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고래의 관계는 아주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최초의 기록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거친 풍랑을 잠재우기 위해 바다에 던져진 노아의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거대한 물고기에 삼켜졌다가 사흘 만에 살아 돌아왔는데, 성경은 이를 직접적으로 고래라 칭하지 않고 하느님이 예비하신 큰 물고기라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편에서는 심해를 가마솥처럼 끓게 하는 리바이어던이라는 괴수가 등장하여 바다의 거대함과 공포를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고대 로마의 저명한 수학자 플리니우스는 그의 저서 [박물지]에서 고래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갈리아 대양에서 목격한 거대한 물고기를 피세테르라 불렀는데, 이는 향고래를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바다 위로 솟구친 그 모습이 마치 배의 돛대보다 높고 엄청난 물을 뿜어낸다는 묘사는 당시 사람들이 느꼈던 경외감을 잘 보여줍니다.
13세기 중반 아이슬란드의 문헌인 [스페쿨룸 레갈레]는 고래에 대한 더욱 상세하고 흥미로운 분류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고래를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와 도움을 주는 존재로 명확히 구분합니다. 범고래는 개와 같은 이빨을 가지고 무리를 지어 다니며 다른 고래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자비로운 습성으로 묘사됩니다. 반면 말고래 등은 선박을 파괴하고 사람을 해치는 인간의 적으로 규정되었습니다.
반면, 인간에게 호의적인 좋은 고래들에 대한 기록도 존재합니다. 대서양의 수염고래는 이빨이 전혀 없으며 매우 정결하여 음식물을 먹지 않고 오직 어둠과 빗물만을 먹고 산다는, 다소 환상적이지만 신비로운 믿음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신비감은 때로 종교적 경외심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6세기의 스위스 해군 소속 신부 성 브렌던은 항해 중 거대한 섬을 발견하고 그 위에서 미사를 올렸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잠자고 있던 고래의 등이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고래가 미사가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기다려주었다는 이야기는 고래를 영적인 교감이 가능한 존재로 바라보았음을 시사합니다.
동양, 특히 일본의 야마구치현에서는 고래에 대한 독특한 제례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1679년부터 시작된 이 의식은 포경 과정에서 희생된 고래, 특히 배 속에서 발견된 새끼 고래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것입니다. 어부들은 어미 고래가 새끼를 품고 있는 무관심에 감동하여 고래의 묘를 쓰고, 인간과 똑같이 계명을 지어주며 장례를 치렀습니다. 이는 고래를 단순한 사냥감이 아닌, 영혼을 가진 동등한 생명체로 대우했음을 보여줍니다.
인류가 고래를 적극적으로 사냥하기 시작한 것은 도구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구석기 시대에는 해안가로 떠밀려온 고래를 수동적으로 습득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알류샨 열도의 원주민들은 해독제가 발린 작살을 사용하여 고래의 숨을 끊었고, 사냥이 끝난 후에는 앞서 언급한 수염고래의 날카로운 이빨을 뽑아 공예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3세기에 쓰인 [스페쿨룸 레갈레]의 기록부터, 고래 뱃속에서 3년을 버틴 성경의 인물에 이르기까지 고래는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과거의 사람들이 고래를 악마라고 부르면서도 동시에 숭배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존경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반드시 증오하고 악마화해야만 한다는 보편적 진리를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이 글은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고래의 삶과 죽음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각 해설의 아래에 [상식], [언어이해], [작업기억], [논리적 비약] 이라는 태그가 달려 있습니다.
[상식] 태그의 오류를 잡아내지 못 했다면, 기초 인문학 지식을 조금 쌓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배경지식이 늘어나면 독해의 속도를 높여줍니다.
[언어이해] 태그의 오류를 잡아내지 못 했다면, 글을 너무 문자 그대로만 읽는 습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문장 사이의 행간과 뉘앙스를 파악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작업기억] 태그의 오류를 잡아내지 못 했다면, 앞의 내용을 금방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긴 글을 읽을 때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연도에 신경을 써서 읽는 습관을 들여보세요.
[논리적 비약] 태그의 오류를 잡아내지 못 했다면, 당신은 가짜 뉴스나 과장된 광고에 쉽게 속아넘어갈 만큼 비판적 사고력이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글의 흐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세요.
바다에 던져진 노아의 이야기
[상식]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 나온 인물은 요나입니다. 노아는 방주의 인물입니다. 널리 알려진 성경 상식을 테스트합니다.
고대 로마의 저명한 수학자 플리니우스
[상식] 플리니우스는 고대 로마의 박물학자 혹은 군인/정치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물지]를 쓴 저자를 수학자로 칭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다릅니다.
다른 고래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자비로운 습성
[언어이해] 문맥상 범고래가 다른 고래를 공격하고 물고 늘어지는 잔인한 행위를 묘사하고 있으므로, '자비로운'이라는 단어는 문맥에 전혀 맞지 않습니다. 잔인한 혹은 포악한이 적절합니다.
스위스 해군 소속 신부 성 브렌던
[상식] 스위스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므로 해군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호수 경비정 제외, 역사적 맥락상 명백한 오류). 이는 지리적 상식을 테스트합니다.
어미 고래가 새끼를 품고 있는 무관심에 감동하여
[언어이해] 어미 고래가 새끼를 품고 있는 모습은 모성애나 사랑을 나타냅니다. 이를 보고 감동했다는 문맥에서 무관심이라는 단어는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원주민들은 해독제가 발린 작살을 사용하여
[언어이해] 고래를 사냥하여 숨을 끊기 위해서는 작살에 '독'을 발라야 합니다. '해독제'는 독을 없애는 약이므로 사냥 도구의 수식어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수염고래의 날카로운 이빨을 뽑아
[작업기억] 중간부에는 수염고래가 "이빨이 전혀 없으며"라고 명시했으나, 후반부 사냥 문단에서는 "수염고래의 날카로운 이빨을 뽑아"라고 서술했습니다.
3세기에 쓰인 [스페쿨룸 레갈레]의 기록
[작업기억] 중간부에는 "13세기 중반... [스페쿨룸 레갈레]"라고 했으나, 결론부에서는 "3세기에 쓰인 [스페쿨룸 레갈레]"라고 언급했습니다.
고래 뱃속에서 3년을 버틴 성경의 인물
[작업기억] 서두에는 "사흘 만에 살아 돌아왔는데"라고 했으나, 결론부에서는 "3년을 버틴"이라고 서술했습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존경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반드시 증오하고 악마화해야만 한다는 보편적 진리를
[논리적 비약] 과거 사람들이 고래를 두려워하면서도 숭배했다는 사실(양가감정)에서, 존경을 위해서는 반드시 증오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입니다. 이는 특수한 상황을 보편적 진리로 둔갑시키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자, 전제와 결론 사이에 인과관계가 부족한 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