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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엄마 대학생] 대학에 대한 불만, 그리고 희망

내가 너무 커버린 건지, 마음이 닫혀버린 건지.

by 김느리



수업이 끝나고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하, 지친다 지쳐. 당 땡기네.'


최고의 교육기관에서 다양한 학문을 공부해야지 설레던 나는 없다. 오고 가는 지하철에서 많은 서적을 읽자 다짐했던 나는, 개뿔, 수업에는 불만 투성이고 지하철에선 쓸데없는 인터넷 기사나 클릭 거리고 있다.


대학, 수백만 원 내고 다시 다녔다면 솔직히 돈이 아까웠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그나마 공짜이니 참는다.


대학 수업에 대한 불만은, 학교 교수진들의 문제라기보단 내 문제 같다.


나는 토론하고 발표하고, 의견을 나누는,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수업을 꿈꿨지만, 아직 대한민국의 대학 수업 중 질문을 위해 손을 드는 학생은 없다.


문제는 나도 안 든다.


'아줌마가 혼자 열심히네' 란 소리 들을까 봐, 더 이상 튀고 싶지 않나 보다.


'왜 교수님은 3시간 동안 혼자 설명만 하실까.'


교수님들도 딱히 질문 시간을 주질 않고, 진도 나가기에 바쁘신 것 같다.


많은 것들이 불만투성이다. 아직 날씨는 쌀쌀한데 뒤통수를 때리는 에어컨 바람도 너무 춥고, 옆자리 젊은 여자가 1시간 내내 전화로 수다 떨고 있는 것도 거슬린다.


1분 차이로 지하철을 놓치고, 온 미간에 불만이 차 올랐다.


사람은 다 때가 있나 보다. 공부할 때, 대학 다닐 때.


그리고 나보다 10년 15년은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나 혼자 교수님의 설명을 필기하지 않고, 꼿꼿했던 하루를 상기하며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너 이럴 거면 왜 대학 다시 왔니?'



이 대학에 편입하고 싶어 준비했을 수많은 지원자들이 있었겠지. 남들보다는 뛰어난 영어실력, 2차 면접은 말빨로 뚫고 단 한자리를 차지한 나였다.


취업이나 학점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히 배우고 싶어 결정한 대학 편입. 늦은 나이에 다시 주어진 소중한 공부의 기회.


나는 까불지 말고 겸손하게 열심히 공부해야 만한다. 하지만 내 마음속은 건방을 떨고 있다.


'대학원까지 나와서 주입식 학사 수업 들으니 지루하네.'


'교육학, 교수법을 공부한 나였기에, 왜 교수님들이 수업을 더 흥미롭게 이끌지 못하실까 참 답답하네.'


이런 못된 마음이 가득, 모든 것을 내 기준에 맞추고 불평불만만 내뱉고 있다. 진짜 내가 경멸하던 꼰대가 되어가는 것 같다. 나 정말 어떡하냐고ㅜㅜ


오늘 학교에 와서 출석 부를 때 답한 "네~" 두 번, 이삭토스트에서 "햄 스페셜 토스트 하나 주세요." 한 게 내가 오늘 학교에서 말한 것의 전부였다.





아직은 암흑 같은 지루한 학교생활 속 유일한 희망인 교환학생 to 크로아티아!



수도인 자그레브에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갔다가, 내가 머물 자다르까지 가는 첫 일정을 세우며. 아이 보낼 유치원을 구글 지도를 통해 찾아 이메일을 보내며, 하나씩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교환학생 발표 직후 아빠에게,


"아빠. 나 교환학생 가는데 아기랑 엄마도 같이 모시고 가려고요."


조심스럽게 통보했고, 쿨하고 생각이 트인 울 아빠는,


"우리 딸! 멋진 인생을 산다! 하하하. 네 엄마도 일정 내내 함께 하며, 아기도 돌봐주고, 너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지. 하하하."


하셨었다.


옛날부터 울 아빠는 한결같다. 공부 공부 공부.


취업할 것도 아니고, 학점이 중요한 것도 아닌데, 아빠는 여전히 나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고, 엄마의 동행을 허락(?)해주셨다.


대학에서 강의하던 딸이 다시 학사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도,


"그럼! 인간은 평생 배워야 하는 거다! 멋지다. 우리 딸!"


하며, 한 학기 학비인 500만 원을 주려하셨다.


"학비 안 들어요. 아빠"


아내와, 딸, 손주까지 모두 떠나고, 나이 들어 은퇴한 아빠가, 혼자 뭐 해 드실까, 무료하진 않으실까 걱정이 앞선다.


이기적이지만, 떠날 수 있어서 설레는 나다.




그래. 떠나는 건 떠나는 거고, 지금 당장 내가 듣는 수업들에 마음을 열고, 새로운 스타일과 지식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먼저가 되어야 할 것 같다.


6개월 뒤 유럽의 꿈이 펼쳐져있다 해도 현재가 시궁창이면 아무 의미 없으니!


조금은 더 마음을 열고, 내가 궁금한 거 납득이 안 가는 거 있으면 손을 들어 질문하는 용기를 가져보자!


솔직히 당장 내일 수업에서, 내가 손을 들거나 목소리를 높여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이렇게 불만만 가지고 있는다면 내 젊음과 이 시간에 대한 무례일 것이다.


제발, 마음을 좀 열어보자. 신입생의 마음으로, 배움의 기쁨을 제발 좀 가져보자.




<위에까지 세 달 전에 써놓아 작가의 서랍에 담겨있던 글이고 아래는 현재이다.>


오늘까지 기말고사가 다 끝나고, 올해 다시는 학교에 갈 일이 없다. 이렇게 대학 공부에 대해 불평불만이 가득한 글을 싸질러놓고, 감히 발행하지는 못했었던 나의 현재는 뭐 비슷한 것 같다. 경험과 지식, 약간의 즐거움을 준 수업도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하고 무료하고 의미 없게 느껴지는 수업도 있었다.


하지만 강의실 앞자리에 앉아 눈을 초롱초롱 뜨고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며, 내가 56점을 받은 어느 과목 중간고사에서 97.5점을 받았다며 뿌듯해하는 한 여학생의 얼굴을 보며, 나는 재미없다고 딴짓을 하던 교수님께서 틀어주신 어느 긴 영상을 진짜 집중해서 보고 있던 한 남학생의 눈을 보며 나의 건방짐에 대한 반성을 하기도 했다.


학교 자체보다, 오고 갈 때 2시간씩 총 4시간을 지하철과 버스에서 보내며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다음 학기에 나는, 크로아티아에 가 있겠지. 지금도 그다지 공부는 열심히 안 하는 농땡이 아줌마 대학생으로, 엄마와 아이와 함께 갈 여행지와 체험거리에 더 관심이 많은 나지만, 현지에서는 좀 더 다양한 스타일의 수업을 접해보고 싶다. 사실 미국에서 공부했을 때의 수업들도 지루해 죽겠는 것은 마찬가지였지. 휴.


이번 학기 모든 과정이 끝났음을, 오늘 저녁 와인 한잔 하며 자축해야겠다. 잔뜩 빌려놓은 크로아티아 여행서적들에 파묻혀 당분간 지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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