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갱신

500만원이 생긴다면 진짜 좋겠다

by 김상혁

대학원에 떨어져도 괜찮다고 가정해야겠다. 현재 나의 불안 요소는 대학원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그 불안이 나를 한계짓고 있는게 느껴진다. 일단 한 달 후 면접인 이유로 한 달 후 까지 아무런 계획을 실행할 수 없는 실제 한계가 존재한다. 문제는 그 한계가 내 마음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합격하지 않으면 나는 할게 아무것도 없어져버릴거야 하는 그 생각이. 그 생각은 나만 갖는게 아니고. 내 주변 사람들의 불안이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생각은 주변 사람들의 생각이고. 나는 나만의 생각을 똘똘 뭉쳐 하루하루 계속 굴러갈 의지를 다져야 할 것이다.



하루하루 계속 굴러갈 것이다. 대학원 면접을 끝내고, 대학원 발표가 나고 난 그 하루에도 나는 계속 굴러갈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굴러가는 방향으로. 혹은 더 신기한 샛길을 발견해서 오히려 빠른 속도로 굴러갈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내가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툭 툭, 나는 멈춰버렸다. 그리고 나를 다시 퍼석퍼석한 돌바닥에서 굴리기 위해 힘을 한 번씩 크게 줬어야 했다. 그 큰 힘은 혼자 내기는 영 쉬운 것이 아니어서. 가장 쉽게 같이 힘을 내어줄 사람들을 찾았다. 엄마. 삼촌. 아빠. 유기농 쌈채소농장. 평지교회 사람들. 근데 그렇다고 지금 나는 멈출 수도 없이 굴러가고 있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이도 굴러가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난 여전히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그걸 나는 이제 누나. 나에게 가장 잔소리 하는 사람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조카들. 나를 가장 잘써먹을 애들. 표면적으로는 내가 도움을 준다는 큰 호의를 내세웠지만. 실은 은밀히 내가 누나에게서 굴러갈 동력을 훔쳐버리는 걸지도 모른다. 누나는 그 사실을 가장 잘 간파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를 별로 안믿기 때문이다.



누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내가 자기 집 근처에 살면서 어떻게 돈 벌어먹고 살지이다. 사실 대학원에 떨어진다 해도 그것만 잘 해결하면 뭐라고 안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도 막 엄청 호락호락 하진 않은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누나 말대로 지밖에 모른다. 대학원에 떨어진다 해도 섯불리 학원알바나 고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싶진 않다. 왜냐면 그건 굴러가는게 아니라 끌려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르겠다. 그게 사실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샛길인데도 나는 누나 말을 안들으려고 고집을 부리는걸지도. 일단 당장 도보배달을 시작할거다. 살 좀 빼야 한다. 순례길 걸으려고 하루에 몇 시간도 걷는데 돈 벌면서 걸으면 좀 좋아. 마침 내가 사는 김해 장유 율하는 배달을 시켜먹는 사람들과 배달을 보낼만한 음식점이 널린 곳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아이를 키우고, 주거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 나 처럼 아무 묶임 없이 사는 사람은 별로 없을테니. 아마 배달을 잡을 확률도 높을 것이다. 그럼 하루에 기본 2만원, 3만원은 벌 수 있다. 최소는 2만원을 벌어야 집세도 내고 먹고 살 수 있고. 그 이상부터는 얼마나 내가 운동을 하고 싶은지. 얼마나 내가 공부를 하기 싫은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심리학을 공부하기로 한 것은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나의 마음이 초심이다. 관심이 자꾸 언어학으로 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을 고른 이유다. 그것이 나에게 계속 새어나오는 마음의 근원이 향하는 곳이니까. 내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다 그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나의 마음으로부터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 글로 인해 살아났을진 잘 모르겠지만. 12월 17일이면 브런치에 공모전으로 낸 내 글 '돈 안벌고 버텼더니 오히려 좋아'가 당첨될지 탈락할지가 공지된다. 당첨되면 진짜 로또 당첨된 것 처럼 기쁠 것이다. 책도 나오는거고. 상금이 500만원이다. 그런데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내 글이 그렇게 메이저한 주제가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 글을 심사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흔들고 어떻게 보면 저격하기도 하는 글이 될 수 있음을 안다. 나의 사람을 살리고 싶어하는 마음은 그렇게 꽤 날카로워서. 누구는 살리지만 누구는 화들짝 놀라게 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화들짝 놀라는 대가로 다른 누군가가 그 날 하루를 더 살아날 수 있다면. 그건 정말로 가치있는 일이다.



