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인마 승민이 너는 어떻게 한 번을 아버지 찾아올 생각을 안하냐? 내가 앉아있는 탁자 반대편에는 종이로 만든 그릇에 급하게 담은 육개장 한 그릇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오른 쪽으로 참이슬 한 병. 용수삼촌은 숫가락으로 다른 건더기들을 굳이 피해서 국물만 떠 먹고는 소주를 잔에 따라 들이켰다. 용수삼촌은 이미 다른 아빠의 회사 지인과 술을 두 어병 마신 뒤였다. 그러게요 제가 뉴질랜드 가고 나서는 아빠를 본 지가 1년도 더 넘은 것 같아요. 너무 오래 앉았는지 왼쪽 발바닥에 약간 쥐가 났다. 오른 팔로 장판을 짚고서는 왼쪽 무릎을 살짝 들어 올리며 자세를 바꿔 움직이며 말했다. 그 말이 아니잖아 이 자식아. 너 서울에 있을 때 말이야. 너희 아빠가 맨날 너한테 전화했잖아. 대학시절 아빠는 거의 매일 내게 안부를 묻는 전화를 했다. 동아리 친구들과 술게임을 하며 시끄럽게 노는 날이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바쁜 날에는 나는 대충 전화를 받고는 금방 끊곤 했다. 그렇게 전화를 할 때 늘 아빠 주위는 시끄러운 술집 같았고. 가끔 뭐하냐고 물어보면 용수삼촌이랑 소주마시고 있다고 말했다. 가끔씩 아빠를 보러 갈 때면 용수삼촌이 맛있는 것 사준다며 데려간 음식점들 턱에 아빠 사는 곳의 왠만한 동네 아저씨들 맛집은 거의 다 가본 것 같았다. 니네 아빠가 말야. 맨날 니 이야기만 했다. 공부 잘해서 서울로 대학 간 자식 놈 잘 먹고는 사는지. 짜식이 생활력은 강해서 지 혼자 알바도 하고 좋아하는 동아리 활동도 다 하고 다닌다고 말이야. 나와 용수삼촌이 그렇게 대화하고 있을 무렵, 장례식장에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식장에서 근무하는 도우미 이모들이 피곤한 안색으로 음식물이 흘린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고. 저 건너편에는 서울에 사는 큰 아빠가 아빠의 조문을 온 자기 친구들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그 외로 텅 빈 장례식장의 공간은 조그마한 소리를 내도 공간을 울리듯 소리가 들렸다. 은색 쟁반에 모은 식기와 접시들이 이모들이 큰 걸음으로 옮기며 달그락 달그락 소리를 내고 있었다. 다 니가 보고싶어서 그런 거 아니냐. 너 니 아빠가 그렇게 전화하면 금방 끊어버리고 말야. 그렇게 전화를 매일 했으면 얼굴 한 번이라도 좀 보러 내려오고 그래야지. 서울에 하루라도 없으면 뭐 좀 죽냐?
앞 의자에 자고 있던 아기가 잠에서 깨서 운다. 그 바로 옆에 앉은 남자가 소곤소곤 거리는 목소리로 아이에게 쉬-쉬 속삭인다. 얼마나 왔는지 궁금해져 의자 뒤 화면 스위치를 딸깍 누른다. 새벽 네 시. 화면 안에 비행기는 어느덧 대한민국과 뉴질랜드 정 중앙의 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비행기에 타기 전 미리 저장해둔 외국 유투버의 영상을 몇 개쯤 듣고 있었다. 한 영상에서는 parent free, 즉 부모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다루며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용이 나왔다. 대부분 아버지나 어머니에 의한 정서적 학대, 더러는 어릴적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신체적인 폭력이나 학대를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은 부모와의 연락을 모두 끊고 여행을 다니며 자신에게 알맞은 정착지를 찾아 잘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영상을 틀어놓고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지만 잠은 커녕 딴 생각만 자꾸 나서 제대로 집중해서 들은 건 아니었다. 바깥 하늘은 빛이 좀 들었으려나. 안내방송에 맞춰 닫아놓은 비행기 창문을 열자 하늘은 깜깜했다. 구름이 껴서 애매하게 빛이 산란하는 깜깜함이 아니라. 그야말로 구름 한 점 없는 깜깜한 하늘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계속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비행기 안에서 괜히 더 넓은 공간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아빠 인생은 아빠가 알아서 잘 살았어야지.
