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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Sep 05. 2024

50만원

유기농쌈채소농장에서의 기록

합리화의 고수. 잃어버린 물건만 떠올려도 벌써 처음 써본 여행 중 사라진 60만원짜리 오즈모 포켓. 따릉이를 타다가 열린 가방으로 떨어져버린 50만원짜리 고프로. 그 외에도 나는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많아 그럴 때마다 어떻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한지 잘 알았다. 60만원짜리를 잃어버렸다면 일년에 하루 2000원씩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자. 아니 3년에 하루 700원. 아주 비싼 물건을 살 때는 몇 십만원이 아쉽지 않다. 따라서 돈은 상대적으로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다가도 가끔 뭐를 사려다가 돈이 없어 안사는 다짐을 할 때면 그 돈이 또 엄청 커보이기도. 60만원이면 항공권 제외 인도 여행을 아주 가난하게 다녀올 수 있는데. 



그깟거 잃어버렸다고 내 행복을 깨트릴 순 없다. 가 나의 지론이다. 그래서 난 돈이 지지리도 쌓이지 않았다. 애초에 돈을 벌려고 뭘 하는 것을 계속 주저하기만 했다. 돈이 들어오면 나가고. 돈이 들어오면 뭘 샀다가 잃어버리고. 뭘 샀다가 안쓰고. 결과적으로 돈은 내게 행복을 가져다준 일이 없으며, 무언가를 잃어버리거나 돈이 없어도 잠시 지나면 나에게 오는 행복은 여전했다. 걷다가 하늘을 보는 것. 글을 쓰는 것. 친구를 만나는 것. 친구를 만나는 중에도 최대한 돈 안쓰고 산책하며 만나는 것. 하여간 돈이 없어왔다보니 은연중에 나의 행복은 돈에 의해 제한받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뭔가 엑기스 같은 무언가를 마주했다. 라고 돈이 없던 나를 합리화한다. 돈때문에 전전긍긍 하며 사는 사람들은 이런 행복 있는지도 모르겠지. 돈이 없는 상황에서도 이런 행복이 생긴다는 사실을 그 사람들은 모르겠지. 티베트 불교의 승려들이 전 세계를 향해 우월함을 과시하듯. 아. 그래서 나의 이상향 속에서는 늘 그런 이미지가 있었다. 속세와 단절하여 고요하게 자연과 함께 있는 것. 몰입이라는 책을 쓴 미하이칙센트 미하이가 ‘미국의 노숙자가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그것 또한 진짜 행복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한다’는 말을 나는 계속 진짜라고 믿고 싶었다. 



사실은 돈에 대한 수치심일지도 몰라. 이런 의문들은 돈이 없는 나에게 또 다른 무게로 닥친다. 어릴 때 가난을 겪은 나의 수치심과 죄책감이, 최대한 안전하고 싶어하는 마음에 돈이라는 주제를 영영 내 삶의 바깥으로 내모는 것일지도. 그래서 나는 돈과 성공 명예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사람을 어째 끝까지 경멸할 것처럼 살아갔을지도. 


그렇게 내가 세워지지 않는가? 그렇다. 세워야 하지 않는가? 인간도 신도 부정하는 이 세상에서 한낯 돈 까짓게 이 세상의 신노름을 하고 있다면. 내 한 번쯤 그 놈을 완전히 짓눌러버리고 싶은 마음 쯤이었던 것 같다. 



띠리링 띠리링. 전화가 왔다. 난 지금 A 유기농 쌈채소 농장. 막 이사를 오고 처음으로 월요일 쌈채소를 열심히 따고 있었다. 난 고민이 있었다. 하. 돈을 벌 수 있을만한 계획이 있는데. 그거 말고 내가 진짜 하고 싶고, 해야한다고 생각 안해도 하고 싶은게 있단 말이지. 뭘 먼저 해야하지? 하, 그나저나. 여기 커뮤니티 구조를 거의 만들다시피 한 J선생님은 자꾸 나를 내리 깎고 졸업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 없는 고졸이라고 놀리다시피 하고(하지만 이런게 지금의 나에게 꽤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받아주는 중이다). 아니 근데 고졸이 뭐 어때서? 난 이런 생각이나 하고 앉아있으니. 그래. 난 좋은 대학 나와놓고 지금 내 인생의 목표를 ‘고졸이 뭐 어때서?’를 긍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었는지. 하여간 이 모든 잡념과 생각들이 한 곳을 향해있었다. 아직 까지 이뤄논 것 없는(것처럼 느껴지는) 나 자신. 



