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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Aug 06. 2021

기대가 끓어오르는 날의 풍경

선(이수지:비룡소:2017)

앞표지부터 뒤표지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연필의 선을 보여준다. 책의 앞면을 보면 제일 먼저 빨간 모자와 빨간 벙어리장갑을 쓴 아이가 보인다. 아이는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스케이트를 타는 길을 따라 선이 생기고 있다. 그리고 그 길은 '선'이라는 글자를 만든다. '선'이라는 글자의 꼬리는 또 다른 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가면 '이수지'라는 작가의 이름이 보인다. 이름에 걸린 줄을 따라 눈을 돌리면 연필이 보인다. 그래서 표지를 넓게 펼쳐보다. 뒤표지가 보이며 비로소 연필이 완성된다. 그리고 연필보다 조금 위쪽에 지우개와 지우개로 지워진 선이 보인다. 선을 지우고 남은 지우개 가루가 보이고 지우면서 생긴 연필의 흔적이 어지러이 번져있다.


이제 표지를 펼친다. 하얀 종이에 직사각형으로 그리고 연필과 지우개가 있다. 책날개에 작가의 말이 나온다. "모든 이야기는 선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다음 장을 펼치면 '어린 화가들에게- 이수지'라는 말이 나오고 그 말 사이에 표지에 등장했던 빨간 모자의 어린이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기울이고 눈을 감고, 스케이트를 신고 서있다. 그 아래로 어린이를 꼭 닮은 그림자가 보인다.  그리고 이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선'이라는 제목만 있고 글이 하나도 없는 그림책의 이야기가.


아이는 스케이트를 타고 유려하게 선을 그려나간다. 마치 아름다운 피겨스케이팅 장면을 보는 듯하다. 그러다가 아이는 넘어진다. 넘어지는 장면에서 그동안 그어졌던 선의 일부가 지워진다. 종이의 일부가 찢어진 듯 보인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는 구겨진 종이, 지우개 가루, 닳아버린 지우개, 멀리 떨어진 연필이 보인다. 아이의 그림이 실패했구나, 아름다운 선들이 구겨졌구나 마음이 철렁한다. 다시 다음 장을 펼치면 이제 선은 연필 자국이 아니다. 엉망으로 지워지고 구겨진 종이 위에 하얀 선들이 보인다. 여전히 앉아서 종이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아이. 그때 한 아이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미소를 머금고 아이에게 나타난다.


우리 집 아이들은 피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태권도 학원에서 피구를 하고 온 날은 무척 신나는 날이다. 자기가 얼마나 잘 피했는지, 언제까지 살아남았는지 이야기해준다. 얼굴엔 웃음이 가득이다. 그럴 때마다 참 신기했다. 피구가 저렇게 재미있을 것인가. 나는 늘 피구가 무서웠다. 둥글고 큰 공으로 하는 운동은 다 무서워했는데 그중에서 피구는 최고였다. 친구들 중에 공을 무서워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다. 학교 다닐 때 체육시간이 제일 싫었다고 서로 긍정하며 발야구와 피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더랬다.


그런데 지금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공을 피하고, 잡고 친구를 맞추는 피구라는 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 공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공이 날아와서 어떤 날은 공에 맞아서 아팠던 날도 있다. 넘어져서 아파서 울었다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 저녁에는 태권도 사범님에게 전화가 온다.

"어머님 피구를 하다가 넘어져서 울었는데 어떻게 집에서는 괜찮은가요?"

"아.. 그랬었나요? 아이가 전혀 티를 내지 않아서요."

"네. 저도 챙기고, 친구들이 같이 위로해주어서 눈물을 그치긴 했는데 걱정이 되어 전화드렸습니다."

"그랬군요. 집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등학교 시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중학교 때 피구를 한 기억은 난다. 평상시에는 공을 볼 수 없었고, 체육시간이 되면 체육선생님이 공을 하나 던져 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피구를 해야 했다. 규칙은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선생님이 무언가를 해 준 기억이 없다. 아이들과 뒤엉켜 팀을 정하고 나 때문에 내가 속한 팀이 질까 봐 전전긍긍하기만 했다.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는 공이 날아오기 전부터 무서워 심장이 뛰고 손이 차가워졌다. 내 상황이 그런 걸 아는  선생님없었다. 당연하게도 친구들도 위로해주지 않았다. 문득 그때와 지금의 피구가 다르구나 생각했다. 당시에는 이기고 지는 일이 더 중요했다. 지금도 이기고 지는 일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피구를 하는 그 순간 한 편이 된 친구들이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해지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승부보다는 함께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기에 위로하고 알려주고 보듬어 주는 마음이 생길 수 있는 것이리라.


마음에 안 들어 엉망으로 구겨진 종이 위로 나타난 친구는 멍하니 앉아 있는 아이에게 손을 내민다. 그리고 함께 스케이트를 탄다. 장을 넘기면 여러 명의 아이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지워지고 새롭게 등장한 여러 명의 친구들로 인해 어느새 그림은 완성된다.  빨간 모자를 쓴 아이가 처음에 그리려고 했던 그림은 어쩌면 이런 그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혼자서 멋들어지게 트리플 액셀을 완성하는 그림은 이제 아니다. 친구들과 아이는 웃으며 서로의 등을 잡고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두 그림이 모두 아름답다. 하얀 종이 위에 우아한 검은선도, 나무가 우거진 숲 속의 회색 연못에 줄줄이 스케이트를 타는 알록달록 모자 사이로 보이는 하얀 선도.


어린 시절 내가 처음 큰 공을 만났을 때, 더 잘하라는 채찍질 대신 격려해주는 선생님과 함께하는 발맞춰주는 친구가 있었다면 지금 나는 공을 무서워하지 않지 않았을까?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 잘하게 되는 지점에는 그런 것들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실패했다고 느낄 때 옆에서 함께 해주는 누군가가 있는 것. 그가 손잡아 주는 것. 그러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타고난 재능의 한계는 벗어날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공을 잘 다루는 선수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엄마처럼 공을 무서워서 피하는 어른으로 자라지는 않을 것이다. 언제나 공을 즐기고 공으로 하는 새로운 어떤 것을 탐험하는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런 것들이 모여  더 많은 것을 좋아하게 될 것이고,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해내는 힘도 생길 것이다.  어떤 것들은 예전과 하나도 바뀌지 않았지만, 어떤 것들은 이렇게나 많이 바뀌었다. 그런 지점을 발견하는 날이면 어떤 기대들이 몽글몽글 끓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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