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걱정

굶어죽을 걱정을 하는 사회는 이미 수십년 전에 끝이 났다

by 김상혁


일론머스크가 에이아이 시대에는 노후 준비를 할 필요가 없어질거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나는 이 일론머스크의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난 지금 현재시점에서도 노후준비는 투자비용 대비 이익이 아주 작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투자비용 대비 이익이 아주 작은, 이라는 말은 다르게도 표현 가능하다. 투자를 하면 할수록 이익이 커질 수도 있으나. 동시에 비용도 더 커진다. 서울의 허름한 순대국밥집에서 순대국을 먹으며 한 아주머니가 친구에게 하는 이야기를 엿들었다.

“근육을 늘리는 건 돈 모으는 거랑 비슷한거야. 돈도 차곡차곡 쌓아야 하듯이. 근육도 차곡차곡 쌓아야 하는거야”

“그래서 내가 요즘에 왠만하면 차 안타고 걸어다니잖아”

그 날은 크리스마스였다. 도보배달을 하며 한 건당 3000원-3500원씩 받으며 걸어다니다 모처럼 큰 맘 먹고 순대국밥을 사먹었다. 나는 분명 돈을 조금씩 벌기 위해 걸어다니는데. 한 편으론 근육을 조금씩 쌓기 위해 걸어다닌다. 근육을 늘리는 것과 돈을 모으는 것이 비슷한게 아니라. 상충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배달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먹고 싶은걸 사먹기 위해 굳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집 바로 앞에 있는 커피집에서 테이크아웃하기 위해 집 밖을 나가지 않지만. 또 돈을 내고 헬스장을 간다. 움직이지 않아서 생긴 결과로 나타나는 신체적 증상들을 걱정한다. 인스타나 유투브에서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라고 말하는 정신과전문의의 말을 새겨듣는다.

“야 이 씨. 이렇게 일하다가 나중에 나이들면 병원비 더 나오는 거 아니냐”

5년 전인가. 대기업을 다니던 아는 형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돈을 벌었으면, 돈을 써야한다. 돈이 많이 있으면. 돈을 써야할 이벤트가 발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돈을 벌기 위해 쏟은 그 시간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돈을 버는 것에서, 돈을 쓰는 것에서 의미가 생긴다. 돈을 벌려면, 특히 돈을 많이 벌려면 몸을 고되게 힘들게 써야하거나. 몸을 거의 쓰지 않고 머리를 많이 굴려야 한다. 돈을 쓰려면, 되도록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움직이지 않게 하기 위한 최고의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해야 한다. 가만히 식당에 가서 앉아 있으면, 최고의 요리사들이 수십분 정신없이 움직여 만들어낸 환상적인 요리를 먹어야 돈을 번만큼 쓸 수 있다. 그것이 만족스럽다. 돈을 번만큼 돈을 썼다는 사실이. 하지만 불만족도 쌓인다. 이익을 버는 만큼. 비용도 같이 벌린다. 돈을 벌지 않는 일에는 굳이 움직이지 않는다. 굳이 움직이지 않을 땐 움직이지 않아서 생기는 건강의 문제들을 걱정한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다시 돈을 써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다시 돈을 벌어야 한다.

이 싸이클이 그 자체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이 든 어른들이 하는 건강걱정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싸이클을 정신없이 반복해서 돌리다보면 어쩔 수 없이 ‘건강’이라는 주제가 고개를 들고 삐져 나오는 듯하다. 이 세상이 돈을 벌고 쓰는 싸이클과. 건강을 관리하는 싸이클을 함께 엮어낼 수 있게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내 나름의 싸이클을 살아내고, 글을 씀으로써 그 생생한 경험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일론머스크가 맞았던 것은. 앞으로 돈을 벌고 쓰는 사이클이 삶을 순환시키기 위한 사이클보다 상대적으로 중요한 정도가 점점 줄어들 것이란 사실이다. 에이아이의 노동을 통해 인간은 보다 더 편리한 재화와 서비스를 손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론머스크가 틀렸던 것은, 아니 사실 그가 삶으로는 틀리지 않은 것은. 에이아이가 만들어내는 그러한 편리한 유토피아 이후에도 사람은 계속 일하고자 할 것이고. 계속 움직이고자 할 것이란 사실이다. 일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계속 걱정을 할 것이다. 일론머스크 자신도 계속 일을 하고. 계속 움직이지 않는가. 그러나 모두가 화성에 가기 위해 로켓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돈을 벌고 쓰는 사이클에서도. 에이아이가 일하고 우리는 편리하게 즐기는 사이클 에서도. 인간은 계속 걱정을 할 것이다.

굶어죽을 걱정을 하는 사회는 이미 수십년 전에 끝이 났다. 우리는 이미 먹을 것이 남아서 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면 굶어죽는다’ ‘저러면 살아남을 수 없다’ 식의 수사를 너무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다. ‘굶어죽을’ 걱정에서, ‘ ‘ 라는 따옴표 안의 수식어를 무엇으로 채울지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 그걸 해내지 못한다면. 인간은 새롭게 다가올 인공지능의 시대에서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그저 걱정만 하다가 걱정을 잠재우고, 다시 걱정만 하는 아주 단순한 동물이 되어버릴 것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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