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는 꼭 20년여 전의 한국 같다. 고층건물보다는 오랜 역사를 품은 오래된 낮은 건물들, 아직도 낡은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은행이나 경찰서 같은 곳에서의 업무도 디지털화되어있지 않아 엄청난 서류에 묻히게 한다.
오래된 도시, 자다르
얼마 전 집주인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부동산에 내놓는다며, 부동산업자가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고 당연히 sure 했다.
자다르의 중심인 올드타운에 위치한 방 3개짜리 집. 얼마 정도 하는지 궁금한데 그렇게 비싼 것 같지는 않다. 이곳의 많은 건물들은 비어있는 경우가 많은데, 아직 땅값이나 집값이 나가지 않는다는 증거겠지.
'이 집을 우리가 사서 이 곳에 살면 어떨까?'
투자이민에 대한 생각이 잠시 들었다.
자다르에는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오는 도시이고, 한국인들도 자주 보인다. 친구들끼리 혹은 단체로 관광을 와서 석양을 보고 하루 이틀 머무는 거쳐가는 곳.
그런데 이 곳에는 한식당이 없다.
윤식당처럼 김식당 오픈?!
'우리가 한식당을 하면 꽤 괜찮을 것 같은데?'
하지만 그냥 한 번 해본 생각일 뿐이다.나는 그래도 내 모국이 좋다!
크로아티아에 살아보니보이는 크로아티아인들만의 특징이 있다.
1. 크로아티아인들은 친절하지 않다
체코 프라하에 놀러 갔을 때, 크로아티아와 체코의 웨이터들의 온도차를 느꼈다. 미소 띤 얼굴, 아이에게도 스윗하게 인사를 건네는 친절한 체코.
크로아티아는 쿨한 편이다. 친절함이나 미소보다는 자신들의 일을 그냥 한다. 주문받고 가져다주고 계산하고 끝. 미소도, Have a good day라는 인사말도 없는 담백한 나라.
그런데 이 것은 팁의 유무 때문이기도 하다.
체코 프라하는 다른 유럽의 나라들처럼 당당하게 팁을 요구하는 곳이었다. 식사를 한 후에 카드로 결제하며 팁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으면, 팁이 포함되어있지 않다고 포함하시겠냐 반드시 묻는다. 묻지 않는 경우는 10%의 팁이 포함되어 있다고 통보하는 상황이다.
거리에서 굴뚝빵을 사 먹을 때도, Tip, please. 하며 당연히 요구한다. 다시는 안 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체면보다는 돈이 우선인 그들이다. 물론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그들의 문화일 테지만.
비슷하면서도 참 다른 체코와 크로아티아
자다르에만 있던 우리가 체코에서 느낀 그들의 팁 문화는, 그들의 친절이 꼭 팁을 위해서인 것처럼 느껴지게 했고, 아직은 팁 문화가 없어 깔끔한 크로아티아를 더 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처럼 친절하지 않고, 고객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려는 노력은 절대 하지 않는다. 딱 자기 일만 하는 그들.
생전 처음 보는 특이한 모양의 전구를 사기 위해 이곳저곳 다녔는데 그 어디에서도 이 것을 살 곳의 정보를 주지 않았다. 몰라서 안 가르쳐줬을지 몰라도, 그들은 자신의 업무를 벗어난 서비스에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Do you know where I can buy this? 어디서 살 수 있냐고, 공손하고 친절하게, 정말 간절한 표정으로 물어봐도 No! 끝이다.
2. 크로아티아인들은 여유롭다
어느 시간대든 카페에 나가면 아저씨들 할아버지들이 카페에 엄청나다. 신문도 보고, 담배도 피우고, 앉아서 대화도 나누며 수시간을 있는다.
커피 한잔에 10쿠나 1800원 정도라 부담 없는 가격인데, 그들은 카페를 오랫동안 누린다.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더 많은 카페.
자다르 카페의 여유
이들은 한가하고 여유롭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돈 벌지 싶을 정도로, 그들의 경제활동이 의문이었다.
농업, 관광업이 발달한 나라라 관광객을 대상으로 보트 투어를 하거나, 직접 재배한 농작물이나 과일, 꿀 같은 것들은 매일 오전에 열리는 시장에서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 같다.
그들은 노래도 좋아해서 큰 소리로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커다란 청소차를 끈 오렌지 색옷을 입은 청소부 아저씨도 자신의 청소차를 자리 옆에 두고 오랜 시간 커피를 마신다.
시베리안 허스키같이 커다란 개들을 데리고 와서도 차를 마시고, 아이를 옆에 두고도 담배를 피우는 그들이다.
3. 크로아티아인들의 영어실력은 온도차가 심하다
대학교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현지 친구들의 대부분은 영어와 크로아티아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4-5개의 언어를 하는 친구들도 꽤 많다.
