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해외 한 달 살기를 준비 중이라면

해외 정착 5가지 팁

by 김느리


4살 아이, 작년 큰 수술을 하신 친정엄마와 크로아티아에서 5개월을 살겠다 준비할 무렵부터, 우리는 이 여정이 달콤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도 밥먹듯이 했고, 힘들 거야 타지 생활, 하며 익숙하지 않은 남의 나라에 정착하고 살아가는 것이 힘들 것이라고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보다 멋질 크로아티아에 대한 환상에 들떠 있었던 것 같다.


아름다운 자다르의 석양


하지만, 정작 와서 보니, 모든 힘듦과 시행착오, 개고생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한국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일들이 이 곳에 오니 성공시켜야 하는 미션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힘들어하는 나에게 신랑이,


"뭐가 그렇게 힘이 드는 건데?"


묻는데,


"모든 게..."


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해외살이를 준비 중인 모두에게 타지에 정착할 중요한 다섯 가지의 팁을 전하려 한다.




1. 숙소는 당연히 별로일 것이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수십 군데의 숙소를 비교했고, 모든 후기도 꼼꼼하게 읽고, 구글 지도를 통해 근처 거리뷰도 다 파악을 했다. 이 정도면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결정한 집이었다. 렌트는 한 달에 700유로. 거의 백만 원에 육박하고, 아이와 함께할 거라는 사실을 강조했고, 가족이 머물기 완벽하다는 답변을 받은 그 집이었는데.


우리를 맞이한 집은, 좁은 레스토랑과 바가 모여있어 사람들이 빽빽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낡은 아파트의 꼭대기층이었다. 주인은 3층이라 했지만, 1층이 1층이 아닌 Ground floor이므로 엄밀히 따지면 4층에 위치한 집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없고, 음식 냄새, 바에서 트는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귀를 때렸다.


그리고 집은 깨끗하지 못했다. 소파 밑에는 귀신 먼지들이 굴러다니고, 카펫은 한 5년은 안 빨은 듯했다.


긴 비행에 지친 가족들. 엄마는 이 곳은 못 살집이라고 이야기했고, 그 말이 날카롭게 내 가슴에 꽂혔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알아본 집인데.. 엄마가 집에 대해 퍼붓는 비난이 꼭 나를 향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Whatsup을 통해 집주인에게 청소를 요구했다

'못 산다고 하고 계약을 파기할까? 이미 한 달치 내놓은 돈은? 한 달만 살고 집을 옮길까?'


별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래도 몇 날 며칠을 알아본 결과 고른 이 집, 당장 더 나은 집을 찾기도 힘들 것 같아서 집주인에게 일단 청소를 요구했다.


다행히 집주인은 당장 다음 날, 전문 청소원 2명을 보내온 집을 깨끗하게 청소해주었고, 조금은 사람 살만한 집이 되었다.


내가 머물 숙소에 대한 환상은 버려야 한다. 한국의 집 보다 더럽고 불편할 것이며 덥거나 추울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브랜드의 가스레인지, 세탁기도 제대로 쓸 수 있게 되기까지 수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집은 가꾸기 나름! 우리는 저렴한 청소도구 하나 사서 바닥을 매일 닦고, 우리가 살기 편한 대로 가구를 배치해서 열흘이 지난 지금은 나름 쾌적하게 지내고 있다.


숙소에 대한 환상을 버리되, 인간인지라 3일 정도면 환경에 적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집이 너무 더럽다면 집주인에게 청소는 요구할 것! 나 들어오기 전에 깨끗하게 해 놓으라고 강조할 필요도 있다.

크로아티아, 자다르


2. 절대로 언어가 잘 안 되는 가족을 혼자 두지 마라


나 혼자였다면 조금 더 편했을 이 여정. 어린아이와 몸이 아파 약한 엄마와 함께이니 신경 쓸 것이 몇 배는 많았다.