전화의 전말은 그러했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2개월 혹은 3개월 후에 준댄다. 사실 내 잘못이기도 하다. 어차피 주겠지 하고 구두연장한 기한에 나가겠다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귀찮았다. 아 몰라. 주겠지. 안받는 일은 없겠지. 아, 좀 늦게 줘야한다고 하면 그냥 늦게 받지 뭐. 연락하기 싫어. 연락하면 다음 세입자 보러 오는 거 신경써야 하고 집 정리 계획해야하고. 하 싫다 싫어. 그 과거의 나. 지난 주 글의 내가 만들어놓은 결과값이었다. 신경이 쓰였다. 그 돈이 없으면 한 달 후 이사는 어떻게 하며(지금은 이 곳의 남자 숙소에 임시 거주중이다.) 심지어 대출해놓은 돈이니 이자까지 들면 거의 50만원이 세달이면 빠져나갈텐데. 하는 걱정. 그 걱정이 나의 고요한 쌈채소 기술을 방해했다. 



거의~ 꺾일 뻔 했다. 내려놓기는 무슨 개뿔. 될대로 되는 건 무슨 개뿔. 뭘 해야, 되는거지! 아주 지랄을 했구나 지랄을. 허나, 지금 이순간도 떠오르는 그런 일들이 있다. 아니, 나는 고작 한 시간의 상담을 위해 10만원씩을 냈어. 나는 5일간의 생채식캠프를 위해 60만원을 줬다고. 나는 그 여행에서 맛있는 것 먹겠다고 한끼에 6만원 주고도 먹고 있지도 않은 돈을 펑펑썻는데. 결국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아니었던가? 내가 더 나은 나로 변화하기 위해 필요한 경험을 위해 나는 그 돈을 아낌없이 쓴 것인데. ‘고작’ 이런 일 때문에 나의 정신이 이렇게 무너져도 되는건가? 이 생각의 방향성의 마음이 아주 순식간에 쌈채소를 뜯으면서는 일어났다. 난 정말 기어코 결국 나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모든 순간에 해주지 못하는 것이란 말인가? 마음 속으로 원하면, 결국 될 일은 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내가 갖고 있는 돈을 다 써버리고 말겠다는 내 ‘원’은 결국 모두 이뤄지고 있긴하다) 



고작 50만원 때문에 내가 무너지고 있는 꼴이 보였다. 이 지경을 더 길게 냅둬선 안된다. 그렇다고 익숙하게 해왔던 합리화 따위도 이제 그만해야했다. 예술작품 공모전에 떨어진 어떤 법우님에게 ‘떨어지고 싶어서 떨어진거에요’라고 말한 스님의 말도 지금 생각난다. 친구에게 위로한다고 하면 미친 말로 취급될 말을 스님은 어찌하여 저리 쉽게 한단 말이지? 근데 그 말이 사람을 위로하는 큰 힘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고 나니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있으면서도 자꾸 하고 싶은 것,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 운운하며 빙빙 돌아가려는 내 꼴도 보였다. 그렇게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이 남으면 그 남는 시간 할 것 없다고 한탄하는 나 자신도 보였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50만원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50만원을 잃어놓고 그것도 행복이라고 혼자 합리화하는 것도. 사실은 원통하고 아깝고. 어차피 나중 가면 다 잊혀질 일이지만 지금의 나의 행복에, 그리고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의 그 때의 나의 행복에 큰 상처를 주는 일이기에. 지금은 내가 돈을 좋아하고, 돈을 필요로 하고, 금전적 안정을 누리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적어도 3달에 빠져나가는 이자 때문에 행복에 상처가 되는 사람이고 싶진 않았다. 그 상처가 싫어 계속 세속과 멀어지려고 하는 나도 결국 내가 세운 허상에 불과했다. 빨리 돈을 벌어야겠구나. 빨리 내 삶에 안정을 가져다 놔야겠다. 물론 그 전 아침까지도 ‘이젠 내가 돈을 좀 벌고 싶구나’하는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 고민 자체가 나를 가로막고 있음을 깨달았다. 



불교에서 화두란 수행 중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주제를 의미한다. 원력이란 이 세상에서 내가 해내고자 하는 진정한 마음 같은 것이다. 50만원은 세 달동안 나의 화두가 될 것이다. ‘50만원이 준 상처를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 나의 원력이 될 것이다.  난 아직 이 생각을 내려놓지 않을련다. ‘죄책감, 두려움, 분노의 부정적 감정을 내려놓을 때라야만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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