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얼 제안하든 싫어했고, 청개구리처럼 행동할 때가 많았다. 나는 유아 사춘기까지 검색해볼 정도로 아이의 말썽에 예민해졌다.
'혹시 크로아티아 유치원에서 적응이 힘들어서 아이가 스트레스가 쌓였나?'
아직 38개월 어린아이를 괜히 고생시키나 자책하다가도, 말도 안 듣고 반항하는 아이의 행동에 눈을 부릅뜨고, 아이를 무시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석양을 보러 나가서, 쌀쌀한 바람 앞에 재킷을 안 입겠다는 아이에게
"너 그럼 감기 걸려서 아이스크림 못 먹어!"
하며 미운 말을 내뱉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투정쟁이 션
사실, 이 곳에 도착한 후로 나는 예민한 짜증 투성이었다.
가족들 챙긴다는 쓸데없는 책임감에 그들을 오히려 부담스럽게 했다. 저녁 7시까지 수업이 있는 날, 내가 없이 잘 지낼까 오후 내내 걱정이 되어, 수시로 안부를 확인하고 수업 중에도 안절부절못했다.'우린 잘 있어'라는 카톡에도 계속 엄마에게 잔소리하듯 해야 할 것에 대해 지시했던 것 같다.
잔소리꾼인 나
가족들을 내가 돌봐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었는지 두통약까지 먹는다며 내 수고에 대해 생색을 냈던 것 같기도 하다.
크로아티아 유치원은 오전 10시부터 12시 정도까지 근처 공원에서 야외활동을 하는데, 우연히 산책하다 우리 유치원 아이들을 보았고, 내 아들이 나무 아래에 인형을 안고 혼자 서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혼자 서 있다가 벤치로 향하는 아이
혹시 눈이 마주치지는 않을까, 어정쩡하게 나무 뒤에 숨어서 아이를 보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우리 아이, 혼자 서 있네. 선생님은 잘 논다던데.'
내가 애기냐고, 인형 데려가지 말라고 아침부터 구박했는데, 엄마가 뺏으려던 인형을 꼭 안고는, 그렇게 나무 아래 혼자 서 있었다.
눈물이 주룩 흘렀다.
이 먼 타지까지 와서, 울 애기가 고생하는구나.
아기지만 사회를 배워야 한다고, 강해져야 한다고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아이는 오늘도 집에 와서 투정을 부렸고, 저녁 산책을 나가서도 꺅 소리를 지르며 스트레스를 분출하려는 것 같았다.
"션! 이리 와. 우리 밤바다에 소리 지르며, 힘든 것들 다 가라고 하자!"
우리는 "나는 이시안이다!" "나쁜 것들 다 Bye다!" "나는 Happy Baby다!" 크게 소리를 질렀다.
'좀 풀렸을까?'
자다르의 밤 바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아이에게 콧물 나서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을 했고, 원하는 대로 안돼서 짜증이 잔뜩 난 아이 손을 거칠게 잡아끌고는 집에 돌아왔다.거리에서 징징댄다고 창피하지 않냐며 면박까지 줘버렸다.
"얼른 옷 벗어. 씻게."
차가운 내 말투.
우리는 함께 씻었고 아이는 내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말을 내뱉었다.
"나 Korea 집 돌아갈래."
당황스러웠지만,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어? 왜? 크로아티아 싫어?"
"응. 싫어. 코리아 돌아갈래."
"엄마랑 할머니는 학교 때문에 여기 더 있어야 해서, 션만 가야 해. 그래도 괜찮아?"
"혼자? 혼자 비행기 타고?"
"아니, 아빠가 와서 같이 비행기 타고 데려가라고 할게. 근데, 그럼 코리아에서 엄마는 못 봐."
"엄마 보고 싶을 텐데."
"어쩔 수 없지! 엄마는 크로아티아 더 있어야 하니까."
"알았어. 아빠랑 있을게."
엄마만 최고라 하던 아들이, 내가 없더라도 한국에 돌아간다고 했다.
갑자기 가슴이 아파오며, 당황스러웠다.
미안해졌다. 이 작은 아이가 타지에 나와서 고생하고 힘든데, 엄마라는 나는 구박만 했던 것이다.한국에서는 항상 아이 편이었던 나.