그래서인지, 어떤 일이든 빨리 처리하고자


"마트 먼저 들어가 있어!"


"나 혼자 빨리 다녀올게. 여기 있어!"


라는 말을 참 많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오늘 일이 터졌다.


카페에서 커피 마신 후 계산을 하려는데 웨이터가 설거지를 하느라 우리 쪽을 절대 보지 않고 계속 바빴다.


"엄마, 션이랑 마트 먼저 들어가 있어. 계산만 하고 바로 갈게."


난 뭐가 그리 급해서 그들을 먼저 보낸 것일까?


10분 정도 후 계산을 하고 마트에 가니 엄마와 아들이 없었다. 전화를 하려 하니, 엄마 핸드폰이 내 가방 속에 있다.


갑자기 가슴이 철렁했다.


온 마트를 "션~" 부르면서 다녔고 나는 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혹시 다른 가게에 잘못 들어갔나 싶어 밖으로 나왔더니 이 슈퍼 말고, 옆에 다른 큰 가게에 들어가 있는 엄마와 아이를 발견했다!


"빨리 나와! 마트 가라니까 왜 거기 들어가 있어!!"


엄마와 아들이 출구가 아닌 입구 쪽으로 나가려 하니 알람이 울리며 직원이 제지했고, 엄마와 아이는 크게 당황했다.


내가 양해를 구하고 가족들을 데리고 나오는데 놀란 아이가 계속 "왜? 왜 그래?" 한다.


언어가 안 통하면 위축이 된다. 이방인으로써 타지에 덩그러니 놓이면 작아지고, 눈치도 보게 된다. 그런 가족들을 절대 혼자 두면 안된다. 혹시 어떤 일을 부탁할 때는 정말 제대로 정확히 디렉션을 줘야만 한다. 그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다시는 혼자 다녀올게! 먼저 가있어! 따위의 말은 안 할 것이다.


길이 엇갈려 당황했을 내 가족들


3. 상비약은 넉넉하게 챙겨야 한다


큰 수술로 인해 많이 약해진 엄마는, 자다르에 도착한 직후부터 아프셨다.


우리 아들도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콧물과 기침을 하고, 체력 하나 짱짱하던 나도 감기에 배탈로 골골이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는 약이 있었다!!


크로아티아로 출국 전, 근처 병원에서 감기약, 배탈약, 역류성 식도염약, 해열제, 진통제, 항생제등을 넉넉하게 15 일정 도치 처방받아왔는데 이 곳에 오자마자 정말 유용하게 복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6만 원씩이나 나온 약값에 기겁해서, "뭐 아프겠어? 돈 아깝네" 했는데 진짜 미련한 생각이었다.


약이 없었으면 어땠을지 상상도 하기 싫다. 배탈로 고생하던 나는 약 먹고 싹 나았고, 감기약은 계속 먹고는 있는데 한 일주일은 더 앓겠지.


유럽은 보통 병원에 가더라도 약을 잘 주지 않는다. 따끈한 차 마시라거나 잘 쉬라는 게 처방일 때가 많다. 그렇게 살아온 그들에게는 익숙한 방법이, 그렇게 안 살아온 우리들에겐 당황스러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부디 이번 아픔이 잘 지나가고, 다시 가족들 아플 일이 없길 기도해본다.


사랑하는 엄마와 아들


4. 현지인이 아니라 관광객으로 살아야 한다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이곳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지도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이런 게 있고 저런 게 있네 인지하긴 했지만 동행자인 엄마와는 공유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크로아티아 오면 현지인처럼 살아야 지란 생각에 맛집이나 편의시설 같은 것에 대한 연구도 소홀했었다.


'살다가 맛집 찾아야지, 살면서 익숙해지고 알아가야지!'


이 생각은 정말이지 미련한 생각이었다.


