게 바라던 것들이었다. 내 집으로 가는 길가가 보였다. 차 앞 유리 너머로 해가 이제 거의 다 지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택시기사에게 조금만 더 가서 있는 해변가에 가달라고 요청했다. 5분 쯤 거리를 더 지나 해변 입구 도로에서 택시를 내렸다. 다음에 꼭 한국에 가보길 바란다고 인사했다.
조금 걸어서 해변 입구에 도착했다. 수풀가 사이에 놓여져 있는 나무 계단을 내려갔다.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 해가 바다 쪽으로 지고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해변가로 나왔다. 오른 쪽 옆에 하얀 벤치 의자가 마침 비어있었다. 철퍽 철퍽 풀이 틈틈이 난 진흙 모래사장을 신발로 밟은 채 의자까지 걸어가서 앉았다. 메고 있던 가방을 옆 빈자리에 내려놓았다. 앞을 멀리 바라다본다. 하늘에 구름은 조각 조각 떼어져 해와 함께 바다 너머 수평선으로 몰리기 시작한다. 그 몰려 있는 구름들에 다 져가는 해의 빛깔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다. 분홍색 하늘이다. 내가 일이 끝나면 위스키 한 잔을 마시며 매일 바라본 그 분홍색 하늘. 주위에 노을의 사진을 찍고 있는 한 커플의 말소리가 귀로 솔솔 들어온다. 혼자 의자에 앉아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그 풍경을 보는 기분이다. 구름을 돌아다니는 빛은 구름을 벗어나 구름이 다녀간 그 위 하늘에서 산란히 비춘다. 하늘은 위로 올라갈 수록 점점 분홍빛깔이 옅어져 오히려 파래지고 있었다. 파도소리를 쫓아 뒤의 숲에서 바다로 향하는 바람이 내 귀를 스쳐 지나간다. 아빠인가. 아빠가 저 멀리 바다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걸까. 햇빛 줄기가 가느다랗게 걸쳐 있는 코로 숨을 들이킨다. 마음 껏 숨쉬어도 아무렇지 않은 뉴질랜드의 공기. 바다와 맞닿기 시작한 태양을 눈으로 바라본다. 바다 너머로,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가라앉으며 그 색깔도 옅어져간다. 태양이 모두 가라앉았다. 바다 위의 높은 하늘은 점점 푸른 빛을 잃어간다. 빛이 남은 바다 쪽 하늘로 내 시선은 떨어진다. 더 강한 분홍빛이 눈으로 들어온다. 아직 구름을 올려다 쬐는 햇빛은 구름을 잘라낸다. 그러나 점점 구름은 본래 자기의 하얀 색을 되찾고. 이제는 수평선 너머로 지고 있는 보라색 빛만 남았다. 공기가 더 차가워졌다. 이제 그만 옆에 놓여진 가방을 어깨에 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