3일을 꼬박 혼자서 상주노릇을 하며 친가 삼촌들, 아빠 친구들, 그리고 멀리서부터 와준 서울의 내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위로를 받았다. 다들 처음에는 나의 어두운 안색을 살피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뉴질랜드에서 한국으로 온 내가 반가운지 그 쪽 생활은 어떠냐는 걱정 반 호기심 반쯤 섞인 질문도 건넸었다. 대부분 다 장례식장에서 마주치며 같이 술 한잔 기울일 일행들이 있는 편이었고. 사촌들이 왔을 때는 한 가족 씩 상에 둘러 앉아 그들을 챙기려는 나를 두고 모두 위로의 한 마디 씩을 돌아가면서 했다. 용수삼촌과 그 날 새벽 둘이서 겸상을 한 때는 그렇게 장례식장에 꼭 와야 할 사람들이 다 지나간 다음이었다. 아빠의 시신을 처음으로 발견한 용수삼촌은 아빠의 시신 확인부터, 장례 절차를 위한 친지 연락까지 자신이 모두 도맡았었다.비행기를 타고 잠도 못 자고 처음 병원 영안실에 도착해서 아빠의 시신을 처음 봤을 때. 문 밖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던 용수삼촌의 얼굴은 반쯤 정신이 나간 듯해 보였었다.
목이 좀 마르다. 아까 전에 가방에 넣어 둔 페트병 물을 꺼냈다. 혹시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깰까 조금만 마시고 남겨둔 물이었다. 두어 모금 마시고는, 페트병 소리가 요란하게 나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뚜껑이라도 조심스럽게 닫았다. 귀에 4시간 넘게 꽂혀있던 이어폰을 빼고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넣었다. 그리고 다시 창가 너머의 깜깜한 하늘을 뻔히 바라봤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는 눈을 감는다.
소주를 한 잔 들이키는 용수삼촌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평상시에 아빠가 소주를 마실 때도 맥주만 나눠 마시는 삼촌이었다. 이어가는 말을 잠깐 끊고 용수삼촌은 양 팔을 허리춤 뒤로 활짝 펴서 자기 몸을 기대더니, 천장을 몇 초간 바라보았다. 그래도 내가 임마. 니 아버지라도 있어서 술이라도 마셨는데.. 니 아빠, 니 아빠만큼 좋은 사람 별로 없어. 알아? 내가 여기 여수 공단 외지인으로 와서 30년 됐는데. 여기 사람들 다~ 지 잇속 챙길 줄 밖에 모르고 정이라고는 눈콤만큼도 없다. 겉으로 잘하는 것 처럼 보여도 다 결국 자기 일 덕 보려고 헤헤 거리며 웃고 떠들고. 내가 시발 먹지도 못하는 술 먹어가며 그 새끼들 뒷꾸녕이나 닦으며 살았는데. 그렇게 십 몇 년 지나서 니 아빠가 와서 같이 술을 마시는데. 그 씹쌔끼들한테 니 아빠가 뭐라 그랬는 지 알아? 인간도 아닌 새끼들. 짐승만치 못한 놈들. 내가 그 소리를 들으니까 속이 시원한거야. 속이. 씨발 그런 새끼들도 자식래미들이 아들 딸이라고 아빠 아빠하고 연락하고 생일선물 챙겨주는데. 너는 서울에서 뭘 했길래 매일 연락하는 아빠 얼굴 보러 한 번 찾아오지도 않았던 거냐? 내가 속상해서 그래 속상해서. 어? 알겠어? 좀 알아라 좀. 나는 그 말을 들으며 특별한 기색하는 것 없이 용수삼촌 앞에 놓여진 참이슬 병을 옆으로 뺐다. 앞 접시에 놓여진 커피땅콩을 한 웅큼 쥐어서 입 안으로 넣었다. 장례식장 일하는 이모에게 테이블을 좀 치워달라고 부탁한 뒤, 술에 취해 늘어져 앉아 있는 용수삼촌을 들춰 세우고는 상주들이 잘 수 있는 방에 데려가 눕혔다. 방을 나서려는데 문 앞에 청소하시는 이모가 서있었다. 어이구 술을 많이 마셨나보네. 내가 이제 오늘 집에 가야 하는 시간이 돼서 가볼려구. 어제 오늘 상주분도 혼자서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인사하러 왔어요. 처음으로 하는 인사였다. 아 네. 이모님도 고생하셨어요. 집에 잘 들어가셔요. 감사합니다. 신발장에서 신발을 갈아신는 이모를 바라보며 문을 닫고 나왔다. 왼 편 벽 끝에 영정사진 속 아빠의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은, 눈은 또렷이 떠서 어딘가 먼 곳을 쳐다보는 것 같았고, 입가에 실주름이 날 정도로 작게 미소 짓고 있었다.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