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한테 이런일이 생기죠?
달의 뒷면 : 그림자 속 은밀한, 삶의 노출증
[ 삶의 방황과 깨달음 ]
서이초에서의 일, 최근 교감샘에게 뺨을 때리며 함부로 한 초등학생의 이야기 ...
극단적인 교권침해사례들이 뉴스에 등장하며 일부 지역에서 인권조례가 폐지되기도 하였다.
인권조례와 교권침해의 상관성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 공개 발행글에서는
말을 아끼도록 하겠다.
자극적인 망나니 학생, 진상 학부모의 렌즈로 학교를 비추지만 실제로 뉴스에 나오지 못한 수 많은 교권 침해 사례와 학교 폭력 사례들이 학교 안에서 묻혀 사라진다. (언론 기사가 나가지 못하게 제지하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았다. 언론 노출이 된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옳지 못한 일을 언론에 공개하고 공론화 하여 진정성과 올바름을 촉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의외로 심각한 사건들이 수면 아래로 묻히면서 당연하지 않게 진행되는 경우도 많았다.)
저도, 선생님처럼.. 힘든 일이 있어도
자신의 일을 끝까지 해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2011년 5월 15일에 받은 쪽지,
그 쪽지의 글씨체와 주변의 공기, 교탁과 교실.
13년이 지나는 지금 아직도 어제 일 처럼 선명하게 느껴진다.
2011년 3월 신규발령을 받았고, 2011년 3월 말 나는 교권침해이자 성폭력 범죄를 겪었다.
나는 남학생 학급을 담당하고 있었고, 학급 회장과 부회장 모두 범죄에 연루되어 임원직이 박탈되었고
회장선거를 다시했다.
연루되지 않은 학생 중에 고르자니, 정말 착하거나 아웃사이더인 애들만 남아서 리더로 세우기 어려웠고,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그래도 아웃사이더급이었던 그 친구는 자신이 할수있을 만큼 성실하게 나를 도와서 일해주었고,
리더로서 이끌어 나가지는 못했지만 학급의 궂은일을 자신이 도맡아 했다.
친구들에게 도리어 괴롭힘 받는 경우가 원래부터 많았었는데,
힘든일이 있어도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더니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점차 성적도 오르고, 학교의 학년 마무리쯤에는 전교권 성적 순위에 들었다.
처음엔 아직 우울과 좌절과 분노의 어딘가쯤에 서있었던 나였기 때문에 스승의날 받은 저 쪽지의 글이
이해가 안됬다.
친구들이 뭐라고 하던 말던 끝까지 자기 책임을 지고, 공부도 하고, 나도 돕는 걸 보면서
정말 말로 할수없을 정도로 미안하고, 고마웠다.
내가 좀 더 지금 알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 친구도, 다른 친구들도 그런일에 휘말려 그 해를 그렇게 정신없는 흑역사로 만들지 않았을텐데 나도, 그들도 모두 상처받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씁쓸하긴 했다.
발령 시기의 나는 한참 학생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자율적인 교육과정, 학생자치 등을 잘 실현하고 싶었다. 물론, 세월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런 분야에 관심은 많다. 다만 이 일을 겪은 후 방식을 바꿔서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첫 발령 때, 24시간이 최대 시수인데 22시수를 맡았다. 그때는 격주로 토요일에도 출근하는 때였다.
실무사님들의 역할이 지금 같지않아서 각종 행정업무들이 좀 더 많았다.
학적이나 일과 등은 현재 실무사님들이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래도 업무가 많이 경감된 편인데
당시엔 학적(아직도 교사가 하는 곳이 있을지도..)도 교무기획부의 업무여서 22시수에 방과후 수업(충청북도는 고입시험을 봤기 때문에 고입에 들어가는 과목은 모두 학력신장을 위해 방과후 7,8교시를 했다.) 7,8교시까지 아마도 24-25시수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지금 하라그러면 못할듯..ㅎㅎㅎ)
학적이 한가할 수도 있었지만, 운동부가 활성화된 학교로 전입, 전출이 잦아서 눈빠지게 생활기록부 수정사항을 찾고, 잘못된 서류도 찾고 .....