그런데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 청소부, 작은 가게 주인, 심지어는 은행 직원도 영어를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션이 다니는 유치원 선생님들은 영어를 꽤 하지만, 또 유치원 원장은 영어를 못해 항상 나에게 크로아티아어로 뭐라 뭐라 하며 웃어 보인다. 난 못 알아듣지만^^;
공교육에서 제2외국어 교육을 의무적으로 시키는 대부분의 유럽 나라들처럼 크로아티아도 다양한 외국어를 중고등학교 때부터 배우긴 하지만, 알려진 것처럼 국민의 90% 이상이 영어를 잘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국민의 90% 이상이 영어를 조금은 할 수 있다 정도인 것 같다.
4. 손님이 왕이 아니라 근로자가 우선이다
다른 유럽 나라와 마찬가지로 손님보다 근로자가 우선이다. 크로아티아에서는 재활용 방법이 참 번거롭다. 생수병이나 맥주병을 대형마트에 가져가면 현금으로 바꿔주는데, 플라스틱 수거 기계가 작동을 안 할 때가 많다. 직원을 불러도 한 참 기다려야 하고, 오래 기다려도 안 오면 그냥 어쩔 수 없는 거다.
식료품점인 콘줌에서도 직접 수거를 하는데, 직원이 자기 지금 바쁘다고 하면 그마저도 반납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바빠 보이지 않아도 본인들이 귀찮으면 수거를 안 해준다. 그럴 때는 부피 큰 플라스틱이 잔뜩 든 쇼핑백을 든 손이 상당히 부끄러워지는데, 근처에 있는 쓰레기통 옆에 살짝 두면 된다. 그럼 수거해가는 추레한 사람들이 가져간다.
며칠 전, 멋지게 차려입은 한 애기 엄마가 플라스틱이 든 봉지를 우아하게 쓰레기통 옆에 두고 가는 것을 보았다. 돈이 없는, 그것을 수거해서 받는 천 원 이천 원이 참 소중한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겠지.
나도 그 여자처럼 할 수도 있었는데, 현실은 커피 한잔 값이라도 생기면 좋지 하는 마음으로 재활용 거리들을 바리바리 챙겨서 나오는 아줌마였다.
5. 동양인이 아직은 신기한 아이들
자다르에 살며, 이곳에 거주하는 동양인을 처음 본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택시 기사도, 단골 커피집주인도 우리가 여기서 5개월 산다니 꿈쩍 놀란다.
자다르 올드타운 거리, 바다오르간과 태양의 인사 쪽에는 단체 관광객들만 쭉 걸어 다니는데 그 밖의 지역에서 동양인을 보기는 참 쉽지 않다.
우리 아이 영어놀이학교인 헬렌 도론에도 우리가 유일한 동양인 가족인데, 매 수업 갈 때마다 호기심 가득한 크로아티아 아이들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그리고 재미있기도 하다. 로컬 시장에 가서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나랑 션을 빤히 쳐다보았다. 시장 아주머니가 영어를 못하자 친절하게 12쿠나라고 알려준 그 아이는 계속해서 우리를 바라보았다.
가끔은 어린 자식들이 우리를 너무 쳐다봐서 부모들이 주의를 주는 경우도 있었다.
카페나 음식점에 가면 우리 아들은 언제나 인기인이다. 테이블에 앉은 할아버지들은 꼭 아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젊은 삼촌들은 하이파이브를 요구한다. 웨이트리스 누나들도 항상 "오우~" 하며 사랑스러워한다.
크로아티아 자다르는 다양한 인종을 보기 참 쉽지 않은 도시이다. 흑인을 본적도 손에 꼽고, 동양인은 단체관광객이나 한국인 관광객 몇을 본 게 다이다. 그런데 인종차별이나 다름으로 인해 피해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어린 크로아티아 친구들은 우리를 신기해하고, 그 시선이 꼭 싫지만은 않다.
타지에 나와 살며 불편함도 겪지만 그래도 이곳에서의 삶은 참 평화롭다.
한적한 도시
이러한 긴 여정은 우리를 성장시키는지, 가족에 소중함, 모국이 있다는 것에 대한 든든함과 감사함을 알게 해 주고, 현재의 삶과 한국 돌아가서의 삶에 감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다.
지금 크로아티아 자다르는 비가 내린다.
아이는 자고, 엄마도 누워 쉬고,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 한 잔 마시는데 꿈같이 달콤한 순간이다.
생일 날 신랑이 보내준 꽃
생일이라고 남편이 자다르로 꽃배달을 해줬다. 크로아티아 아주머니가 Happy birthday, Lily~ 하며 축하를 건네는데 눈물이 났다. 우리 집이 훨씬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