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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Sep 05. 2024

불 끄고 쓴 글

집이 한 달 넘게 난장판이다. 긴 50일 동안의 여행 동안 비어있던 내 집에 나는 도착하자 마자 여행 짐들을 아무데나 내던졌고. 이 집은 어차피 한 달 후인 지금쯤에 이사할 집이기 때문에 나는 집을 치울 동기가 영 생기지 않았다. 집에 오면 정신을 180곱하기 120 정도의 작은 토퍼에 집중한다. 내가 신경쓸 곳은 딱 그 영역이다. 그리고 누워서 이전에는 잘 보지 않았던 유투브들을 막 몰아서 본다. 밖에 나갈 일은 걱정하지 않는다. 귀찮은 친구 약속들이 알아서 연말이라 막 잡혀있었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면 집중할 영역을 더 넓힐 수 있어 좋고. 쓸데없이 정신력을 낭비하지 않고 운동할 수 있어 좋다. 


집을 많이 비웠다. 집을 치워서 비웠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집을 비웠다. 12월 22일부터 1월 31일 현재까지 내가 집에 있었던 날을 세보면 일주일 남짓이다. 집을 난장판으로 놔둬놓고 집을 비워놓으면 싱크대 밑에 바퀴벌레라도 있다는 듯한 부담감을 느낄만도 하다. 이 부담감에 잠시 집중해보면 이 부담감은 바퀴벌레가 나왔을 때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다. 내가 난장판인 집 상태를 생각하면 느껴지는 부담감은 결국 내가 이 집을 치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만들어내는 감정이다. 


어떻게 집을 치울 수 있을까. 일단 나는 결국 이 집을 떠날 것이다. 난 지금까지 이사를 하는 동안 매 번 짐을 마구잡이로 버린 뒤, 집에 있는 가방 몇몇에 선택받은 짐들을 꾸겨 넣고 직접 들고가 이사를 했다. 그러고보면 이 경험들이 나를 내려놓게 만들었다. 물건은 더 많이 가져봐야 좋을게 없다. 그러나 거부하지 못하고 계획적이지 못한 나의 성격 탓에 물건은 집에 산 기간만큼 쌓이기 마련이다. 역설적으로 물건이 쌓이는 만큼 내려놓아야 하는 생각 또한 쌓인다. 물건을 쌓는게 문제가 아니다. 쌓으면 이걸 버려야한다는 생각이 나를 또 짓누른다. 


버릴 생각에 부담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짐을 모두 가져가기로 마음먹는다. 모두는 아니고 버리기에 애매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짐은 일단 다 가져가자. 다 가져가기 위해서는 트럭을 불러야 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돈이 없다. 이사를 할 돈은 있지만 돈이 바닥나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원래는 아빠 집에서 바로 서울로 올라와 돈을 아끼고 내가 직접 이사를 준비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아니. 생각을 바꾸었다. 마침 이사를 해야하기 일주일 전 집안 문중행사가 있다. 그 곳에 가면 30만원을 준다고 한다.고리타분하기 그지 없고 이 나이 먹어서 돈 받으려고 그 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생각이 참 신기하다. 30만원 받으려고 간다고 생각하면 저항감이 생기던것이, 이사를 위해 스트레스 받을 시간과 이사 트럭비용을 받으려고 간다고 생각하니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아빠 생일을 위해 광양의 아빠 집을 잠깐 내려와 다시 서울로 올라가 3주동안 이사 준비를 하려고 했던 나의 계획이, 순식간에 아빠 집에서 그냥 푹 쉬고 문중행사에서 돈도 받아 그 돈으로 이사 편하게 하자는 계획으로 바뀌었다. 30만원으로 2주간의 평안을 산 것이다. 


집에 다시 돌아왔다. 이사는 이제 3일이 남았다. 닥쳐야 다급하게 한다는 말이 참 불안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닥치면 어차피 할거라는 태평함으로 느껴진다. 3일동안 이사짐 준비를 걱정한다고 이사짐 준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이사를 하는 날에 나는 이사를 할 것이다 라는 마음가짐이 이사짐 준비를 되게 한다. 집에서 노트북을 사용하거나 하면서 집이 난장판인게 보이는게 거슬리면 불을 끈다. 나는 현실을 회피하는 것인가? 아니다. 나는 이사짐 준비가 다 되기 전 시간을 내 시간으로 더 버는 것이다. 


침대에서 누워있을 때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일어나서 한 시간 반쯤 누워있었나. 유투브 쇼츠도 보고 눈도 감고 있다가 책도 읽고. 언제까지 누워있어야 하나 생각이 들자 일어나고 싶어졌다. 그러나 일어나기가 싫었다. 2달 전까지 같으면 나는 이 불안감을 극복하자는 다짐으로 굳게 결심해 일어났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몰라. 그냥 좀 쉬면 안되나. 쉬자. 더 그냥 푹 잠기자. 옆에 책이 보였다. 책의 한 챕터를 다 읽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부엌으로 걸어가 싱크대 앞에 나와있었다. 


아무 생각도, 아무 결심도,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나는 그냥 침대에서 일어났다. 


난장판이 된 집을 바라보는 방식도 똑같다. 불을 끄고 편안하면 된 것이다. 어차피 난 이사를 갈 것이기 때문이다. 정 그 불안감이 가시질 않으면,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천천히 섹터별로 정리를 한다. 십분의 일을 해놓든 십분의 이를 해놓든 상관없다. 어차피 나는 닥치면 이사를 다 할 것이다. 밤을 새서라도 할거다. 


거세게 삶의 이유를 찾았다. 아니, 단단히 만들어진 삶의 강박이 나를 거세게 짓눌렀다. 그럴수록 나는 거세게 저항했다. 혹은 나는 거세게 그 삶의 강박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모두 거세게 잔뜩 힘을 주고 있을 뿐이다. 내려놓는 것마저 쌓는 것이 되어버렸다.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그냥 저기 있을 것이다. 아니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없어도 된다. 저기 없어도 된다. 지금 없어도 된다. 모른다는 것은 곧 찾고있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마저 한보 전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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