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오글오글 : 10월호 독서의 계절>
<월간 오글오글>은 글쓰기 모임 오글오글 작가들이 매 월 같은 주제로 발행하는 매거진입니다. 10월호 주제는 '독서의 계절'입니다.
내가 우울한 생각의 공격을 받을 때 내 책에 달려가는 일처럼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책은 나를 빨아들이고 마음의 먹구름을 지워준다.
- 미셀 드 몽테뉴 (수상록을 쓴 프랑스 철학자)-
어렸을 때 몸이 허약해서 애초에 활동적인 일들에는 도전하기가 어려웠다. 우선은 이러한 상황자체가 내가 독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에 나 스스로도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고, 무엇보다 부모님의 걱정이 컸다. 허약함의 수준은 생각보다 높았다. 이렇게 결석을 많이 해서, 다음학년에 갈 수 있는 건가 걱정하는 정도였다.
갑자기 쓰러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내 심각함의 수준을 스스로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어린 시절의 기억도 잦은 기절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뚝뚝 끊어진 장면들만 존재한다.
병원 어항 다급한 부모님의 목소리와 걱정하는 눈빛
의사 선생님의 다독거림 빠른 지시
뭔가 대부분 주황색 불빛을 켜놓고 찍어놓은 빛바랜 사진들 같은 기억들만 조각조각 존재한다.
원래는 명랑하고 엉뚱하면서, 호기심이 많고 활동적인 것이 기본 성격인듯하다.
(나를 오래 만난 사람들, 가족들이 언급하는 동일한 내용 및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렇다.)
하지만 몸이 약해서 밖에 나가는 시간, 날짜 등을 많이 제한받았다.
다행히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는 쓰러지는 일이 드물고, 정상적 범주 끄트머리쯤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멍하니 내방 창가에 앉아서, 창밖에 보이는 즐거워 보이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가끔 구슬치기 하거나 땅따먹기 하고 있는 친구들을 창가로 불러서 부여잡고 대화한 적도 있었던 듯하다.
지독하게 외로웠던 것 같다. 그 당시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었는데, 브런치에 글들을 연재하기 위해 각종 글을 써 내려가면서 알게 된 사실은 '나는 외로운 어린이였다.'는 점이다.
외롭지만 외롭다는 것도 몰랐고 힘들고 어려운 내 감정을 어딘가에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도 몰랐으며 어디로 도망가서 나를 보호해야 할지도 몰랐던 것 같다.
헌데, 보호와 다독임의 역할을 책이 전부 다 해주었다.
몽테뉴의 말처럼 책은 내 마음속 먹구름을 지워주었으며, 내가 삶이라는 절벽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게 붙들어주었다. 외로운 상황 속에서 표지와 목차를 보고 손 내민 내 선택을 존중해 주고, 그때그때 필요한 말들을 들려주고 지혜를 주고, 다독거려 주고 미친 절망 속에서 도망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바로 책이었다.
언제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흔해빠진 책 읽기 홍보 글처럼 진부해 보이는 문장 표현인 듯도 하지만, 이 진부한 표현이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나에게는 언제나 절실한 문장이다.
지금 생각하면 거짓말 아니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 같고, 나도 왜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어릴 때의 나는
한글을 상당히 일찍 뗀 어린이였고(아마 아파서 밖에 잘 못나가서인가?) 6,7세부터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혼자 책을 보는 습관이 있었다. (잠시, 책 읽기 습관을 설명하려다 보니 난데없는 자랑질처럼 되어서 읽는 분들께 죄송합니다.)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 새벽에 내 방에 왜 갔는지 모르시는 것 같았다.
최근에야 뭔가 그 이야기를 꺼내서 말했는데 혼자 놀고 싶어서 일찍 일어나는 데 어머니도 너무 피곤하셔서 그냥 뒀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시기에, 내가 왜 그때 그런 행동을 했는지 마음을 전혀 모르시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끊어지는 기억들이라도, 책을 보는 장면과 그때의 감정은 내 기억 속에 희미하게 존재하고 있다.
나는 불안했다. 부모님의 사이가 좋지 않은 데다가 몸까지 허약해서 가족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했다. 언제 내가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답답해서 내 방에 있는 책을 읽으러 가봤는데 책을 보는 동안에는 모든 것을 다 잊을 수 있었다.
몰입의 경험 이후로는 매일 새벽에 낡고 큰 자줏빛 1인용 의자에 파묻혀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어린 내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게 어려워 보이는 고전 소설도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그냥 읽었다. 워낙 옛날 책을 받아온 것이라서 책장이 누렇고, 글씨체도 특이했지만 말이다.
문학책을 읽는 동안에는 실제로 발생 중인 내 진짜 감정을 잠시 뒤로 할 기회가 있었고, 소설 속 주인공의 감정만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좋은 문장과 정제된 생각들은 슬픔이나 공허함, 분노로 인해 날뛰는 감정들을 자제시켜 주었다.
비문학책을 읽는 동안에는 아무래도 생각 혹은 다음 단락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억이란 것을 위해 머리를 쓰게 되서인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단락들을 읽고 이해해 나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양한 내 감정의 잡음들이 뇌 속으로 잠깐이나마 숨는다.
인생의 위기라고 느끼는 듯한 사람들 중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그 사람의 상황에 맞는 듯한 책을 선물한다. 언젠가는 늘 곁에서 응원하거나 도와주고픈 생각이 드는 옛날도 있었다.
책 한 권 주면서, 내 할 일은 여기까지다라고 생각해버리고 싶은 구실 좋은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도움과 바라봄보다는 책을 읽은 그 순간의 기억과 깨달음이 한 존재에게는 더 영원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그래서 반드시 도움이 되기를 기도하면서 책을 선물한다.
인간의 감정과 생은 영원을 갈구하지만 모두 찰나에 불과할지 모르며, 사람들은 나의 소중한 사람 곁에서 계속 위로와 지지를 보낼 거라 다짐해 나가겠지만, 실제로 인생의 많은 인연과 인연들 사이의 생활과 감정의 공간들은 필연이 주어져 함께하기를 기도할 뿐 그 이상을 강제하는 것은 오만함이 아닐까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저 때때로 행운 같은 우연이 인연과 삶의 모습으로 드러나면서 각 개인의 시간 속에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릴 뿐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알렉산더 대왕은 아프가니스탄까지 진군했다가, 모기에 물려 죽었다.
<이응준 작가의 '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 >
정말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그나마 기력 있을 때 남의 생각도 이해하고 남의 삶도 들여다보고 나만 옳다고 깽판 치는 사람이 안되기 위해서, 내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호러스릴러 판타지 영화의 끝나지 않는 놀이기구가 아니라 평범한 운행시간과 종료가 존재하는 놀이기구가 되게 하기 위해서 오늘도 책을 읽는다.
강제가 의무가 되고 의무가 습관이 되고 습관이 즐거움이 되고 즐거움이 결국 베풂이 되는 그날까지 책 읽기.
최대한 이승에서의 정상범주 줄타기를 위한 저만의 책 읽기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