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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살기- 3개월 만에 남편이 왔다

by 김느리


남편이 오는 밤.


밤 10시가 넘어 자그레브로 도착할 그를 데리러 가는 길. 가족들을 다 재우고, 한겨울의 추위 때문인지, 그가 온다는 설렘 때문인지 몸이 괜히 으슬으슬해서 테라플루도 한 잔 타마셨다.


시간이 너무 안 가서 괜히 핸드폰만 들여다보다, 에어비앤비 숙소, 아이가 놀던 테이블 위에 먼지가 쌓인 게 보여 물티슈로 슥슥 닦다 보니, 출발하려 했던 시간이 훌쩍 넘어있었다.


'얼른 가자!'


공항에서 10분 거리인 숙소가 위치한 이 동네는 참 고요했다. 크리스마스가 갓 지난 26일 밤,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 남편을 데리러 간다!


렌트한 차에 휴대폰 거치대가 없어 테이프를 쭉 길게 뜯어 핸드폰을 붙이고 다녔는데, 하필 테이프가 다 떨어졌다. 오른손으로는 핸드폰을 들고, 왼손으로는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시작한다. 구글 네비가 11분 걸린단다.


아이를 위해 틀어주던 겨울왕국 ost가 흘러나왔다. 끌까 하다가 터치할 손이 없어 포기, 그래도 듣다 보니 좋더라.


별이 내리는 겨울밤, 2차선 도로 위엔 나 혼자, 사랑하는 사람을 데리러 가기 위해 달리고 있다는 게 너무 벅차서 길을 몇 번 놓치기도 했다.


화장은 지우지 않았고, 평소 편하게 입던 펑퍼짐한 바지 말고, 나름 괜찮은 것을 골라 입었다.


그때, 도착해서 짐 찾았다는 메시지가 들어왔다.


원래 계획은, 공항에서 나오는 그에게 바로 달려가 안아주는 것이었는데, 늑장 부리는 바람에 차에서 목만 쭉 빼고, 어디야? 옆에 뭐 보여? 이러고 있는 나였다.


그가 밖으로 나왔고, 나는 대충 차를 세워놓고 크게 외쳤다!


"훈아. 꺅!! 여기야!!"


커다란 캐리어와 짐들을 카트에 싣고 내 남편이 온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선 엄청 긴 포옹도, 진한 키스도 없다. 가볍게 서로 안아주고 짐을 차에 싣느라 바빴 우리.


그를 데리고 숙소에 가는 길. 3개월 만인데, 꼭 아침에 본 것 같이 편 느낌은 왜인 걸까?


아내와 38개월 된 아들이 외국에 나가 산다고 했을 때 남편은 당황한 듯 보였지만, 단 한 번도 이 여정을 반대하지 않았다.


"애 데리고 오빠도 없이 어떻게 살래?"


동갑내기 남편은 가끔 우려를 보이기도 했지만, 자기는 너네 없으면 편하다며 내 걱정을 덜어주려는 말들을 많이 남기곤 했다.


처음에는 크리스마스 시즌 2주간만 크로아티아를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계속되는 나의 설득 끝에 그는 3개월 동안 육아휴직을 냈다.


그가 회사에서 받았을 의문의 눈초리, 이직하려고? 누가 아파? 따위의 질문들, 상사들과 동료들이 주는 눈치. 내 남편은 가족과의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렸고, 크로아티아에 도착하자마자 카톡을 지웠다. 이제 내 남편도 자유다! 3개월뿐이긴 하지만.


숙소에 와서 옷도 벗기 전, 남편은 아이에게 달려가 자는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살이 차가워 만지지도, 뽀뽀도 못했지만 자고 있는 사랑스러운 아이를 바라보며 한참을 그러고 있더라.


친정엄마와 나 그리고 어린 아들. 셋이 살던 집, 셋이 먹던 매 끼, 언제나 셋뿐이던 우리들의 공간에 듬직한 남자 하나가 들어오니 참 든든하고 벅찼다.


한국에 혼자 남아있는 아빠가 몸살감기로 고생하시는데 여기 우리들이 잘 먹고 놀고 다니는 게 죄송하곤 했다. 이제 열흘이면 귀국하는 엄마랑 같이 맛난 것도 드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겠지! 그럼 또 우리는 온전히 우리 가족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


신랑이 잠들고, 나 혼자만 깨어있던 자그레브의 밤. 그제야 화장을 지우고, 내 남자들 옆에 누워본다.


아름다운 밤이다.


아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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