물론, 20대 홀로 여행객이나, 남편과 함께라면, 의지할 사람이 있다면, 현지인처럼 살기 위해 부딪혀보는 것도 좋지만, 아이와 엄마를 책임져야 하는 내가 하려니 이것은 맨땅에 헤딩이자 끊임없는 시행착오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외식하는 곳마다 실패했고, 한 끼 식비는 4만 원씩 나왔다. 플라스틱 재활용하는 방법을 몰라 4군데의 다른 마트를 다니다, 결국 플라스틱을 수거하는 마트를 알게 되었다.


길을 잃기 일수였고, 짧은 길을 놔두고 몇 배는 긴 길로 돌아다녔다.


아이 city train 태우려고 작정하고 나왔는데 운행하지 않는 시간이었고, 처음 커피 한잔 사 마시는데도 한 시간이 걸렸다. 쿠나 환전을 안 해서 유로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5천 원 수수료를 내고 비싸게 돈을 뽑았다. 2분 거리에 수수료 없는 은행 ATM도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너무 준비를 안 했던 것이다. 특히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여정에서 현지에서 부딪혀보자 하는 자세는 몇 배로 고생하게 되는 지름길이다.


많이 연구하고 알아보고 와도 겪어야만 하는 시행착오이다.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아니 백까지 확실히 알아보고 와야 내 몸과 마음이 편하다.


자다르의 하늘


5. 가족의 힘듦을 이해해야 한다


처음 엄마의 불평이 듣기 싫었다. 크로아티아는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라는, 가전제품도 불편하다는, 담배연기가 너무 싫다는, 집이 너무 높아 계단이 힘들다는 그런 부정적인 말이 듣기 싫었었다.


현지 도착하자마자 하는 엄마 기침소리도 듣기 싫었던 것 같고. 참, 이기적이고 못난 딸이다.


"엄마 힘들고 싫으면 먼저 한국 돌아가."


못난 말을 뱉어버렸다.


엄마는 단지 이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나밖에 없었던 것인데.


말도 안 통하고, 음식도 안 맞는, 불편한 곳에서 살기 시작하면 하루 이틀째는 그냥 눈물이 난다. 힘들고 지치고, 한국과 내 편안한 집이 간절하다.


그때가 서로에게 짜증내고 투정을 심하게 부리게 되는 시기이다! 진짜 힘들기 때문에.


그런데 그 며칠을 똘똘 뭉쳐 잘 이겨내야 한다! 한 4~5일이 넘어가고 일주일 정도 되면 나름 적응하고 환경에 조금씩이나마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살아갈 내내 고난이 있을 것이다. 힘겨움과 답답함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처음만큼은 아닐 것이다.


그 초반, 가장 지치고 힘든 그 순간에 서로를 위로하며, 서로의 투정과 푸념도 받아줄 수 있어야 한다.


그 시기를 잘 이겨내면, 조금은 편해지게 되니까.


자기 전,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는 할머니


자기 전,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눈이 똥그래지는 아이. 엄마는 로렐라이, 성냥팔이 소녀와 같은 옛이야기들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이 아름다운 모습은 내가 죽는 순간까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행복한데, 왜 눈물이 나는 걸까?




크로아티아 자다르에 온 지 열흘째이다.


우리 온 가족은 다들 감기에 걸려 있고, 아직은 이곳 생활이 불편하다. 그래도 처음 3일에 비하면 진짜 많이 좋아졌다.


집도 아늑하고, 밖에 바의 음악소리도 크게 거슬리지 않게 되었다. 사실, 아직도 거슬리긴 한다..


아직 겪어나가야 할 시행착오들이 많을 테고, 힘들고 두렵고 당황스러운 일들도 많겠지만, 서로에게 의지하며 잘 이겨내야 할 것이다.


짜증 내지 말고, 여유를 찾아야 한다. 한국에서 벗어나 크로아티아까지 와서 바쁠 이유 전혀 없으니!


여유를 갖자. 그리고 잘 한 번 살아보자!


사랑하는 내 가족,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