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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느리 Jan 26. 2021

엄마가 되고 나서 내 안에 몬스터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이의 트라우마에 대하여

젊었을 때 나는 참 상냥한 처자였다. 젊음이 다 그렇지만 젊어서 참 예쁜, 미소가 참 곱던.


아이가 태어나 처음 엄마라는 타이틀을 걸고, 나는 이제 엄마다! 품위 있고 기품 있는 여자가 되리라 다짐했다. 


아이에게 상냥했고 사랑을 많이 주었다. 


내 아이 6개월 처음 감기에 걸려 코가 맹맹하고 침 삼킬 때 목이 쓰리는 그 고통을 작은 아기가 겪어내는 것을 보며 심장이 아파옴을 느꼈다.


그렇게 5년, 우리 아이는 한국 나이로 벌써 6살, 내 안에 몬스터가 불쑥불쑥 튀어나온 게 벌써 여러 번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95ovIJ3dsNk 

How childhood trauma affects health across a lifetime | Nadine Burke Harris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의한 스트레스가 인생 전반기에 걸쳐 질병의 확률을 높인다고 주장한 소아과 의사 해리스의 테드 강연은 아주 흥미롭게 다가왔다.


내가 한 번씩 소리 지르고 혼내는 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권리이자 정당하게 교육하는 것이라고만 착각했었는데, 두뇌와 신체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마음에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뭐 한 번 씩 혼내는 것이 큰 문제가 되겠어 싶지만, 또 우리 안에 몬스터들은 반복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님은 35년 이상을 잘 살아오셨지만 최근 이혼하셨다. 요즘 흔히 말하던 졸혼일 수도 있고, 남은 인생 내 갈길 간다 하며 좋게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우리 가족은 찢어지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는 이혼,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내 부모의 이혼은 가정이 있어 꽤 안정적으로 살아가던 나에게마저 커다란 상처가 되어버렸다.


'이제 다시는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을 수가 없겠구나.'


그 밥 한 끼가 뭐라고, 행복했던 가족 식사시간을 생각하며 눈물이 많이 흘렀다.


소세지 반찬이 없어 투정 부리던 나에게 핀잔을 주던 부모님, 밥에 치즈를 얹어먹는다고 이상하다고 흘겨보던 그 눈빛까지도 감사하고 소중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30대의 중후반을 달리고 있는 나도 나름은 산전수전을 겪으며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나의 마음은 상처에 취약했다. 


물건이 거의 다 빠져 온기가 없는 썰렁한 아빠 집을 보며, 쾌적했고 익숙했던 공간을 떠나 생존하려 분주한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나의 마음은 안타까움, 속상함, 원망, 슬픔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로만 가득 차고 있었다. 


이러다 병 걸리겠다, 스트레스받지 말아야지 다짐했지만 이미 내 가족과 시댁, 또 내 부모는 각각 챙겨야 하는 통에 나 자신은 케어 리스트에서 가장 뒤에 놓여있었다.




언젠가 유치원 하원 후 30분 가까이 대성통곡을 하던 아이를 안아주며 이유를 물었는데 유치원에서 받은 비타민을 잃어버려서 라는 답변이 돌아온 적이 있다.


"선생님한테 혼났어? 친구랑 싸웠어? 바지에 혹시 피피 했어? 어디 다쳤어?"


심각한 상황에 대한 상상에 나래를 펼치던 내가 피식 웃을 수밖에 없던 경험이었다. 


아, 비타민을 잃어버렸구나.


참 이리도 순수하고 여리구나. 내 아이의 마음에 상처라는 돌을 던지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불쑥불쑥 등장하는 엄마 몬스터는 어른들에 시선에선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자칫하면 마음을 파이게 하는 무섭고 어두운 경험일 테니 말이다. 




화요일과 금요일에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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