아빠가 없는 이 곳에서, 아이 버릇 잡는다며, 안 되는 건 안된다고 가르친다며 엄격하게 대했다. 항상 자기편이었던 엄마는 크로아티아에서 악역을 도맡은 존재였던 것이다.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우리는 밤에 몇 시간 동안 함께 놀았다. 가위로 종이 자르기도 하고, 스티커 놀이도 하고, 책도 많이 읽었다. 그리고는 아이가 좋아하던 이야기도 오랜만에 많이 들려주었다.
"션이 아가였을 때, 엄마 뱃속에 살 때 이름이 '바다'였는데, 아 글쎄 엄마가 우유를 마시는데 갑자기 발로 빵! 차서 엄마가 우유를 쏟았다니깐~~"
웃겨서 자지러지는 아이.
자신이 뱃속에 살았고, 발을 뻥 찼다는 것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는지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해달라고 했다.
10시가 넘어가는 시간까지 잠들지 않는 아이를 위해 내가 아이를 품었을 때 매일 밤 듣던 잔잔한 피아노 음악을 틀어주었다.
"When you were in mommy's, we always listened to this music. Everyday and every night.
션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우리는 매일 낮 매일 밤, 이 음악을 들었었어."
뱃속에서 들었던 음악을 기억하는지, 아이는 가만히 음악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You used to be very little and lived in mommy's tummy. But now you are a big baby. And later, as time goes by, you will grow bigger and taller and, one day, you will be much taller than mommy.
션은 아주 작았고, 엄마 뱃속에서 살았었지. 근데 지금은 큰 아기가 되었잖아. 훗날에, 시간이 흐르면, 션은 키가 큰 어른이 될 거고, 언젠가는 엄마보다 훨씬 더 커질 거야.
One day, you will meet a beautiful girl who you would love more than mom, and you will marry her. Then, you need to say 'bye' to mommy and daddy and live with her.And you will have a little baby like your daddy and mommy did. That's a life.
언젠가, 아주 예쁜 아가씨를 만날 거야. 엄마보다 더 많이 사랑하게 될 거고. 그리고는 결혼도 하겠지. 그럼 엄마 아빠에겐 바이하고 그 예쁜 아가씨랑 살게 될 거야. 그리고는 엄마 아빠가 그랬듯 아이도 갖게 되겠지. 그게 인생이니까.
So now, when you are little and we are together, we need to love each other.
그래서 지금, 션이 아직 작고 우리가 함께일 때, 우리는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단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아이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간다는 것, 세월이 흘러,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가슴으로 느껴졌는지, 아이는 울먹였다.
"나 marry 하기 싫어. 엄마를 제일 사랑해."
뱃속에서 들었던 음악. 하나의 몸에서 두 개의 심장이 뛰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던 때, 우리가 함께 들어온 그 음악은 우리의 마음을 더 말랑하게 했고 우리를 더 가까워지게 했다.
훗 날, 언젠가 어른이 되어 내 품을 떠날 아이를 생각하니, 나도 가슴 한쪽이 아려오며 눈물이 났다.
"You don't have to. You can live with mommy and daddy forever.
결혼 안 해도 돼요. 엄마 아빠랑 평생 같이 살아도 돼요."
우리는 서로 꼭 안았고, 나는 눈물을 삼키며 아이를 사랑한다고 계속 속삭여주었다.
엄마가 나에게 너무 예민하다고, 이 먼 크로아티아까지 와서 날카롭게 굴지 말라고 했을 때, 안 그러겠다며 마음을 잡았지만 나는 여전히 날이 서 있었다.
가족들을 챙겨야 한다는 핑계로.
그런데 이 어린아이의 진심을 듣고 깊이 반성했다. 완벽하려 했기에 날카로웠고, 아이를 위한다며 안된다는 말만 많이 하던 엄마, 그런 엄마가 미워 익숙한 한국에 가고 싶다는 아이의 말.
나는 진심으로, 온 마음으로 내 미련함에 대해 뉘우쳤다.
'나는 이 먼 곳까지 와서도, 삶의 여유를 찾지 못하고 예민하게 굴었구나.'
짜증 가득하던 우리 아이는, 못 되거나 말썽 부리는 미운 네 살이 아니었다. 내가 검색했던, 유아 사춘기도 당연히 아니었고.
단지 사랑이 더 필요했을 뿐.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삶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었었다.
인간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
지금 이 순간부터는 사랑만 하리라 굳게 다짐해본다.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단지 좋은 곳에 데려가 많은 체험을 시켜주는 것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