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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Sep 05. 2024

Out of my hands

생채식캠프 후기 


무슨 글을 써야할 지. 사실 무슨 글을 써야할 지 고민하는게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인데. 나는 그러한 고민없음을 꽤 자랑스러워했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주제가 바로 떠오르고 그 주제를 붙잡고 두 장 세 장 글을 쓰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첫 문단을 쓸 때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내용이 사실은 내가 쓰고자 하는 큰 그림의 일부라는 것을 놓지 않고 미묘하게 마지막에도 첫 문단의 흘림을 다시 되새김하는 것을 꽤 좋아하곤 했다. 글을 쓰는 것은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중 하나였나보다. 나의 끝까지 통제하고자 하는 희망이 그나마 현실 속에서 발휘 되는 것이 글쓰기였기 때문이다.   


멍한 채로 다음 문단을 쳐다본다. 침을 꿀꺽 되삼킨다. 10분 전에 껍질 채로 먹은 귤의 단 맛이 아직 입에 머물러있는 것을 느낀다. 나는 여기까지 와있다. 잔뜩 쪼그라졌다. 내가 3장을 앞서 생각하던 나의 감싸주는 영역이 이제는 피부 바로 가까이에, 아니 피부보다 더 안쪽으로 와있다. 그나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몸뚱아리다. 내가 확실하게 감각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지각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갑자기 초라함을 느낀다. 되게 뿌듯했는데, 내가 드디어 내 손끝을 감각하고 입안의 자극보다 위장에 감각을 더 중요시 한다는 데에서 나름의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벌써 2주가 넘게 지났다. 나는 여행을 다녀온 뒤 나에게 닥쳐온 무기력감과 무게감을 해소하기 위해 생채식캠프라는 곳을 다녀왔다. 과일을 마음대로 먹고, 딸기, 배, 사과, 블루베리, 얼룩 가득하지만 싱싱하게 상큼하고 새콤하고 달콤한 귤. 또 견과류, 가만히 상온에 냅두면 싹이 튼다는 생견과류를 또 마음껏 먹는다. 지켜야할 규칙이라고는 잎채소를 하루에 7장 먹을 것. 생 현미를 소가 되새김질 하듯이, 이빨로 씹는 것이 아니라 매만져주면서 녹여먹어 100g을 먹을 것이다. 이 곳에서 하는 것은 먹고, 또 먹고, 잠깐 바깥에 산책하고, 또 먹고. 드라마보고. 자고. 싸는 것도 엄청 중요하다. 이 생채식을 완벽하게 해낸다면 무려 황금색 똥이 나온다고 한다(사진 봄).    


 나는 별로 무기력과 무게감을 해소할 생각이 없었다. 좌뇌인간인 내가 열심히 부단히 살면서 했던 생각들이 우뇌인간이 되고싶은 요즘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무기력하다고 가치없는 것인가. 내가 느끼는 무게감이 과연 나 혼자 떨쳐낼 수 있는 것인가. 여러 방면에서 고민한 결과 그 무기력과 무게감은 좀 더 들여다 보아야 할 것에 불과했다. 나는 그렇게 또 다른 방면으로 돌입할 것을 다짐했고, 60만원 주고 다녀온 5일짜리 생채식 캠프는 나에게 가장 사치스럽고 화려하고 기분 좋은 무기력의 경험이 되었다.   


다시 글을 쭉 되돌아보고선 나름의 통일성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춰진다는 것에 잠시 뿌듯함을 느낀다. 통제하지 않을 때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다는 나의 최근의 동앗줄을 다시 되새긴다. 두 달, 벌써 두 달 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나는 계속 가족에 대한 생각. 아빠에 대한 생각을 했다. 아빠가 죽으면 어떡할까. 아빠가 죽었으면 좋겠다. 아빠가 죽어도 내가 괜찮았으면 좋겠다. 그 두려움은 기어코 내려놓을 수가 없는 감정이었다. 그 뒤에 따라오는 죄책감도 내려놓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걷는 한 달 내내 아직 찾아오지도 않은 두려움에 예비할 온갖 생각들을 길 위에서 만들어냈다. 내가 또 미래의 나를 위해 열일을 했구나. 그러나 나는 이제 그런 생각들을 아무데서나 아무 때나 생산해내는 나 자신의 한 부분을 내려놔야겠다고 생각한다.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믿는다. 산티아고 순례길 마지막 날, 아니 그 다음 날이었다. 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있는 알베르게(숙소)를 북킹닷컴에서 예약하려고 했다. 도착지였던 대성당을 계속 올려다본 뒤, 비도 오고 손도 몇 일동안 물에 쩔은 우비 때문에 부어서 꽤 정신은 없었다. 정신없이 맨 위에 평점이 매우 좋은 알베르게를 바로 예약했었는데, 알고보니 그 알베르게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있는 알베르게가 아니라,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의 마지막 바로 직전 10km정도 떨어진 마을에 있는 알베르게였다. 환불은 할 수 없어서 ‘그래 내가 프랑스길을 걷다가 중간에 길을 바꾸고 포르투갈길에서 마무리를 했으니, 프랑스길에서 마무리를 한 번 더 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겠지’ 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날, 아니 그 다음 날, 나는 심지어 가방도 없이 정말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프랑스길의 마지막 10KM를 걸었다. 산티아고 순례자에게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한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다. 그래서 그 전날에도 이 성당을 도착할 때의 감정이 복잡 미묘하고, 이 순간을 최대한 부여잡고 싶은 마음에 긴장했던 것도 사실이다. 헌데 이 경험을 사실은 그냥 아무렇게나 한 번 더할 수 있다는게 생소하게 느껴졌다. 날씨도 정말 좋았다. 파란색 하늘에, 뭉게뭉게 펼쳐진 구름. 절로 노래가 흥얼흥얼 거려졌다. 그 노래는 내가 순례길 내내 들었던 Jason mraz의 ‘yes’ 앨범에 있는 수록곡 ‘out of my hands’ 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크게 좋아하진 않았던 노래다.  



