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을 돌보러 서울에 왔다
친구가 도마뱀을 키운다. 서울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는 친구 덕분에 서울에 살지 않아도 서울에 가면 잘 곳이 있다. 그 친구가 이번에는 일주일 넘게 중국을 다녀와서 내가 대신 도마뱀을 보살펴주게 되었다. 밥을 먹이고, 물을 뿌려서 습도를 조절하고, 낮이 되면 불을 켜주고, 밤이 되면 불을 꺼주고. 그렇게 도마뱀을 돌보는 대신 친구 냉장고에 있는 달걀, 어묵, 토마토 등을 파먹으며 밥을 해먹는다. 도마뱀이 사는 데는 온도가 26-29도로 유지되는 것이 중요해서 나는 평소 내 집에서 살 때보다 더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
사실 이렇게 도마뱀을 봐준게 처음은 아니다. 이전에도 한 두 번 정도 도마뱀을 돌봐줬다. 그 때 도마뱀을 돌보면서 돌본다는 것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서울에서 혼자 지내며 공부하는 삶에서 이렇게 내가 돌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삶은 리듬을 갖는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하던 일이 안될 땐 머릿 속을 맴돌고 있는 먹이보충과 수분보충을 도마뱀들에게 해준다. 굳이 시간을 관리하려 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내 머릿 속을 맴도는 이 도마뱀들 덕분에 나의 하루는 정렬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달라진 것은 이젠 돈도 벌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에 오니까 쿠팡이츠 도보배달을 더 쉽게 할 수 있었다. 김해에 살 때는 주문량이 '많음' '매우 많음'인 경우가 저녁 피크시간대밖에 없었는데. 서울은 거의 매 점심, 매 저녁마다 피크시간이 된다. 서울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배달을 시켜먹기 때문이다. 돈을 줍는 것 같다. 대학 역 근처, 주변 식당가 골목을 지나가면 금방 띠리링 띠리링 주문이 잡힌다. 친구 집에서 공부를 하다가 공부 집중이 안될 때 유투브나 넷플릭스를 보면서 쿠팡이츠 도보배달을 켜놓으면, 띠리링 띠리링 집 근처로 걸어가면 끝낼 수 있는 배달 주문이 잡힌다.
돈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밖을 나간다는게 이렇게 쉬울 줄이야. 사실 내가 현재 안살고 있는 곳에서 살면서 가장 힘든 건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계속 간다는 점이다. 특별히 밖에 나갈 일도 없고. 그러다보면 굳이 연락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서울에 사는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술을 먹거나 했다. 그런데 그냥 돈을 벌기 위해 밖을 나가기가 이렇게 쉬워지니까. 혼자 집에서 도마뱀을 돌보고 공부하는 일상이 더 활기로워졌다. 이런 식이다. 아침에 일어나 공부도 하기 싫고, 뭔가 침대에 누워서 미적거릴 때 그냥 도보배달을 켜놓는다. 도보배달 알림이 울릴 때까지 딴짓을 하고 있다가, 알림이 울리면 "알겠어요 알겠어 나갑니다 나가요~" 소리내어 말하며 옷을 챙겨입고 밖에 나간다. 그렇게 몇 분 걷고 집에 다시 돌아오면 해야하는 일과 해야하는 공부를 시작하기 더 쉬운 정신상태가 된다. 돈이 있었다면 밖에 나가기 위해 카페라도 가면서 4000원을 썼을텐데. 돈이 없기 때문에 밖에 나가서 걷고 돌아오면 3000원이 그냥 벌린다. 그래서 친구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한 번도 카페에 가지 않았다. 갈 필요가 없었다.
크리스마스 연휴도 한 몫했다. 만약 내가 서울에 오지 않고 김해에 계속 있었으면. 배달을 별로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내가 사는 곳은 김해 중에서도 아이들이 많이 사는, 가족 중심의 거주지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크리스마스 연휴를 핑계로 다른 곳으로 여행갈 가능성이 높다. 나는 도마뱀을 돌본다는 핑계로, 더 배달 주문이 많은 곳으로 임시 이주한 것이다. 교통비를 비용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 이동 자체가 내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누나가 근처에 사는 김해에 살면서. 나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더 많이 느꼈다. 그래서 계속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한다'라는 의무감을 느끼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의 나와 친한 친구의 집에서 이틀 삼일 정도 지내니까. 서서히 그 의무감이 가라앉더니 더 편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기 시작했다. 꿈 속에서는 내가 왜 가족들에게 내 삶을 하나하나 설명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 내가 굳이 내 삶을 내 가족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는 없다. 내 삶을 다른 누군가에게 맡길 필요도 없고. 맡길 수도 없다.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은 내 삶을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서 고려해야할 뿐이지. 그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눈치보지말고, 고려를 해야한다.
친구가 갖는 힘인 것 같다. 내 태생과 별개로 관계 속의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힘. 서울에서 열심히 대학원 생활을 성공적으로 잘 해내고 있는 이 친구 덕에 나도 대학원 공부를 다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 친구의 도마뱀 집사의 빈자리를 대신해주면서 내가 나의 힘으로, 나의 관계안에서 발견한 나 자신을 다시 일으켜세울 수 있었다. 그 두 가지 편안함은 전혀 다른 종류인 것 같다. 누적된 시간의 힘으로 어떻게든 서로를 봐주기로 다짐하며 돌보아야만 하는 가족이 주는 편안함. 그리고 각자의 시간의 공백기에 서로를 채워주며 새로운 자기자신을 발견하게 도움을 준 친구가 주는 편안함. 어느 하나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어느 하나를 위해서 다른 하나를 양보해야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두 번에 걸쳐서 잡을 수는 있다. 지금은 친구가 집에 돌아와서 신년이 될 때 까지 같이 공부하기로 했다. 그리고 김해에 다시 돌아갈 때 쯤엔 아빠도 김해에 오셔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아마 신년이 지나고 나면, 내가 사는 곳의 사람들은 다시 저녁에 치킨을 시켜먹을 것이다. 그 땐 서울과는 또 다른 리듬으로 나는 다시 적응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