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항공기는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향하는 비행기로. 승객 여러분께서는 앞의 승무원의 안내에 주의를 기울여주시길 바랍니다…”
110만원. 인천공항에서 오클랜드로 향하는 대한한공 편도 직항 비행기의 티켓 값이다. 벌써 보름도 더 된 일이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한 뒤, 나는 급하게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편도 티켓을 구해야 했다. 바로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하는 도쿄를 한 번 경유하는 비행기가 그나마 가장 일찍 한국에 갈 수 있는 비행기였다. 그 때는 너무 경황이 없던 나머지 이 비행기가 경유인지 직항인지 구분할 새도 없었다. 그 때 티켓 값이 60만원 정도 했던 것에 비교하면 직항 비행기 티켓 값은 엄청 비싼 편이었다. 내가 위스키 바에서 바텐더로 파트타임 일하면서 받는 시급 19000원으로 치면, 10일 내내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한 달에 집세로 나가는 돈이 100만원 조금 안되니까 직항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는 건 내게 꽤 큰 사치였다. 그러나 아빠 장례식에 결국 오지 않았던 엄마는 내게는 미안한 구석이 있었는지. 갈 때라도 몸 편하게 가야 한다며 직항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고는 예매해주었다.
그나저나 밀린 일 투성이다. 내가 뉴질랜드에서 일하는 곳은 오클랜드 작은 교외지역 웨이마우스의 해변에 위치한 위스키 바다. 다행히 사장님은 나의 급한 사정을 이해해주고 2주의 무급휴가를 허락해주었다. 다시 돌아가면 편의를 봐준 사장님 생각해서라도 일을 잘 해야 한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자기들만의 사정으로 타임오프를 요구할 때 더 적극적으로 내가 그 시간을 땜빵한다고 할 참이다. 고마운 것도 고마운 것이지만, 내가 이 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일주일 전에는 냈어야 할 집 월세도 갑자기 생긴 여러 비용들과 멈춘 수입 탓에 아직 내지 못했다. 수중에 아예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른 생활비를 고려한다면 월세를 바로 낼 수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 오기 전 날 밤 내가 사는 집 주인 분께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다. 이번 달 월세는 좀 늦어질 것 같다고. 집 주인은 걱정하지 말라며 일단 잘 다녀오라고 말해줬다. 좋은 인연들 덕분에 내가 1년 반 넘게 뉴질랜드에서 지낼 수 있었다. 빨리 뉴질랜드에 돌아가고 싶다. 내가 뉴질랜드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 일이 끝나고 해질 녘에 보는 분홍 빛 노을이다. 그 노을을 볼 때면 꼭 내가 일하는 바에서 위스키 한 잔을 직접 만들어 마셨다. 그러면 꼭 그 곳에서의 삶을 살아가며 겪는 모든 문제들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 분홍빛 노을을 다시 보며, 똑같은 그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다.
