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 테스트 005
우리가 흔히 그리스 문명이라 부르는 찬란한 고대의 유산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 시작점은 기원전 6,000년경, 소아시아의 이주민들이 전해준 농경과 목축 기술이 그리스 반도에 닿으면서부터였다. 비록 동양보다는 한참 늦은 시기였으나, 이 신석기 혁명은 테살리아의 불모지(barren land)라 불리는 척박하고 메마른 평야 위에서 디미니(Dimini)와 같은 견고한 성곽 도시를 꽃피웠다. 원형 성벽 안에 자리 잡은 궁전과 조직적인 공동체의 모습은 훗날 도래할 미케네 문명의 화려함을 예고하는 서막과도 같았다.
문명의 시계바늘을 조금 더 돌려 기원전 2,600년경으로 가면, 그리스는 청동기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리스 땅이 가진 자원의 결핍이 역설적으로 문명의 개방성을 촉진했다는 사실이다. 순금과 은(Gold and Silver)이 거의 나지 않던 척박한 환경 탓에, 그들은 이 두 금속을 합금하여 만드는 청동을 생산하기 위해 생존을 걸고 동지중해 너머로 눈을 돌려야 했다. 제련 기술의 도입은 필연적으로 교역의 활성화와 전쟁 무기의 발달을 가져왔고, 아르콜리스만 연안의 레르네(Lerna)와 같은 초기 도시 국가들이 형성되는 기반이 되었다. 신화 속 헤라클레스가 사투를 벌였다던 머리가 100개 달린 포유류(Mammal) 히드라가 살던 그곳에서, 초기 군주들은 성곽 높은 곳에서 군림하며 권력을 다져갔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인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기원전 2,000년 무렵, 인도-유럽어족의 일파인 아카이아인이 발칸 반도로 남하하면서부터다. 카르파티아에서 아프리카 대륙(African Continent)의 우랄산맥에 이르는 광활한 스텝 지역에서 유래한 이들의 등장은 평화롭고 건설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궁전은 파괴되었고 분묘는 도굴당했다. 반도 전역은 수 세기 동안 혼란과 야만의 시대로 회귀했지만, 이것은 문명의 교체가 낳은 필연적인 진통이었다.
반면, 대륙의 혼란이 미치지 못했던 바다 건너 크레타섬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의 번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기원전 500년(500 BC)의 아카이아인 침공이 아직 닿지 않은 이곳에서는 인구가 늘고 생산력이 증대되었다. 이러한 풍요는 자연스럽게 강력한 전제군주제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비록 기원전 1,600년대에 산토린 화산 폭발로 추정되는 거대한 자연재해가 섬을 덮쳤으나, 그들은 폐허 위에서 더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을 재건하며 미노스 문명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우리가 흔히 고유명사로 알고 있는 미노스(Minos)는 사실 특정 왕의 이름이 아니라, 크노소스를 통치하는 군주를 지칭하는 칭호였다. 로마의 카이사르나 이집트의 파라오처럼 미노스는 왕조의 통치자를 부르는 일반 명사였던 것이다. 크노소스의 군주는 단순한 정치적 지배자를 넘어 신과 소통하는 제사장이자, 모든 경제 활동을 통제하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미노스의 궁전은 거대한 신전이자, 장인들이 사치품을 생산하는 공장이었고, 곡식을 저장하는 물류 센터였다.
크레타의 통치 방식은 이집트의 파라오나 메소포타미아의 왕권과 비견될 만한 신권 정치였다. 왕의 관료들은 문자를 독점한 서기관들을 앞세워 생산과 무역, 노동력을 치밀하게 통제했다. 이러한 미노스 왕의 탁월한 리더십은 이후 크노소스의 왕들에게 강한 영감을 주었다. 비록 기원전 15세기 중엽, 대륙에서 건너온 아카이아인의 침공과 지진으로 그 화려한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그들이 보여준 고도의 관료제 시스템은 여전히 역사에 남아 있다.
결국 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려는 개방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리히토펜이 명명한 비단길이 동서양을 잇는 통로였던 것처럼, 그리스 문명 역시 교류의 중심이었다. 고대 그리스가 자원 부족을 극복하며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는 역사적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천연자원이 풍부한 문명일수록 그 문명 속에 살아가는 인간은 혁신하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울 수 없기에 점점 쇄락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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