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이런 집에 산다

에어비앤비 숙소에 전기가 나갔다

by 김느리


크로아티아는 동화 같은 곳이다.


우리가 지내는 자다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하는 크로아티아의 울창한 숲, 초록빛 호수와는 거리가 먼 오래된 역사적인 지역이지만, 그래도 이 곳도 역시 아름답고, 여유로우며, 그림 같은 곳이다.

우리집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햇살 가득한 주방
넓은 거실

자다르는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단다. 거리나 공원을 걷다 보면 수백 년은 된듯한 아름드리나무들이 서 있고, 오래된 돌덩이, 탑, 조각들, 수백 년 전에 사용한 우물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이들은 오래됨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하다.


1965년부터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니, 참 귀엽다.

자다르에 도착한 첫날, 긴 비행에 지쳐 녹초가 된 친정엄마와, 내 품에서 깊이 잠든 아이를 안고 오래된 건물 4층까지 올라오는데 참 암담했다.


한국식 아파트의 편리함과 밝음은 없었고, 어둡고 좁은 계단을 돌아 낡은 열쇠로 문을 열었다.


나름 수년 전에 리모델링을 해서 깔끔해 보이긴 했지만, 처음 살아보는 오래된 유럽의 집이 당혹스러웠다.


'형광등도 없네, 이 카펫은 10년은 안 빤 것 같고.'


나보다 더 날카로운 눈초리의 엄마에게 이 집은 상상을 초월하는 기대 이하의 집이었을 것이다.


겨우 불편했던 잠을 곤히 자고 다음 날 아침, 이곳의 창문을 열어보았다.

유럽의 창

한국의 깔끔한 슬라이딩 샷시가 그리워지는, 낡은 창. 당연히 방음도 안 되는 이 창은 삐걱거리며 겨우 열렸다.

집에서 바라본 밖

이렇게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레스토랑과 카페, 펍들이 모여 있었고, 크로아티아의 우리 집은 1800년대 지어진 건물에 3층! 사실 우리식으로 따지면 4층이다. 유럽은 1층을 0층 혹은 바닥층으로 부르니.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 집에, 생수 6병과 각종 식재료를 들고 올라가려면 지옥이 따로 없었다.




한 번은 집에 전기가 나간 적이 있다. 크로아티아가 아니라 벨기에에 살고 있는 집주인 총각은 몇 달째 전기세가 밀려있던 상황이었고, 어느 날 갑자기 한쪽 벽의 전기가 안 들어오더니, 우리가 4박 5일 체코 프라하 여행을 다녀와서 보니 모든 전기가 다 끊겨있었다.


전기가 나간 집

지친 비행에, 집에서 쉬고 싶었을 내 가족들의 바람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아이가 캠핑장비 가게에 들어가서 죽어도 안 나가겠다고 우겨서, 억지로 제일 싼 손전등 하나 사서 나왔는데 그게 우리의 유일한 빛이었다.


깜깜한 와중에 아이는 화장실이 급했고, 우리 모두는 패닉이 되었다. 핸드폰 불빛으로, 구박받던 손전등 빛으로 겨우 겨우 정신을 붙잡았다.


두꺼비집도 체크하고, 4층 계단을 내려가, 아래 레스토랑 웨이터에게 혹시 이 건물에 문제 있는지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Of course not!"


밝은 조명 아래 여유롭게 식사하는 사람들, 우리 아랫집들의 창문에선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Oh, my god.'


왜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일이 착착 진행이 안 되는 거지? 답답했고, 눈물이 나오려 했다.


잔뜩 당황했을 엄마와 아이에게 미안했다. 이 모든 게 다 내 탓인 것 같았다.


그때, 레스토랑에서 맥주 마시던 한 할아버지가 자기가 근처 호스텔에서 일하는데 방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어둠 속에서 어떻게 자지 고민하던 나에게 반짝 다가온 새로운 옵션!


집에서 1분 거리에 호스텔은 깔끔했고, 나는 즉시 방 값을 냈다.


"엄마, 션! 가자! 방 구했어!"


어리둥절한 가족들에게 짐을 챙기라 했다. 당황하고 분주한 엄마.


"그냥 대충 아무거나 챙겨서 가자!"


나는 또 짜증 가득한 리더였고, 가족들을 재촉했다.


"그래도 있을 건 있어야지."


"내가 다시 집 와서 짐 챙겨 올게. 제발 그냥 가자! 지금은!!"


이 어둠 속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던 나는 아이 손을 꼭 잡고 어두컴컴한 4층 계단을 내려갔고, 가족들을 호스텔에 잘 모셔다 놓고는 집으로 뛰어 올라가 급하게 짐을 챙겼다.


'엄마 필수품 전기매트, 양치할 거, 아이 속옷, 물.'


신발을 신고 침실까지 들어가 급하게 이것저것 쇼핑백에 담아내는데, 그 순간 찢어져 버린 쇼핑백에 나는 깍! 하고 짜증 섞인 소리를 질러버렸다.