지금하면 그때보단 잘할 수 있을 거 같긴 한데(과연?) 그때는 정말 수업도 업무도 제대로 돌아가는게 하나도 없는 것 처럼 느끼고 있기는 했다.
심지어 으쌰으쌰 술문화도 남아있어서
"핫썬 치킨인데 빨리 내려와 김선생~!!!"
아파트 아래로 내려가면 우리 동기들 7명과 추가된 젊은 샘들 몇명 (끌려나와서 앞에서 웃고있지만 뒤에선 모두 욕하는 상태로..ㅎㅎ)과 교무부장님, 교감선생님 등등이 있었다. 항상 10명이상이 모였다.
지방에서 신규 발령받으면서 대부분 자취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거라고 본다. (그래도 힘듦 ㅋㅋ)
매일 술마시고 수업 준비는 졸면서 하고 다음날 하루 6-7시간 수업하고 초과근무하면서 교무업무 하다보니
내가 무슨 정신으로 살고 있는지 의아한 상태였다.
훗날 생각했을 때 그때의 나는
아이들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학생인권존중, 학생 자치를 실현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그저 내 할일만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독서시간에 전기포트에 차를 끓여서 주기도 하고
휴대폰도 청소할 때 나눠주고
혼내야 될 때도 존중이란 포장을 하고 싶어서 혼내지않고
자유를 추구한다면서 방임했던 것 같다
청소할 때는 질서가 없고 항상 어수선한 상태로 청소를 해서 청소가 잘 되지도 않았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기준을 주지 않았다. 그건 자유가 아니었다.
[대법원 2018. 8. 30. 선고 2017도3443 판결]
청소 임장지도를 하던 나에게 한 친구가 말을 걸었다. 조직적인 범죄에 가까웠다.
한명이 말을 거는 동안 다른 한명이 몰래 내 뒤를 쫓아와서 휴대폰으로 치마 아래를 촬영하려고 여러번 시도했다. 자꾸 말을 걸었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전혀 알지 못했다.
그나마 복도에 함께 나와있던 옆반 선생님이 그 장면을 보게 되어서
그 학생의 휴대폰 촬영은 미수에 그치게 되었다.
영상을 보았을 때 제대로 찍은 게 없었고, 유포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수에 그쳤다고 표현했지만
정말 끔찍했다.
내가 믿고 잘해주려고 했던 것에 대한 대가가 이건가?
진심따위는 개나 줘버려야 하는게 아닌가?
역시 존중보다는 폭력이 답이고 진실인가?
별의별 생각이 들고 눈물이 끝도 없이 흘렀다. 겨우 교사되서 살만한가 하였더니 나한테는 왜이렇게 거지같은 일만 생기는건지 그 순간에는 정말 죽어버리고 싶을정도로 짜증나고 우울하고 좌절감이 들었다.
내가 병신이라서... 라는 끔찍한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때는 교권침해 시 보호할 수 있는 위원회 자체가 없었다. (2011년)
학생 선도 위원회를 열어 서면사과를 받고, 학부모님들의 사과를 받았다. 학생부장님과 교감선생님 이하 많은 선생님들이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옆에서 지켜봐주셨다.
어떤날은 몸살 난 상태에서 병가를 내니 교감선생님이 병원 앞에 와서 기다리다 다시 집앞에 태워서 내려주시기도 했다.
(그땐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누군가 듣기에 황당할수도...^^;;; )
물론 한 학년이 8~10학급인 큰 학교라 나의 일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교사들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알기 어려웠을 부분도 많은데 나는 그들이 다 알면서도 비인간적으로 군다고 생각하고 2차 화살을 스스로에게 꽂았다.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거의 끊었었다.
사람을 만나서 말을 하는 것이 버거웠다. 나는 상처입고 힘든데 그들이 웃을 때 같이 웃어줄 기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부장님들과, 동료 교사들이 얼굴 한번 펴지 않는 나에게 손을 먼저 내밀어 주었다.
(심지어 4년 가량 더 흘러서 경기도로 도를 옮겼는데도 불구하고 다들 챙겨주시고... ㅠ_ㅠ
고생많았는데, 행복하게 되는 거 같아서 기쁘다고 해주셔서 까페에서 전화받다 울었다. (비밀이었는데.) )
음식도 챙겨주고, 바람 쐬러 나들이도 데려가고, 모든 부장님들이 수업들어올 때마다 우리반 학생들이 이런 상황들 속에서도 나를 리더로 생각하고 따라가게끔 정말 한달 내내 훈계하고 혼내고 ....