When it feels like life has gotten out of control

삶이 내가 어떻게 할수 없다고 느껴질 때 
 When it feels like much too much to hold

너무 많은 것을 쥐고 있어야 한다고 느껴질 때 
 When it feels like too much to understand

이해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느껴질 때 
 No, that's out of your hands, out of your hands, out of your hands

그건 너의 손 바깥에 있어.  



이 노래를 한 두 시간 이상은 계속 흥얼거렸다. 흥얼거리느라 길도 한 두 번인가 잃어버렸다. 그 날은 유독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유의미한 존재인 적이 많았다. 길을 잃었다가 조금이나마 할줄 아는 스페인어로 길을 물어 다시 원래 길을 찾아가는 중에, 똑같이 길을 잃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여기가 아니라 저기로 가야한다고 말해줬다. 대성당에 도착하고 난 뒤에는, 그래도 포르투갈 길로 갈아타기 전 만났던 프랑스길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싶어 계속 서성이며 기다리다가, 유독 우연히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자주 만나 기분 좋은 인사를 나눴던 한국인 부부를 만나 사진을 찍어줬다. 나도 정말 그들을 다시 만난 것이 반가웠는데, 그들은 사실 대성당에 도착했을 때 많이 실망했다고 한다. 40KM를 걷고 뭔가 감동적인 순간이 찾아올 줄 알았는데, 주위에는 온갖 관광객들만 많고, 제대로 사진 찍지도 못할 거란 생각에 서운했다고 한다. 그런 그들을 나는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고, 여운을 방해하지 않는 수준의 타이밍에 ‘사진찍어줄까요?’라고 말하며 인사한 내가 그들에게는 정말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고. 히히 뿌듯하다  



기적, 은총, 신. 이런 것들은 나하고는 거리가 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노래를 한 두시간 흥얼거리던 그 날 오전, 두 번째 길을 잃은 뒤 다시 제대로 된 길에 들어섰다. 대성당까지는 2KM정도가 남아있었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또 내가 10KM만 걷는 나머지 다른 프랑스길에서 마지막 걸음을 하는 사람들을 못보겠다는 생각에 잠시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간단한 치즈 샌드위치와 카페 아메리카노를 겸하며 바깥 테라스에 앉아 바깥에 걷고 있는 순례자들을 구경했다. 문득 그 날의 유난히도 가벼워진 마음에 다시 내가 예전에 묻어버린 꿈을 떠올린 것을 마음 속으로 축하하기도 했다. 다 먹고, 나는 계산을 하기 위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노래의 첫 전주부분이 나오고 있었다. 어라 이 노래 많이 들어봤는데. 어 이 노래 내가 맨날 들었던 제이슨 무라즈 앨범 노래잖아! 신기해하면서 가게 주인한테 ‘비지엠 이즈 베리 굿!!!’ 했더니 가게 주인이 ‘잇츠 스포티파이’라고 말했다. 신기했다. 그러고 잠깐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나오니 노래의 클라이맥스가 나오고 있었다. 헉. 알고보니 그냥 제이슨 무라즈 그 앨범 노래 중 하나가 아니라, 내가 그 날 아침 내내 흥얼거린 바로 그 노래였다. 나는 당장 카메라를 집어 들어 신이 존재하는 증거라도 남기듯 동영상을 찍었다.  



나는 지금 광양에 있는 도서관에서 글을 쓰고 있다. 아빠의 생일을 이유로 광양에 왔다가 지금까지 아빠와 같이 지내고 있다. 생채식캠프의 효과는 무색하게 현재 11일 내리 맥주를 마시고 맛있는 ‘일반식’을 잔뜩 먹으며 아빠의 술자리를 겸하고 있다. 나름 최장기간이다. 나는 맨날 뭘 먹이고, 마시게 하는 아빠와의 시간이 짜증나고 답답해 늘 서울로 급히 달아나듯 아빠의 집을 떠났었다. 공부해야하는데, 일해야하는데, 빨리 성공해야하는데 나를 돕기는커녕 맨날 도움도 되지 않는 것들을 계속 사랑이라 생각하며 주려는 아빠가 미웠고. 아마 그 미움과 죄책감을 내가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허나 지금은 꽤 괜찮다. 매일 갈 수 있는 가까운 도서관도 좋다. 저녁에야 많이 먹지만 아침과 점심에는 과일과 견과류 아빠가 삶아놓은 달걀도 먹어 나름 디톡스가 된다. 내가 감당하지 못한건 술과 음식, 아빠 집에서 아무 생각없이 푹 쉬는 것이 아니라, 그럴 때마다 올라오는 죄책감이었다.  



그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그 노래를 들은 후, 나는 순례길에서 생각하고 고민했던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겪었다. 내가 단단히 손에 힘을 주고 있어봤자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감각이었다. 지금은 그냥 손을 편다. 죄책감을 그냥 내려놓는다. 적어도 아직 난 내가 다시 과일과 견과류를 내 손으로 쥘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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