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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Aug 07. 2021

알면 조금 더 넓어진다.

감기에 걸린 물고기:박정섭:사계절:2016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은 다소 엉뚱한 이야기가 나와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펼쳐놓는 그림책이다. 왜냐면(안녕달)은 어린이집에서 바지에 실수한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엄마에게 질문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면 엄마는 끊임없이 엉뚱한 대답을 해준다. 그러면서 때로는 바지가 눈물을 흘릴 수 있다고 말해준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엄마와 아이 뒤로 잘 빨아서 빨랫줄에 널려 있는 바지가 보인다. 이상한 엄마(백희나)는 출근한 엄마, 열이 나는 아이가 나오는 이야기이다. 아이는 아픈데 당장 퇴근할 수는 없고 대신하러 와 준 사람이 하늘에서 온 선녀님이다. 선녀님은 요리와 아이 돌보기는 영 서툴지만, 선녀님답게 멋진 요술로 아이를 돌보고 올라간다.

 

그밖에도 천국에 가기 전에 천국을 재미있게 상상하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다룬 이게 정말 천국일까, 거꾸로 매달려서 살아가는 시드에게 친구가 생기는 이야기인 거꾸로 시드, 목욕탕에서 할머니 선녀를 만나서 재미있게 노는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 장수탕 선녀님 같은 그림책을 좋아하는데 모두 약간 현실에서는 실제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 그 책들에도 다양한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을 텐데, 아이가 거기까지 마음에 들이며 읽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재미있어서 몇 번이고 읽는다. ‘감기 걸린 물고기’도 그런 맥락에서 여러 번 읽은 그림책이다. 일단 물고기가 감기에 걸린다는 설정 자체가 아이에겐 재미있는 상상의 세계인 듯하다. 그렇게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굶주린 커다란 물고기와 작은 물고기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이 묘하게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은 막연하게 했었던 것 같다. 


굶주린 커다란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싶지만 작은 물고기들은 그들끼리 무리 지어 있어 쉽게 접근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무리를 지어 있는 물고기들을 이간질하기 위해 작은 소문을 속삭인다. “얘들아~ 빨간 물고기가~ 감기에 걸렸대~” 처음엔 무슨 소리야 하고 무시하던 물고기들은 “감기 걸리면 열이 펄펄 나잖아. 그래서 빨간 거야! 그런 것도 몰랐어?”라고 말한다. 그러자 색색의 물고기들은 우왕좌왕한다. 물고기들이 소문을 듣고 나누는 대화는 혼란이 생겼을 때 우리가 우왕좌왕하는 모습과 많이 닮았다. 


"말도 안 돼. 이게 무슨 소리야. 나 몰라 몰라. 우리 가족이 위험해지겠어. 그러고 보니 몹시 빨개. 당장 내쫓지 않고 뭐 하는 거야! 나랑은 상관없어. 진짜? 감기가 뭐야? 나도 몰라. 나만 안 걸리면 되지 뭐. 너희 때문에 더 헷갈리잖아!"


그렇게 외치는 와중에 목소리 큰 물고기가 말한다. “우리한테 옮을지도 몰라. 같은 색끼리 뭉치자!” 빨간 물고기들이 “아니야…. 우린 감기 안 걸렸어. 원래부터 빨간색이었어!”라고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게 큰 물고기는 자꾸 소문을 내고 작은 물고기들은 자꾸 분열한다. 그렇게 자기들끼리 색을 나누느라 점점 잡아 먹히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다. 그렇게 모두 잡아 먹힌다. 그리고 물고기를 잔뜩 잡아먹은 큰 물고기는 잔뜩 배가 부른 채로 힘겹게 헤엄을 친다. 그러다 너무 배가 불러서 힘겨워하다가 잠시 쉬는 사이 해파리들의 간지럽힘에 크게 기침을 하게 된다. 그리고 배 속에 있는 물고기들이 탈출한다. 


이제껏 읽을 때는 재미있고, 소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믿지 않고 잘 판단해야겠다고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물고기들이 살아나는 행복한 마무리이구나! 정도로 생각하며 아이에게 읽어주었다. 


그림책 스토리보드 단계 및 계획하기 단계에서 점검하기

캐릭터의 특징이 드러나 있는가?

모든 장면에서 캐릭터의 새로운 행동이 드러나 있는가?

그림책 흐름이 단조롭지 않은가?

각 장면마다 그림책을 넘기고 싶은 마음이 들게 구성했는가?

불필요한 말이나 같은 어휘가 반복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림에서 표현한 것을 글에서 다시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림책 작가들과 함께 그리는 그림책 수업> 연수 중에서


패러디 그림책 창작 수업을 할 때 학생들이 스토리보드를 만들 때 교사가 점검해 주어야 할 사항들이다. 아이에게 자주 읽어주는 그림책 ‘감기 걸린 물고기’도 토론에 ‘가짜 뉴스’와 관련하여 독서 토론하기 좋은 책으로 강의에 등장했기에 ‘감기 걸린 물고기’ 책을 읽으며 위의 내용을 생각하며 다시 꼼꼼히 그림을 보았다. 그림책은 그림에서 표현한 것을 글에서 다시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동안 나는 주로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입장이기도 하고 글이 먼저 눈에 들어오니 그림책을 볼 때 그림보다는 글을 읽고 있었다. 이 책도 그렇게 읽고 있었다. 그렇게 읽을 때는 그냥 큰 물고기가 지쳐서 작은 물고기들을 토해 내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림을 위주로 글을 찬찬히 보니 큰 물고기의 뱃속에는 계속 점점이 다양한 색들이 보인다. 작은 물고기들은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변화하고 있었다. 그들은 쉽게 죽지 않고 힘을 내고 있었기에 큰 물고기가 힘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또 보였다. 돌 사이에 숨어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조개, 게, 해파리들. 그들은 큰 물고기가 무서워서 덜덜 떨고 있었고, 큰 물고기의 가짜 소문에 동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은 물고기들이 물고기의 뱃속에서 힘을 내어 그들의 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탈출에 도움을 주기 위해 나선다. 큰 물고기가 잠들어 있는 틈을 타 목숨을 걸고 코를 간지럽힌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막연하고 아름다운 책의 마무리가 아니었다. 알고 보니 이 책은 거짓 소문과 거대한 힘의 권력 앞에서 무지와 두려움으로 힘을 내지 못하던 민중이 깨달음과 두려움 극복의 서사를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으며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대단한 책이었다. 아이와 '감기에 걸린 물고기'를 다시 본다. 이번에는 글줄과 함께 그림에 등장하는 다양한 물고기들의 그림을 찾으며 읽어본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풍부한 표정의 바닷속 생물들의 모습을 아이에게 말하니 아이가 더욱 재미있어한다. 어떤 장면은 이미 알고 있었다며 엄마는 몰랐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날은 한참을 새롭게 발견한 생물들의 이야기를 만들며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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