지금 같으면 반을 교체해달라고 요구하거나 질병휴직을 냈을 거 같기도 한데 (혹은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이 있으면 조언을 이렇게 할 것 같다.)
그때는 그냥 그런 생각이 없었고, 지쳤고, 여기서 물러나기 싫기도 했다.
도와주는 사람들의 손길에 힘입어, 그냥 계속 담임을 했고, 아이들과도 어느정도 회복이 되었고,
그 친구들 중 몇몇은 몇년뒤에도 죄책감을 느껴 몰래 음료수를 두고가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다.
솔직히 100프로의 용서가 되었다고 허심탄회하게 말하기는 어려울 거 같다.
언젠가는 아무한테도 말하기 힘들 정도였지만, 지금은 종종 가볍게, 비슷한 주제가 나오면 얘기할 수 있을 정도는 되긴 했다.
내가 신규발령받았던 학교는 원래 거친 학생들이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나와 동일한 일을 겪은 다른 여교사들이 또 생겨났고, 그 선생님들은 슬프게도.. 우울증이 걸려 긴 휴직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그 이후에 그런일이 생겼을 때, 나는 다른 학교로 떠나있었고 남은 여자 교사들이 도와주려고 했지만 관리자 및 몇몇 승진하고 싶은 남교사들의 제지로 결국 그 여자 교사도 제대로 본인의 이야기를 하지 못한 채 마무리 되어버렸다.
혹시라도 내 글을 보게 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지 모르는
미미한 나의 생각을 두가지만 적어보자면
1. 학생들을 제대로 살펴보아야 한다.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 또는 1:29:300의 법칙은 어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반드시 나타남을 뜻하는 통계적 법칙이다.
생활지도는 하인리히의 법칙에 근거해서 한다. 현재 내 생각이다. 물론 나도 요즘 내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주의깊게 살피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ㅠㅠㅠ 우선은 이 생각에 기반해서 학교생활중이기는 하다.
- 불법촬영 미수에 그쳤던 그 친구는, 실은 수십번의 징후를 보였다.
각종 교과시간에 19금 낙서를 하다가 걸려서 수업방해로 혼났다.
그때는 솔직히 남의 반 애를 혼내는 거 자체가 내가 반 애들을 잘 지도못해서 그런가? 나한테 불만이 있는건가? 라는 엉뚱한 자존심 스크래치에 휘말려 "애들이 그럴수도 있지. 너무 애를 잡는거 아니야?" 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는 교과서에도 , 책상에도 온갖것에 그런 낙서를 하고 그런 글을 써댔다.
- 학생들의 설문조사(맨 처음 걷는 자기소개서 등) 내용, 대화 내용, 표정 등도 어느정도는 유심히 봐야한다.
학생들이 현재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잘 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기에 상대방과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확인해보라는 뜻이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되면 생활지도는 커녕 교과 수업도 의사소통이 아니라 나혼자 떠드는 수준이 될지도 모른다. 신규 때의 폭풍같은 일을 겪으면서, 학생들이 제출한 설문지와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다시 읽어보았더니 30명중에 20명가량이 [선생님이 형식적으로 우리를 대한다.]로 요약할 수 있는 내용들을 써놓았다는 것에 정말 충격을 금하지 못했다. 나는 분명 잘해준다고 잘해줬는데 이게 무슨일이란 말인가?....
나딩스의 배려 윤리 : 배려 윤리는 배려하는 사람에게 배려받는 사람이 응답할 때 배려가 완성된다.
한마디로 나는 배려하려고 하는 나를 우선시했지, 배려받는 사람의 입장이나 마음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내멋대로 배려하면서 난 진심을 쏟았는데, 이게 뭐야!!! 라고 욕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범죄를 저지르거나 나의 권리를 침해하는 누군가들에게 면죄부를 줄 생각은 없고,
피해자가 잘해야된다는 입장도 아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해
한번쯤 분위기를 살펴서 임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정도의 미미한 생각이다.
