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에 나는 보일러를 틀지 않고 살았다
오늘 집에서 마늘을 한 열 개 넣고, 어제 삶은 당근을 가위로 싹둑 싹둑, 어제 먹다 남은 스팸 반조각을 또 가위로 싹둑싹둑 넣어서 만든 알리오올리오를 해먹었다. 올리브 오일을 쓰지 않아서 사실 알리오 올리오가 아니다. 마트에서 싸게 파는 콩기름을 쓰는데, 이 기름으로 해먹어도 은근히 감칠맛이 있고 더 토속적인 맛이 난다. 올리브오일을 넣으면 뭔가 한 젓가락 먹을 때마다 면이 아까워지는 맛이라면. 콩기름을 넣으면 그냥 아무 생각없이 후루룩 후루룩 먹을 수 있는 맛이 난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었다. 오전 11시에 창문을 여는 건 처음이었나보다. 창문에 빛이 들어오는 자리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는게 느껴졌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 쬐는 것이다. 원래 이렇게 강한 햇볕이 집 안으로 드리운 적은 없었는데.
작년 겨울에 나는 보일러를 틀지 않고 살았다. 돈도 없었는데, 보일러 값이 외출만 켜놨는데도 4만원 가까이 나왔던 탓이다. 그래서 모피이불 2개와 얇은 이불 3개, 두꺼운 오리털 이불을 덮어 총 6겹의 이불로 그 추웠던 겨울을 났다. 내가 그 때 깨달은 것은, 체온이 탄탄하게 이불 안에 갇히기만 하면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충분히 따뜻하게 잘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체온의 힘. 그리고 공기는 차가워서 오히려 잠이 개운하게 잘왔다. 조금 불편했던 것은 6겹의 이불이 너무 무거웠다는 점이다. 이불을 한 번 덮고나면 이불을 걷는 것도 힘들어 화장실에 가는 것도 부담이 되는 일이었고. 꽤 오랜 시간 가둬놨던 나의 체온이 만들어낸 온기가 한 번 이불 밖을 나가면 다시 리셋된다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그 때 나는 온도를 가두는 최저선의 경험을 했던 셈이다. 그리고 올해 겨울, 나는 이번에는 보일러를 써보기로 했다. 예전에 엄마 친구가 한 말이 기억이 났다.
"보일러를 실내 온도로 맞춰놓으면 실내 온도가 들쭉날쭉 하니까 계속 왔다갔다 돌아가는데, 보일러를 온돌로 맞춰놓으면 한 번 딱 데워놓으면 그 온기가 식으면서 다시 공기중으로 올라가서 더 오래 온도가 유지가 되더라니깐"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자기 전 1시간~2시간 정도 온돌난방을 세게 켜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온기가 다 식어버리기 전에 빨리 잠을 잔다. 그럼 생각보다 중간에 추워서 깨는 일이 거의 없다. 일단 이불을 세겹정도 덮으면 바닥에서 올라온 온기가 이불 안에 가둬진다. 그리고 바닥이 다 식더라도 그 온기가 어느정도 공기중으로 퍼져 집 안이 냉방이 될 일은 없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 밖은 좀 추운 편이지만, 이불 안은 여전히 따뜻해서 당장 일어나기 좀 귀찮은 정도의 느낌이 든다. 어차피 특별히 나갈 일이 없는 내 입장에서는 그럼 그냥 누워서 책을 읽다가 일어나질 때 일어나면 된다. 보통 일어나지는 건 뭔가를 먹기 위해서다. 다시 알리오 올리오를 한다. 이것저것 넣어서. 그리고 11시가 되면 다시 햇볕이 강하게 스며들 것이다.
문제는 잠자기 전에만 보일러를 켜놓으면 나머지 시간동안은 어떻게 지내냐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집에서 옷을 입는걸 별로 안좋아 한다. 팬티차림으로 공부하기도 하고, 그냥 아예 발가벗고 요리를 하고 할 일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 요긴하게 온도를 가두는 방법을 사용한다. 다리만 이불로 덮는다던가.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면 발을 방석같은 것으로 덮는 것이다. 그래도 방이 추우면 편안한 차림으로 집 안에서 따뜻하기는 어렵다. 그럴 때 아예 이불 안으로 들어가버려서 몸을 데우는 방법도 있겠지만, 더 효율적인 방법은 아예 옷을 차려입고 바깥으로 나가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바깥을 돌아다니고 나서 집 안에 들어오면, 집이 덥게 느껴져서 패딩을 당장 벗어 던져버린다. 그럼 그 더위감을 한 30분에서 1시간 정도는 유지할 수 있고. 그 시간동안은 방이 춥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밖에 나가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지금 생활비를 쿠팡이츠 도보배달로 벌고 있기 때문이다. 집 안에 있으면서 쿠팡이츠 도보배달 앱을 켜놓으면. 피크타임인 저녁시간 전에도 2번에서 3번 정도 밖에 나갈 일이 생긴다. 그럼 총 5000원에서 7500원을 벌 수 있는데. 그러면서 바깥을 산책할 수도 있고. 보일러를 틀지 않고도 집 안에서 춥지 않게 지낼 수 있다. 그렇게 추위를 나다가 해가 질 무렵이 되면 아예 바깥으로 나가버린다. 사람들은 치킨을 저녁시간에 자주 시켜먹기 때문이다. 5시쯤부터 7시 반 정도 까지 두시간에서 세시간 정도 번화가 근처의 동네를 걸어다니면 2만원정도를 벌 수 있다. 배달을 빨리 마치려면 빠른 걸음으로 걷기 때문에 바깥에서 추위를 느낄 일은 별로 없다. 그렇게 열심히 걷고 집에 돌아오면, 쉬기 위해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간다. 혹시 몰라 쿠팡이츠 도보배달 앱을 켜놓는다. 저녁에는 해야할 공부를 하기보단 하고싶은 공부를 한다.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넷플릭스를 보기도 한다. 사람들이 더 이상 치킨을 시켜먹지 않는 밤시간대가 되면, 배달앱을 끈다. 그리고 서서히 방을 따뜻하게 데우기 위해 보일러 온돌 난방을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