'후, 제발 릴랙스 하자. Relax. Calm down.'


다시 정신 차리고, 짐을 챙겨 숙소로 돌아갔고, 결국 다시 집에 와야 했다. 핸드폰 충전기를 안 챙겨서.


곤히 잠든 아이


전기라는 게 진짜 고맙고 소중한 거구나. 새삼 느껴졌다.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지친 나를 엄마가 안쓰러워하는 게 싫었다.


"나는 괜찮으니 그냥 좀 편히 쉬어! 나는 이런 거 아무렇지도 않아!"


엄마들은 왜 이리 걱정을 하는지. 내 몸이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마음이 편해야 그게 천국이지.


아이가 겨우 잠들고, 엄마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고생했지? 우리 불쌍한 내 엄마.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냐."


엄마는 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웃음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아냐. 재미있지! 션도 얼마나 재미있어했는데. 왜 애들은 정전되는 게 얼마나 재미있겠어! 자기 손전등도 써보고, 깜깜하니, 애는 재미있지. 너도 어릴 때 정전되면 얼마나 좋아했다고!"


엄마의 말에, 어둠 속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좁은 집, 불이 나간 집 거실에서 양초를 찾던. 가족들이 불 앞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당시 어렸던 나에겐 정전이 싫고 짜증 나는 일이라기보다는 촛불을 켤 수 있는, 가족과 모여 앉아있을 수 있는 즐거운 일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버린 나에게, 계획적이고 완벽하려는 나에게 정전은 끔찍하고, 내 가족을 힘들게 하는 일일 뿐이었다.


'또 여유를 못 찾고, 현재를 못 즐기고 있네.'


주룩 눈물이 흐르는 순간 잠이 들었나 보다. 너무 고단해서.


전기는 집주인이 전기세를 내지 않아서였고, 전기회사는 그 후로 이틀 더 전기를 안 넣어주었다. 밀린 비용을 다 지불했지만 전화통화가 안 되었고, 전화는 되었지만 일처리가 느린 유럽은 우리를 하루 더 다른 숙소에서 머물게 했다.


정전 후 두번째 숙소


이미 한 번의 패닉이 있던 후라, 우리는 침착했고 맥주까지 한잔 하며 서로를 도닥였다. 그날 밤, 맥주 한 병 더 사러 아이와 함께 밖에 나가 짧은 데이트도 즐겼다.


늦은 저녁 데이트

에어비앤비 숙소는 깔끔하고 예뻤다. 그런데 내 집이 아니니 참 불편하더라.


그래도 한 달을 살았다고, 크로아티아 우리 집이 편하고 그리웠다.


다음 날 오후 늦게까지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하던 전기는 갑자기 반짝 들어왔고, 나는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


마음고생한 집주인과 우리 가족

전기가 안 들어와 먼 타지에서 신경 썼을 집주인도 미안해했고, 우리 모두 돌아온 전기에 대해 기뻐했다. 타지에 사는 그는 장기 체류하는 우리에게 파격적인 할인을 해주었고. 우리는 한 달에 93만 원에 이 넓은 방 3개짜리 집을 빌려 살고 있다. 이번 정전사태로 집주인은 우리 두 곳의 숙소비의 50%씩을 지불해주었다.


사랑하는 햇살과 전기
밀린 빨래도 하고




유럽의 집은 어둡고 불편하지만 그래도 정겹다. 내가 언제 이런 집에 다시 살아볼까 싶어 이 곳에서의 하루하루를 더 즐기려 한다.


옛날 식으로 열리는 낡은 창문, 형광등 없이 조명이 은은하게 밝히는 아늑함.

크로아티아 우리집 거실


유럽의 모든 것은 시행착오였다. 처음 빨래를 돌릴 때도, 세탁기 내부 뚜껑 닫지를 않아 한참 못 썼다.

며칠동안 쩔쩔맨 이태리 세탁기


가스레인지를 능숙하게 쓰기까지도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환기구는 못쓰고 있는 중이다.


우리집 부얶

그래도 한 달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곳에서 밥도 지어먹으며 잘 살아가고 있다.

엄마표 제육볶음

전에 많은 인기를 끌었던 삼시세끼라는 프로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먼 유럽의 크로아티아까지 와 살아보니, 인간이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다 삼시세끼 뭐 먹지 하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그 실행으로 끝나는 것 같다 느꼈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의 욕실 겸 화장실
한 달 사이에 부쩍 큰 아들

타지에서의 삶은 시행착오의 연속이고 나와 우리 가족을 개고생 하게 하지만, 다른 말로 하면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하고 우리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준다.


우리 크로아티아에서 살 때 전기가 나가 가지고, 내가 4층 계단을 수십 번을 오르락 내리고 등의 이야기를 우리 가족은 평생 하겠지.


이 긴 여정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 편리하고 밝은 집 tv 앞에 앉아 있으면 가끔 생각날 것 같다.


조금은 불편해도 아날로그의 감성이 있는, 조명이 은은하던, 다시는 살아볼 수 없을 평화로운 크로아티아의 집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