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있는:문목하:아작:2018
계단을 만드는 건 두명일 수 있어도 그것을 밟고 올라 탈출하는 건 둘 뿐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끈질기게 위까지 다다르도록 견뎌내야만 했다. 그들은 함께이되, 종래엔 각자의 방식으로 복수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용서해야 할 것이었다.
윤서리는 자기 몫의 복수와 용서를 다른 이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적어도 복수에 있어선 그게 그녀의 방식이었다. p. 390
'돌이 킬 수 있는'은 문목하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주로 SF소설책을 출판하는 아작에서 출판했다. 사실 아작에서 나오는 책들을 잘 모른다. 유일하게 아는 책은 부커상 후보로 유명해진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 정도이다. 최근 온라인 서점에서 자주 보이는 출판사 이름이지만 SF라는 장르를 굳이 찾아보지 않는 독자 입장에서는 손이 가지 않는 출판사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상상력이 부족하다. 빽빽한 나무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며 오솔길을 걸어가느라 숲의 정경을 놓친다. 오솔길에서 갑자기 요정이 나타나 나를 구해준다거나, 괴물이 나타나 나를 잡아간다는 상상따윈 하지 않고 길을 잃지 않게 걸어가는 유형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겪어보지 않은 상상의 세계를 읽고 그려나가는 책은 누군가의 추천이 아니면 손에 싹 잡히지 않았다. 미스터리도 비슷한 입장에서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돌이킬 수 있는'은 책모임이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테다. SF와 미스터리가 만났다. 책의 뒷면에서 'SF와 판타지, 미스터리를 효과적으로 결합한 신인 작가 문목하의 놀라운 데뷔작!'이라고 되어있다. 미색의 표지에 손으로 만져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같은 색의 엠보로 처리된 두 세계를 잇는다고 알려진 웜홀이 있다. 그 웜홀의 곁에는 두 팔을 벌린 평범한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냥 평범한 여자 한 명이 서 있구나, 표지의 표면이 올록볼록하네라고 생각했었다. 다 읽고 다시 표지를 보니 웜홀을 다 품어 버리겠다는 강렬한 의지로 읽힌다.
이렇게 쓰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종종 SF, 미스터리 등의 장르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생각보다 여러 편을 보았고 좋아하는 책 목록에도 여러 권의 있다. 그러니까 SF장르를 좋아하지 않기보다는… 이야기가 재미없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 듯하다. 장르소설은 그 장르를 부각하다가 자칫 독자를 상황에 몰입시키지 못하거나, 이해가 떨어지게 쓸 일이 현실세계를 기반으로 일상을 풀어낸 소설보다 높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것을 작가가 상상해서 쓴다면 그만큼 그 상황을 잘 묘사해야 한다. 그래서 장르소설의 경우 묘사에 집중하다 이야기를 놓칠 때가 있다. 그러니까 두 마리 토끼를 잘 잡아야 성공한다. '돌이킬 수 있는'는 아주 능숙하게 가지고 놀듯이 장르와 스토리를 잘 버무린 데다, 세계관도 거미줄처럼 촘촘하다. 롤러코스트처럼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반전에 독자가 마지막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이야기의 중심과 시대에 공감을 놓치지 않았다.
'돌이킬 수 있는'은 책의 뒷면에서 안내하는 줄거리 외에는 다른 사람에게 읽으라고 추천하면서도 한 마디도 해 줄 수 없다. 말을 하는 순간 모든 것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이다. 총 10개의 목차는 넘길 때마다 반전이 나온다. 한 치 앞만 보며, 수수께끼를 풀라고 하면 머리에 쥐만 나는 나 같은 사람에겐 모든 것이 상상하지 못한 반전이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감각이 짜릿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되는 건데..' 하면서 손에 땀을 쥐며 다음 장을 계속 펼치다가 결국은 궁금해서 마지막 장을 먼저 읽었는데도 미스터리도 SF도 판타지도 다 풀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읽던 부분으로 돌아가 한 장 한 장 읽어 내렸다.