2. '나때문이야'라고 2차 화살 꽂지말고, 객관적인 입장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면서 적극적으로 도움 요청하기
부정적인 일이 발생했어도, 처리하면 된다. 발생한 일을 되돌릴 수 없지만 앞으로의 나의 태도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교권 침해, 적극적으로 알리고 대처하자.
요즘은 그래도 많이 더 나아졌다. 물론 아직도 '피해자'보다 '가해자'에게 관대한 '학교'와 '사회'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왜냐면 의외로 세상에는 '진심'으로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며 투덜대기 보다는 그래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서 나의 권리를 찾아보기. 관리자분들께도 상의하고, '진심'을 가지고 나를 도와줄 동료교사들도 찾아보고, 교육청 담당자도 연결하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기. 요즘은 교원 상담도 무료로 가능한 곳이 많다.
2024년, 교권침해 직통번호 1395 개통 / 9:00~18:00 운영, sns 소통은 상시
+ 쓸데없는 생각 주절주절
- 귀멸의 칼날 암주의 과거
귀멸의 칼날 본 분들? ㅎㅎㅎ 뜬금없이 왠 귀멸의 칼날인가...
귀멸의 칼날은 아~주 짧게 요약하자면 도깨비들에게 가족을 잃고, 도깨비로 변모한 누이동생을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남주인공의 이야기이다.
가장 강한 히어로격의 사람들을 '주'라고 일컫는데, 그 중 눈이 보이지 않는 '주'의 스토리 중의 하나를 잠깐 이야기하려고 한다.
암주는 눈이 보이지 않았고 고아인 어린아이들을 돌보고있었다.
어느날 한 아이가 도깨비들을 물리치기 위해 놔둔 것들을 치우고 오히려 도깨비를 불러들여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했지만, 4살의 아주 어린 여자아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겁에 질려 암주를 신뢰하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의 힘을 몰랐다가 분노로 인해 깨닫게 되면서 도깨비를 때려 죽였지만,
그 모습을 본 4살의 여자아이는 날이 밝고 나서 마을 사람들에게 암주가 아이들을 죽였다고 말하고 암주는 옥에 갇힌다.
배신감에 사로잡힌 암주.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다.
사람은 상황에 휘둘리고, 압도된다. 우리는 상황밖에서 바라볼 때, 만화속 어린 아이들이 왜 그렇게나 잘해준 암주를 믿지 못하냐는 둥, 아이들이 원래 본성이 나쁜 애들이었다는 둥..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조차 그 장소에서 똑같이 혹은 더 나쁘게 행동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시 암주란 인물은 아이들이 신뢰하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마르고, 싸움을 해본적이 없고, 맹인이었다. 평범한 그냥 인간이라면 '선의'보다 '안전'이 먼저인 본능이 있는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닐까?
우리 모두는 선을 지향하지만, 악에 더 빨리 압도되고 물든다.
학교라는 공간도 '선'을 추구하는 곳 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선도 , 악도 아닌 그냥 어떠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인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좀 더 사람의 심리에 기반해서 '좋은 환경' '선을 지향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야 교사도 학생도 존중받을 수 있는 인권지향의 학교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학교에서 그런일이? 라는 말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기대일 뿐일지도 모른다.
가해자가 날뛰고, 부정부패한 어떤 직급의 이들이 날뛰고..
안전이 보호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 진행된다면 교사도 학생도 서로를 외면한 채 힘있는 자가 먼저가 되는 폐쇄된 '악'의 공간이 되기 쉽지 않을까?
지금 이순간도 상처받고 있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거 같아 씁쓸하고,
내가 겪은 일보다 더 심한 일들을 겪은 이들의 상처를 축소하는 것 처럼 느껴지는 글이 될까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더 나은 곳을 만들고자 하는 진심이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고 믿고 싶고, 나혼자 겪는 일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했던 슬픔이 있는 그 누군가가 읽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가벼워 질 수 있었다면 정말 더할나위없이 감사할 거 같다.
* 글을 마치며..
(니체의 말!, 위 책은 이 말에 관심있으시면 한번 읽어보세요. 이 책말고도 니체에 관한 책은 많습니다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