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계산중이다

나이 33살에 대학원 '입학'이라니

by 김상혁

대학원 입시 면접을 봤다. 일부러 아침에 바쁘지 않도록 면접을 보는 대학교 근처에 호텔까지 잡아서 전날부터 이동했다. 면접을 위해 뭘 해야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대학원은 어차피 붙는거라는데. 정말 그럴까? 나이 33살에 대학원 '입학'이라니. 괜히 마음이 쪼그라드는데. 그 쪼그라든 마음을 다시 부풀리기 위해 뭘 해야할 지 알지 못한다. 아뿔싸. 그래서 그냥 마지막 날엔 편안하게 읽을 교재를 읽었는데. 통계공부를 더 했었어야 했다. 내가 딱 안 읽은 챕터가 면접 구술 시험에 나왔다. 교재를 두 번은 읽으려고 했었는데. 두 번 읽다가 17장에서 멈추고 말았는데. 19장의 내용이 문제로 나온 것이다. 제대로 답하진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정확하진 않지만 '의도'를 갖고 답을 말하려고 노력했다. 흑백요리사에 나오는 요리사들이 안성재의 심사평 이전에 긴장하는 느낌이 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면접은 단 5분만에 끝났다. 모두가 그 정도 면접을 본거라 이 5분이 사실 형식적인 절차일 수도 있다는 희망회로를 돌려본다. 그게 아니라면, 심리학을 제대로 공부해본 적 없는 33살 사회학과 학부 졸업생을 합격시켜주기엔 내가 봐도 면접 속 나의 모습은 형편이 없었다.


돼지국밥을 후루룩 후루룩 먹는다. 너무너무 좋았던게. 돼지 수육이 달콤새큰한 무채와 함께 세 점 나온 것이다. 나는 임성근 조리장님과 술빚는 주모님이 만들어준 박포갈비 무생채 쌈을 먹는 심경으로 그 세점을 촤르륵 먹었다. 처음에는 국밥의 고기와 밥을 따로 먹었다. 깍두기가 좀 더 남았었기 때문에 뭔가 국밥을 먹는 기분보단 식사를 하는 느낌이었으므로. 그러다 정신을 차렸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건 하정우처럼 와그작 와그작 국밥을 입으로 넘기는 것이다. 뜨거워도 상관없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그냥 정신없이 들이키는 것이었다.


시간을 뒤집어서 엎어버리고 싶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그냥 뒤집어 엎어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어차피 불합격'이라는 꼬리표를 내게 달아놓고. 적어도 지금부터의 시간은 합격과 불합격 그 가능성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살고 싶었다. 그러려면 시간을 계산하는게 필요하다. 난 이미 많은 시간 계산을 해놓은 상태다. 대학원에 붙는다면. 이대로 더 밀어붙여. 그냥 장식을 하듯 공부하지 않고. 정말 전투적으로 공부할거다. 그냥 더 잘하기 위해 공부하는게 아니고. 내가 정말 파고들고 싶은 인간의 심리를 볼 수 있는 현장에 뛰어들거다. 대학원에 붙는다면. 나는 나의 망설임을 모조리 없애버릴 것이다. 하지만 대학원에 붙지 않는다면? 일단 이대로 도보배달은 하면서 3만원씩 매일 매일 돈을 벌자. 혹은 누나의 잔소리 대로 학원알바를 구한다. 학원알바를 별로 구하고 싶지 않은건 학생들이 입시에 고통받는 걸 가까이서 보기가 싫어서다. 그런데 뭐 어쩌겠어. 누나가 하라는데. 그냥 한 번 해보는 것도. 조카랑 놀아준다던가. 유치원에 데려다준다던가. 삼촌 노릇을 종종 한다. 부산에서 대학원 다니겠다고 김해에 이사왔는데. 대학원에 붙질 못했으니. 할게 없다. 그럼 인간 노릇이라도 잘해야지. 잘 생각해봐야 하는건 이건 내가 좋은 마음을 써서가 아니라. 김해에 이사를 와놓고 막상 대학원도 붙지 못한 게 나도 어이가 없고 체면이 안서서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건. 좋은 삼촌이 되는 건 어쨌든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다시 불합격한 대학원에 도전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을 계산한다는 건 그런 '조건적인 사고방식'에서 더 유연한 계산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왕에 불합격한 것. 아예 방향을 바꿔버릴 수 있다. 내가 김해에 온건. 대학원에 가기 위함이 아니라 좋은 삼촌이 될 기회를 한 번 누려보기 위함이다. 그냥 그 기회만 한 번 누려보고. 다시 내가 스무 살 때부터 전투하듯 살았던 서울로 돌아가는 시간계산을 한다. 여기까지 내가 오게된 건 어쨌든 마음에 걸려서이니. 그 마음걸림을 대학원에 붙든 붙지 않든 풀었으니 됐다. 그럼 다시 내가 향하고 싶었던 곳으로 돌아가자. 서울. 심리학이 아니라 언어. 그 중에서도 노르웨이어를 공부하는 것. 지금 이미 도보배달을 하면서 이어폰으로 노르웨이어를 듣고 있다. 실패를 어쩔 수 없는 결과로 받아들이기보단. 더 높은 도약을 위한 발판대로 삼는게 더 낫다. 삶은 내가 원하는 곳으로 직진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빙빙 돌아간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 필요도 있다. 저번에 크리스마스 연말 때 서울에 가서 친구 집에서 지내며 느낀 건. 생각보다 서울은 도보배달하는 사람에게 천국이라는 점이었다. 시간대별로 피크시간이 정해져있는 김해와 달리 서울은 언제든지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니 돈을 벌면서 걷고. 걸으면서 운동하고. 운동하면서 노르웨이어를 듣는 건. 만약 제대로 대학원에서 노르웨이어를 전공하는 사람에게는 최적의 루틴이 될 수 있다.


원래 나의 계획은 올 해 9월에 서울에서 노르웨이어를 공부할 수 있는 대학원에 다니는 것이었다. 김해에 온 것은 약간의 변주. 혹은 기적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도 '내가 향하는 방향'말고 내 주변 사람을 신경쓰는 선택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죽기 전에 하고싶었던 심리학 공부를 지금 당장 해볼수도 있지 않을까. 그 선택은 가장 효율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앞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선택은 9월달에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겠다는 나의 원래 계획이다. 하지만 그 나의 '계산'은 틀린 것일 수 있다. 혹은 아주 중요한 계산에서의 변수값을 고려하지 않은 계산일 수 있다. 확실한 건 난 지금 그 아주 중요한 '변수값'을 고려해서 계산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시간을 계산하는 이유는 가장 멀리 나아가기 위함이 아닌. 최적으로 시간에 머물수 있기 위함이다. 그런 면에서 시간계산에서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정확도다. 만약 대학원에 합격한다면. 벌어져버린 기적에 감사하면서. 궤도를 굳이 미리 예측하려고 하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머물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정해진 건 없으니. 계속해서 예측하기 위해, 시간을 계산중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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