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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Apr 09. 2021

고 녀석 맛있겠다.

미야니시 타츠야

일본의 만화 캐릭터들을 처음 만나면 귀엽다기보다 '다소 엽기적이다'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그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를 꼽는다면 토토로에 나오는 토토로와 고양이 버스를 들 수 있겠다. 토로로는 키도 크고,  입도 크고 이빨도 크고, 손톱도 얼마나 길고 큰지 모른다. 지금도 가끔 저렇게 무서운 애가 어떻게 귀엽게 보이는 거지?라고 신기할 때가 있다. 고양이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고양이의 무서운 눈과 뾰족하고 긴 발톱을 보고 흠칫했었다.  그러나 토토로 이야기의 마지막으로 가면 갈수록 토토로는 세상에서 가장 듬직하고 따스한 친구가 되어있고, 고양이는 장난꾸러기 삼촌 같은 느낌으로 남게 된다. 그들은 영화 내내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몸짓과 괴상한 소리만 우리에게 보여주었는데도 그렇다.


도라에몽도 고양이인지 토끼인지 애매하게 생겼고, 짱구도 못생긴 축에 속하지 않나 싶다. 피카추도 귀여운 부분은 큰 눈과 노란 몸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나도 이 캐릭터로 만들어진 상품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고 녀석 맛있겠다’라는 그림책 또한 그러했다. 예전부터 좋은 그림책이라는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커다랗고 못생긴 눈이 쭉 찢어진 공룡이 일단 귀엽지 않았고, 쨍한 색감도 끌리지 않았다. 읽지 않았는데도 이야기는 그냥 아가들이 좋아하는 뻔한 이야기일 것 같았다.


시작은 아주 작은 알이다. 알에서 ‘안킬로사우루스’가 태어나면서 시작된다. 인터넷을 뒤적거리니 이 공룡은 초식공룡이란다. (딸만 둘이다 보니 공룡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아주 작은 ‘안킬로사우르스’는 ‘빠가닥’ 태어난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그런데 세상에 처음 만난 공룡이 '티라로사우르스'다. '티라노사우르스'가 ‘캬우웅‘ 나타나서 “고 녀석 맛있겠다.”하니 천진난만 아기 '안킬로사우루스'가 “아빠!”하며 달라붙는다. 아빠가 아니라고 하니, 내 이름을 알고 있으니 아빠라고 말해서 '티라노사우르스'를 황당하게 만든다.


“이, 이름을 불렀다고?”

“예. ‘고 녀석 맛있겠다’라고요. 내 이름이 ‘맛있겠다’지요?”라는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한다.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내가 이미 표지만 보고 대충 예상한 대로 부정을 느낀 티라노사우르스가 안킬로사우르스를 보호하고 자연에서 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티라노사우르스는  아기 안킬로사우르스가 자신과 함께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초식공룡의 무리 속으로 보내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짧은 내용이 유머와 감동으로 잔뜩 버무려져 있다. 강한 색감의 배경과 우중충한 색감의 ‘티라노사우르스’가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들처럼 펼쳐진다. 덩치만 작을 뿐인 아기 안킬로사우르스마저 별로 귀여워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그림책을 읽다 보면 티라노사우르스도 안킬로사우르스도 정말 사랑스럽고 귀여워 보이기 시작한다. 아빠를 사랑해서 풀을 싫어하는 아빠를 위해 먼 곳에서 빨간 열매를 따오는 아기 안킬로사우르스는 미워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빠를 따르고 사랑하는 아기는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티라노사우르스도 안킬로사우스를 따뜻하게 품어서 재우고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어느 친아빠와 비견해도 될 만큼 멋지다.  그런데 그런 멋진 일을 하는 티라노사우르스의 표정을 보면 육아 초보 멍청한 막내 삼촌 같다. 그러면서도 자신과 안킬로사우르스가 갈길이 다르다는 걸 알고 사랑하는 양아들을 떠나보내는 모습은 웬만한 감동 영화에 등장하는 잘생긴 배우보다 잘생겨 보인다. 아이를 키워본 적은 없어 약간은 엉터리지만 최선을 다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아이의 행복을 위한 선택을 하는 티라노사우르스는 어떤 외양을 가졌더라도 귀엽고 사랑스러웠을 것이다.


스토리에 힘이 무엇인지 여실히 느껴지는 책이었다. 나의 개인적인 심미안으로는 토토로도 고양이 버스도, 도라에몽도, 안킬로사우르스도, 티라노사우르스도 여전히 아주 잘생기거나 귀엽게 생긴 외모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 몸짓, 말투, 마음 씀씀이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내가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외모가  다르게 보인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코가 낮은 건 낮은 거고, 입술이 얇은 건 얇은 거고, 두상이 못생긴 건 못생긴 거다.  심미안적으로 아름답고 좋은 건 좋은 거다.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아끼고 사랑하게 되는 건 외모가 아니라 행동, 표정, 말투, 그리고 마음이라는 걸 일본의 무섭고 이상한 캐릭터들을 사랑하게 되면서 깨닫게 된다. 고 녀석의 안킬로사우르스와 티라노사우르스는 외모는 못생겼지만 서로를 아껴주는 마음이 아주 멋있는 친구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한없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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