SF, 판타지, 미스터리만 있었다면 나같이 현실, 경험위주의 독서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재미없었을 것이다. 오래전 싱크홀 발생으로 폐쇄된 유령도시, 그곳에서 4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곳에 보내진 윤서리 수사관은 그곳에서 이백여명의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초능력을 목격한다. 그들은 싱크홀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었다. 이 세상 사람과 다른 특별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600여 명이 기이하게 나타났다고 하자. 그러면 일반인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정부에서는?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마음을 다쳤고, 몸도 다친 얼마 전까지 평범했던 사람들이지만 이제는 우리와 달라진 사람이 여기 있다. 이런 일들은 일상에서 자주 일어난다. 구제역이나, 전염병이 발생하면 그에 걸린 동물이나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구제역과 전염병은 이미 아는 것이라면 이도 저도 아닌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일이 발생하면.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했을 때 나와 주변, 정부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떠올려보자. 눈먼 자들의 도시 같은 책에 나오는 것과 같은 일이 생기면. 국가는 다수의 일반인과 정부의 체제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일단 폐쇄시킨다. 그리고 개인의 이야기는 없어진다. 그냥 집단이 되어 버린다. '돌이킬 수 있는'에 나오는 싱크홀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도 동일하다.
만약 곧 뭉개질 인부가 그냥 ‘아무나’가 아니라면? 앞 유리창으로 내다보니 다른 선로에 서 있는 인부 한 명이 친구 수잔이라면? 그 착하고 사려 깊고 심지어 전에 자기가 못 가게 된 비욘세 콘서트 티켓을 준 적 있는 친구를 죽일 수 없어서 선로를 바꾸지 않기로 능동적으로 결정을 내린다면? 친구 수잔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다섯 명이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납이 되는 일일까? p. 63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마이클 슈어>
'돌이킬 수 있는'은 개인에 주목한다. 시작은 수사관 윤서리에서 시작된다. 윤서리의 삶을 알기 전까지는 서리의 행동방식을 우리가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윤서리가 만나고 그녀를 통해서 움직임을 보여주는 사람들의 행동도 쉽사리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들의 인생을 파고들기 전까지는 그들은 그냥 싱크홀에서 살아 돌아온 초능력자일 뿐이다. 이 책의 재미는 여기에 있다. 군집에서 시작해서 하나씩 인물의 과거를 알려주며 미래에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독자가 이해하게 된다. 그들의 과거는 모두 엄청난 반전이 되어 독자가 책을 보는 방향을 틀어버린다. 반전에 반전을 따라가다 읽다 보면, 답답해서 먼저 읽어봤던 책의 마지막 구절까지 엄청난 반전이었음을 깨닫는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개개인을 이해하고 아끼는 순간 우리는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초능력을 발휘한다. 부셔야 할 것은 부수고, 막을 것은 멈추고, 되돌릴 수 있는 것은 되돌린다. 반대의 상황도 충분히 있다. '세상 모든 것의 생'이 하나의 역사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모든 것을 쉽게 부수고, 멈춰버리고,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말이지만 둘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내어 놓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끊임없는 학습, 끊임없는 사고, 끊임없는 탐색’의 가장 좋은 점은 그것이 안겨주는 결과다. 성숙한 동시에 유연한 사람, 옛것과 새것 모두를 경험할 줄 아는 사람, 반복에 따른 익숙함이나 한물간 세상 정보에만 기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p. 53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마이클 슈어>
'돌이킬 수 있는'을 읽으며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을 읽으며 멈추어서 다시 한번 읽었던 문장들이 떠올랐다. 비욘세 티켓을 구해준 사랑하는 친구 수잔 한 명을 희생시킬 수 있을까? 반대편에 있는 모르는 사람 다섯 명을 죽일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무얼까? 그래서 너는 어떤 삶을 살거니?라고 물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을 위한 몸부림을 선택할래요.'라고 대답할 것 같다. 내가 본 이 책의 윤서리가 그런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