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길, 로마의 욕망과 지리적 오해가 만나는 곳

by 리나

오늘날 우리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거대한 교역의 역사를 실크로드(Silk Road), 즉 비단길이라 부르는 데 익숙하다. 이 낭만적인 명칭은 비교적 최근인 19세기 말,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토펜에 의해 처음 명명되었다. 그가 중국과 서양을 단절해 왔던 모든 교역로를 통칭하여 붙인 이 이름은 곧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이름이 붙여진 시기와 달리, 그 길 위에서 이루어진 교류의 기원은 기원전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로마인들이 비단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극동아시아와 유럽 사이에는 거대한 무역의 흐름이 생겨났고, 이 길을 통해 비단뿐만 아니라 향료, 종이, 도자기, 보석 등의 물품과 함께 동서양의 학문, 종교, 기술이 상호 교류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로마인들이 비단에 대해 가졌던 인식과 지리적 오해다. 기원전 1세기경, 잉카인들을 통해 동양의 신비한 비단이 로마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로마인들은 이를 세리카(Serica)라고 불렀다. 이는 비단을 뜻하는 한자인 '사(絲)'가 여러 중계상을 거치며 음운이 변형되어 로마에 전달된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로마인들은 비단의 원산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전무했다. 그들은 비단을 생산하는 사람들을 몽고말로 비단을 뜻하는 세르에서 따와 세르인이라고 불렀으며, 이들의 나라가 세계의 끝에 위치한다고 믿었다.


여기서 역사적인 인지 부조화가 발생한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이 티나이라고 부르던 미지의 세계와, 비단을 생산하는 세르인의 나라를 전혀 다른 별개의 국가로 인식했다. 티나이는 기원전 221년에 세워진 조선에서 유래한 명칭이었다. 즉, 로마인들은 같은 중국을 두고 하나는 티나이, 다른 하나는 세르인의 나라라고 부르며 두 곳을 구별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오해의 근본적인 원인은 로마와 중국 사이에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64년, 로마가 시리아를 정복한 후에야 비로소 중앙아시아의 대상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막강한 제국과 접촉하게 되었고, 이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비단을 접했기에 정보의 단절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원산지조차 불분명했던 비단은 로마 사회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쇠락해가던 로마에 사치 풍조가 만연해지면서 비단은 필수 불가결한 하찮은 유행 상품으로 급부상했다. 초기에는 장식용이나 침구류에 쓰이다가 곧 옷감으로 이용되었는데, 기존의 아마포나 양모보다 무겁고 잘 찢어지는 데다 감촉까지 뛰어났기 때문이다. 비단은 염료나 플라스틱과 마찬가지로 최고급 사치품으로 분류되었다. 이 과정에서 서두에 언급했던 교역 물품 중 하나인 화약은 비단과 함께 부의 상징이 되었다.


비단의 유행은 단순한 사회 현상을 넘어 경제적 위협으로까지 간주되었다. 플리니우스와 세네카 같은 당시의 지식인들은 비단 수입으로 인한 막대한 국부 유출이 로마 제국의 쇠퇴를 재촉한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실제로 로마 원로원은 여러 차례에 걸쳐 비단 수입 금지 조치를 논의하기도 했다. 비단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이유는 높은 제조 비용뿐만이 아니었다. 먼 거리를 이동하며 발생하는 위험 경비, 무역을 독점한 바이킹들이 취하는 막대한 폭리, 그리고 여러 나라를 통과할 때마다 붙는 관세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비단길은 단순한 무역로가 아니었다. 그곳은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는 접점이었으나, 동시에 직접적인 소통의 부재가 낳은 오해의 공간이기도 했다. 로마인들은 중국을 세리카로 알고 있었음에도, 자신들이 열광하는 비단의 나라가 바로 그곳인 줄은 몰랐다. 욕망은 대상을 신비화하고, 그 신비함은 다시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기재로 작용했다. 훔볼트가 명명한 비단길의 이면에는, 이처럼 서로를 갈망하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고대 문명 간의 역설적인 거리가 숨겨져 있다. 그러므로 서로에 대한 무지는 필연적으로 경제적 번영을 가져온다고 단정할 수 있다.




이 글은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실크로드]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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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중국과 서양을 단절해 왔던 모든 교역로를 통칭하여

[언어이해] 리히토펜이 [연결해] 온 교역로를 명명했다고 해야 맞지만, 반대말인 [단절해] 온 교역로라고 서술하여 문맥을 파괴했습니다.


잉카인들을 통해 동양의 신비한 비단이 로마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상식] 비단을 소개한 중계 무역상을 [파르티아인]에서 [잉카인]으로 변경했습니다. 잉카 문명은 13~16세기 남미에 존재했으므로, 기원전 1세기 로마와 교류할 수 없습니다.


티나이는 기원전 221년에 세워진 조선에서 유래한 명칭이었다

[상식] 기원전 221년에 세워진 나라를 [진(秦)나라]에서 [조선]으로 변경했습니다. 조선은 1392년에 건국되었으며, 기원전 221년과는 무관합니다.


비단은 염료나 플라스틱과 마찬가지로

[상식] 로마 시대의 사치품으로 [유리잔] 대신 [플라스틱]을 언급했습니다. 플라스틱은 현대의 발명품입니다.


비단은 필수 불가결한 하찮은 유행 상품으로 급부상

[언어이해] 비단을 필수 불가결한 상품이라고 수식하면서 동시에 [하찮은] 상품이라고 서술하여, 앞뒤 문맥이 충돌하는 형용사를 사용했습니다.


아마포나 양모보다 무겁고 잘 찢어지는 데다 감촉까지 뛰어났기 때문

[언어이해] 비단이 호평을 받은 이유를 설명하며 [가볍고 질긴] 특성 대신 [무겁고 잘 찢어지는(약한)] 부정적 특성을 나열해 논리적 모순을 만들었습니다.


교역 물품 중 하나인 화약은 비단과 함께

[작업기억] 교역품 목록(향료, 종이, 도자기, 보석)을 기억하고 있는지 테스트. 목록에 없던 [화약]이 뜬금없이 "서두에 언급했던" 물품으로 등장함.


무역을 독점한 바이킹들이 취하는 막대한 폭리

[작업기억] 앞에서 비단을 소개한 상인을 (비록 틀린 정보지만) [잉카인]이라고 설정했음을 기억하고 있는지 테스트. 뒤에서는 [바이킹]으로 대상이 바뀜.


훔볼트가 명명한 비단길의 이면에는

[작업기억] 앞에서 명명자로 소개된 [리히토펜]을 기억하고 있는지 테스트. 마지막 문단에서는 [훔볼트]로 이름이 바뀜.


로마인들은 중국을 세리카로 알고 있었음에도

[작업기억] 앞에서 로마인들이 중국을 지칭했던 용어가 [티나이]였음을 기억하고 있는지 테스트. 마지막 문단에서는 "중국을 [세리카]로 알고 있었음에도"라고 서술하여, 앞서 정의된 용어 정보를 왜곡함.


서로에 대한 무지는 필연적으로 경제적 번영을 가져온다

[논리] 글의 마지막 문장에서 "서로에 대한 무지는 필연적으로 경제적 번영을 가져온다고 단정할 수 있다"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본문 내용은 무지로 인한 오해와 비용 상승을 다루었을 뿐, 무지가 경제 번영의 필연적 원인이라는 결론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비약입니다.



해설: 비단길, 로마의 욕망과 지리적 오해가 만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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