500만원이 생긴다면 진짜 좋겠다. 저번에 친구와 서울에서 밥을 먹고 친구가 책이나 내라며 나를 부추겼다. 나는 책을 낼 깡은 없지만 유투브에 내 이야기를 풀 깡은 이미 가지고 있었다. 늘 내 집에서 사용되길 기다리는 오즈모 액션 프로 5. 문제는 나는 이제 내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좀 무서워졌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플루언서'라는 지위에 오르내리는 것이 꽤 부담스러워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그 중심이 가능한 한 나로부터 흩어져야 한다고 느낀다. 사람을 살리려다가 그것의 결과에 지배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인 것 같다. 그래서 친구가 나를 떠민 그 날 마침 가방에 있던 롯데백화점 20만원 상품권을 가지고 오즈모 액션 프로 전용 미니마이크를 샀다.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얼굴을 보지 말고 내가 바라보는 것을 바라봐달라는거다. 내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나는 내 얼굴에 더 집착하는게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으므로. 그 넓은 세상을 경험하면 할수록. 사람들에게 전달할 이야기의 마지널은 더 넓어질테니 말이다.



이러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원래는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그 마음과. 돈을 왕창 벌어 원하는 대로 막 여행다니고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잘 균형잡히지 않았었다. 그래서 삐그덕삐그덕 거리면서 유투브를 계속 미룬 측면이 있다. 근데 하고싶은 것은 그냥 하고싶은 것이고. 나의 문제로 치환했을 땐 그냥 안해버려도 잘 살 것 같지만. 만약 미래의 나의 조카가 어른인 나에게 무언가 하고싶은 것이 있다고 할 때. 나는 빈껍데기 조언을 해줄게 아니고, 알이 꽉찬 경험있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근데 그 경험이 하고싶은 것이 있다고 해서 굳이 안해도 되더라 라는 경험치만 있으면 좀 슬플 것 같은 건 분명하더라. 분명히 알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 때 하고싶은 것을 하지 않기로 한 그 현실적 제약이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럴만한 제약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혹은 그 현실적 제약이야말로 하고싶은 것을 풀어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제약'이었음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기에. 분명한건 나는 그 조언을 경험을 토대로 하고싶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맹장 꼬리 같은 그 질질 끌고 있는 하고싶은 마음을 한 번쯤 제대로 펼쳐볼 필요가 있다. 꼭 태극 문양처럼, 삐그덕삐그덕 하는게 아니라 정말 굴러갈만한 마음의 균형이 되기를 나는 기다린 측면이 있다. 그 균형점, 바로 이건거 같다. 삼촌으로서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는가.



처음에는 도보배달을 하면서 틈틈이 생각나는 것들을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 칸트가 그러했던 것처럼. 내가 사는 곳의 풍경이야 말로 끊임없이 실제로 변화하는 가장 좋은 풍경이므로.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장 이색적인 풍경이다. 배달 에피소드가 틈틈이 들어가도 상관없고. 안들어가도 상관없다. 내가 보는 어떤 풍경이 나에게 어떤 감응을 불러일으키는지. 그 감응에 반응해서 그냥 내가 평소에 하던 생각을 그 감응에 엮어 풀어내버리기. 공부를 하는 것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관계에는 별로 쓸모없는 이야기가 꽤 먼 누군가들에겐 쓸모있는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계속 이야기를 풀고. 운동을 하고. 풍경을 경험할 것이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풍경이 달라질지도. 언젠가는 광천에 잠시 이웃집에 들리는 길이 될 수도 있고. 전주나 광양에 엄마나 아빠를 보러가는 길. 혹은 서울에 친구를 만나고 기다리는 광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실현될 거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선 익숙한 하나의 환경을 만드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이제 안다. 결국, 내가 꿈꾸는 것은, 언젠가 순례길을 걸으면서도 그 이야기를 해보는 것. 완전히 낯선 곳, 그러니까 그루지야나, 흑해 주변의 어떤 해변. 혹은 인도의 북부 지역의 큰 호수를 걸으면서. 아니면 네팔의 히말라야 산을 오르면서. 그게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 하지 않아도. 그냥 그 하나의 한 순간이 경험으로써 나의 한 흔적으로 남으면서. 그냥 나의 감응을 이야기로 또 엮어내는 것. 단지 이런 꿈들을 묘사하면서 내가 내심 바라는 것은. 그것이 외로움에 기반한 일이 아니길 소망한다는 것. 그래서 정말 내 얼굴이 내 이야기에서 하나도 중요해지지 않는 것. 그 뿐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