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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Sep 05. 2024

순례길 매직

산티아고 순례길 



우와. 글방을 할 때쯤이면 벌써 여행을 온지 3주차다. 여행의, 순례의 판도를 바꿔놓은 결정적 시기들도 거의 1주마다 찾아왔다. 11월 7일 화요일에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었다. 11월 14일 화요일에 포르투갈 길로 가기로 결심한다. 11월 21일 화요일. 11월 20일 월요일 처음으로 포르투갈 해변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유 아깝다..



순례길에는 숨겨진 마법이 있다. 스페인 말로 뻬레그리뇨 마히카. 처음으로 같이 걸었던 요셉이라는 69세의 아저씨는, 올 해 5월과 8월을 제외하면 모두 순례길을 걷거나, 순례자 숙소에서 봉사자로 지낸 사람이다. 같이 걸은 첫 날, 영어를 못하는 요셉과 스페인어를 못하는 내가 어색할거라고 생각하고 들어간 바에서, 난 순례길 매직이라는 단어를 처음들었다. 스페인 생맥주를 까냐(큰 잔)로 시켜 한국어 ‘건배’를 알려주고 나서 요셉은 순례길에서 가장 중요한 매직은 ‘훈또’ ‘투게더’ ‘함께’라고 설명해줬다. 


나는 거기에 또 하나의 순례길 매직의 중요한 요소를 추가하고 싶다. ‘쎄르베싸(맥주)’ 맥주가 물보다 싸게 느껴지는 스페인 순례길에서는 쉬러 들어간 바나 레스토랑에서 무조건 맥주를 시키게 되어있다. 나는 우리 아빠가 평상시에 매일 점심에도 반주로 소주를 마시고, 저녁에도 친구를 불러서든 단골 국밥집에 가서건 술을 마시는 걸 스페인에 와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스페인 순례길을 걷는 근 2주동안, 거의 매일 맥주를 먹었고. 보통 하루에 두 잔 정도는 마신 것 같다. 물 대신. 



마법은 현실이 아니잖아? 곰곰히 생각해보면 ‘함께’, ‘맥주’ 둘 다 개인적, 혹은 영적인 목적으로 걷는 순례의 본래 의미와는 어울리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름을 수정해야겠다. 스페인 순례길 매직. 






스페인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은 매년 정말 넘쳐난다. 올해 겨울에 숙소와 바들이 문을 닫은 곳들이 많은데, 알고보니 2023년 코로나가 끝나면서 몰린 순례자들이 80만명에 달해 역대급 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미 챙길대로 챙긴 상점,숙소 주인들이 사람이 그나마 별로 없는 겨울에 일을 안한다고. 그래서 꽤 본래적인 의미의 궁핍한 순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고 할 수 있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이 많다. 일단 보통 같은 일정으로 같은 마을을 거쳐가는 무리 수만 한 25명에서 30명은 된다. 하루 정도 쉬었다가 걸으면 그 다음 날의 무리도 똑같이 그 정도 숫자가 있다. 오늘 잠시 산티아고에서 순례를 역행하면 어떻게 되지? 상상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걸으면 매일 매일 새로운 무리들을 만나게 되니 굉장히 새로운 순례가 될 것 같았다. 내가 이걸 생각했다는건, 그만큼 꽤, 그 무리들에 속하고, 다시 벗어남을 왔다 갔다 하는게 이 순례에서 꽤 크게 의식되는 것 중 하나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래서 쓰는 글도, 일기도, 표면적인 것들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삶에서 느꼈던 슬픔, 분노, 후회 같은 깊고 무거운 것들을 온전히 소화해내기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부엔까미노~’ ‘올라~’하고 인사할 사람들이 내 뒤, 내 앞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혼자면서도 함께인 무리에 소속된다는건 꽤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일이어서 하루에 쎄르베싸 두 잔쯤이야. 그렇게 사람들과 맥주가 내 마음의 허기를 대신 채워주게 되고, 하루 하루 길 위에서의 시간을 축 늘이는 것이다. 