“그럼 저희 항공사를 이용해주셔서 감사드리며, 안전한 여행 되시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빠의 죽음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아빠의 5년 고등학교 후배 용수 삼촌이었다. 아빠가 15년 전 처음 여수에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한 술자리에서 둘은 우연히 만났다고 한다. 아빠를 형님 형님 하고 부르곤 했던 용수 삼촌은 아빠가 전화로 술을 마시자며 부르면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혼자 살고 있는 아빠에게 종종 김치나 반찬을 가져다 주곤 했다. 그 날은 사골을 3시간이나 넘게 고아서 아빠를 주려고 가져왔다고 한다. 일요일 오전, 전화를 해도 받지 않자. 용수삼촌은 아빠의 집을 직접 찾아갔다.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왼쪽 복도를 바라보자. 저 멀리만치 908호. 아빠가 살고 있는 호수의 문이 열려있었다고 했다. 이제 날이 막 더워지기 시작한 6월 초라 아빠는 문에 끼워놓은 방충망만 닫은 채로 그 문을 열어놨을 것이다. 언제부터 문이 열려있었는 지는 알 수 없다. 체격이 건장하고 얼굴에 사나운 눈매를 지닌 아빠는 문을 열고 누가 집을 쳐들어올 거란 두려움을 갖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전 날 저녁부터 열려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침에 집을 청소하는 김에 공기를 순환시키고자 문을 열어놓은 것일 수도 있다. 용수 삼촌은 푹 고아 사골에 붙어있는 고기가 이미 다 흐물흐물거리는 국물을 냄비 째로 들고 문이 열린 아빠의 집으로 낑낑 대며 다가갔다. 냄비에는 사골국물이 거의 넘치듯 담겨있어 한 번 걸음을 옮길 때마다 냄비 안이 출렁거렸을테다. 출렁거리는 국물이 냄비 안에서 이리저리 튀면서 사골 육수의 진한 향이 뚜껑 틈새로 올라가 용수삼촌의 코를 자극했을지도. 문에 가까이 다가가자. 사골국수를 담은 냄비를 초인종 밑에 내려놓고. 평상시 아빠를 잘 아는 용수삼촌 답게 자연스럽게 방충망 문을 열고 아빠의 집에 들어갔다고 한다. 용수삼촌은 낑낑 대며 무거운 사골국수가 든 냄비를 들고 가고 나서야 그 무게를 문 앞에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무게의 빈자리를 반갑게 맞이하듯이 쓰러져 있는 아빠의 모습이 용수삼촌의 눈을 들이닥쳤다고 한다. 한 동안 사골육수가 들어간 냄비는 초인종 밑 바닥에 그대로 흔들림없이 놓여있었을테고. 마침내 아빠가 이미 살아있지 않음이 확인되었다고 용수삼촌은 내게 전했다.
용수삼촌이 아니었다면 아빠는 꽤 오랫동안 발견되지 못했을거야.
앞 좌석 뒤에 걸쳐있는 스크린에서 지도 위성화면을 켰다. 비행기는 인천에서 출발해 어느새 일본을 지나 어느 태평양 상공을 지나고 있었다. 3시간이나 연착되는 바람에 시간은 벌써 새벽 두 시를 넘기고 있었다. 깜깜한 기내에 사람들은 제각각 시간을 보낸다. 옆에 있는 안경 쓴 60대 정도 되어보이는 아저씨는 회색 소니 헤드폰을 끼고 어떤 책을 읽고 있었다. 아마도 일본 작가의 소설같이 생긴 흰색 표지였다. 그 옆에 복도 쪽에 앉은 내 또래정도 되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는 휴대용 목베게를 낀 상태로 안대까지 끼고 잠을 자고 있었다. 복도 너머로 보이는 항공기 내 의 공기는 조용했다. 펼쳐져있는 의자 사이사이로 조그마한 초록색 빛이 스며들듯 튀고 있었고. 흔들흔들. 깜깜한 밤하늘을 날고 있는 날개에 부딛히는 바람 탓에 지그재그로 모든 의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잠을 자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나마 저가형 항공사를 탔을 때는 운 좋게 내 옆 좌석과 그 옆 좌석에 아무도 없었던 적이 있어, 의자 세 개에 걸터 누워 자본 적은 있다. 그러나 직항 대한항공 비행기는 의자는 더 푹신푹신하고 넓지만 왜인지 모르게 괜히 더 경직되는 기분이 들었다. 묵직하고 조용한 비행기 내의 공기. 꼭 공기가 하나도 없는 진공 속에 있는 기분이다. 창문 하나도 열리지 않은 비행기 내부라서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오랫동안 피해왔던 한국에서 살면서 느낀 정적과 비슷했다. 방해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문득 갑자기 오줌이 마려우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책을 읽고 있는 아저씨의 무릎을 뚫고 지나가며. 완전 무장을 하고 잠에 든 어떤 여자를 내가 건드릴 수 있다니. 그 생각을 하니 더 빨리 뉴질랜드에 돌아가고 싶었다. 웨이마우스 시내는 오히려 공기가 더 가득했다. 공기가 너무 가득해 아무도 내가 마음대로 숨을 쉬어도 뭐라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공기가 너무 가득해 스치우는 것은 오히려 반길만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