그러다 포르투갈 길에 왔다. 이제 스페인 순례길 매직은 없다. 오늘 걸으면서 초반에 앞서 가는 순례자를 한 번 보고는, 한 번도 다른 순례자를 보지 못했다. 심지어 오늘 30키로나 걸어서 도착한 목적지의 알베르게 (순례자 숙소)는 월요일이라고 문을 닫았다. 아니 솔직히 내가 걷는 길이 순례길인지 아니면 그냥 해안 길에 바다 구경하라고 만들어놓은 길인지도 헷갈린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본 체 만 체 지나가고(스페인 순례길은 순례자들이 매일 지나가는 마을을 지나가기 때문에 모두가 잘 인사해준다), 아직 포르투에서 멀지 않아서인지 해안 마을들은 순례지라기 보다는 그냥 강원도의 안목해변에서 주문진을 거쳐 양양 가는 해변 쯤의 느낌이다. 


지나가다보면 뷰가 끝내주는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곳곳에 포진해있고. 스페인에서 본 정겨운 마을의 바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서 뭐를 먹을 땐, 내가 좀 의식적으로 결심해서 그런지, 아니면 이제 여유가 생겨서 ‘뭐 마실래요?’ 물어봤을 때 다른 음료도 고민할 수 있어서인지, 아니면 한국에 스페인 맥주는 비싸게 팔아도 포르투갈 맥주를 비싸게 파는 경우는 없기 때문인지. 맥주를 먹지 않고 있다. 



맥주를 마시지 않는 나. 오늘 그냥 혼자 자는 숙소에 들어와서 마트에 가서도 내가 산건 바나나, 스무디, 심지어 샐러드, 파파야였다. 이건 아마 생존본능이다. 오늘 처음으로 포르투갈 길을 걸으면서 나는 혼잣말로 중얼 중얼 대화를 했다. 나를 올해 동안 마음적으로 괴롭혔던 사람에게 끝까지 내가 할 말을 다 토해냈다. 타협되지 않는 나의 진실, 화해라는 가벼운 단어로는 할 수 없는 용서에 대해 포르투갈 해변 길을 걸으며 진중히 생각했다. 스페인 순례길을 걸으며 아무렇게나 들었던 팟캐스트나 오디오북은 습관보단 선택이 되었다. 


순례길 매직이 내게 걷힌 것이다. 나를 언제나 포근하게 받아줄 것 같은 거대한 순례길 매직은 이제 없다. 따스한 포르투갈의 햇살과 더 경쾌하고 맛있는 바닷가도, 실은 지금 더 춥고 혹독할 스페인 순례길의 순례길 매직을 대체하진 못한다. 누구도 나를 대신해 나를 대면해주지 않는다. 그런 위태로운 상황에서 맥주나 와인을 마시는 것은 나를 고독이 아닌 더 위험한 곳으로 빠트릴지도 모른다는 경계의식 같은 게 생겼다. 이 길 위에서는 내가 나를 더 받아줘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사실 벌써 원래 걷던 그 곳 순례길이 그립다. 매일 똑같지만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정겨운 마을들. 도시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복장과 배낭을 갖춘 온 나라의 순례자들. 맨날 먹는 또띠야, 쎄르베싸. 열린 포도는 보인 적 없는 포도나무 밭, 오르막과 내리막길. 어딜 가도 비슷한 그 날의 메뉴들. 



약간 후회가 되었다. 그냥 그 길을 걸을 걸. 더 좋았을텐데. 그런데 문득 다시 생각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배운건 후회없는 삶이 아니라 후회를 감내하는 삶이었다. 이 곳 포르투갈 길에 오기로 선택한 나에게 답이 있다는 사실을 믿기로 했다. 적어도 나는 순례길 매직의 강한 영향력에서 벗어나보겠다는 용기를 낸 것이다. 후회를 이기기 위해선 내가 한 선택을 온전히 수용하고 긍정하고 존중해줘야 하겠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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