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릴리 Oct 20. 2022

헬스장 메이트


평소와 같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평일 오전시간임에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세계에서, 그리고 타인들의 세계를 살짝씩 엿보면서 몸을 움직이고 있었고 나 또한 그중에 하나였다. 


20대 초반부터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는 운동복의 중요성이다. 간과하기 쉬운 '의'의 영역은 확실히 조금만 신경 써주면 삶의 질을 높였고, 이는 운동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몸에 잘 맞는 예쁜 운동복을 입으면 그 자체로 힘이 생기며, 거울 속에 비친 내가 조금 더 멋져 보이면서 운동을 조금 더 열심히 하게 된다. 반면에 펑퍼짐한 헬스복을 입고하는 날에는 눈에 드러나는 게 없으니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게 되었다.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의 조화는 역시 운동의 세계에서도 적용이 되었던 것이다. 몸을 움직이면서 얻는 여러 가지 감각의 내적 동기와, 그 결과가 보이는 몸의 모습인 외적 동기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룰 때, 내적으로 혹은 외적으로만 치우친 경우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게 그 시간을 채울 수가 있다는 것을, 나는 운동 경력이 늘어날 때마다 조금씩 깨우치게 되었다. 


그럼으로 나는 운동을 갈 때 꽤나 고심해서 운동복을 고르는 편이다. 이날도 그랬다. 몸을 잘 보이게 해주는 레깅스와 탑을 입었다. 


하지만 이것이 언제나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레깅스를 입은 여성을 보면 대놓고 쳐다보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때때로 그 시선은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타협한 것은 알라딘 바지 같은 요가 바지를 입는 것이었다. 옷장 속 레깅스의 개수가 줄면서, 알라딘 같은 바지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것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약간 있었다. 아무래도 펄럭이는 바지는 운동할 때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헬스장에서 운동할 경우는 좀 더 그랬다. 


이날은 운동을 조금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날이었다. 가기 전부터 의욕에 차서 '오늘 후회 없이 하고 와야지!'하는 날 말이다. 그래서 알라딘 바지 대신에 레깅스를 입었다. 레깅스를 입으면 조금 더 긴장하게 되는 부분은 있다. 약간의 텐션은 집중도를 높여준다. 


그 집중도를 유지하며 에어팟을 끼고 운동을 하고 있는 데, 옆에서 운동하시던 아주머니가 말을 거셨다. 


"몸매가 참 예뻐요~" 


얼핏 내 쪽을 쳐다보면서 말을 걸려고 하신 것이 보였기 때문에 듣고 있던 팟캐스트의 소리를 줄여놓은 상태였다. 어떠한 적개심도 없는 눈빛이어서 나는 바로 에어팟 한 쪽을 빼고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얘기했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시작이 되었다. 지금 몸매가 참 예쁘니 지금처럼 열심히 운동하여 이 몸을 잘 유지하라는 것이 주된 대화였다. 


사실 이전 운동할 때는 아주머니들이 "이렇게 말랐는데 무슨 운동을 해요~" 하면서 칭찬 같지만 어딘가 기분이 찜찜한 얘기를 해주셨기에, 이 대화는 나에게 굉장히 신선한 것이었다. 지금의 몸을 가지게 된 것은 평소에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하게 먹기 때문인 것인데, 이것을 이미 가졌으니 운동을 하지 말라?라는 말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느꼈다. 그런데 거기에 반박하는 것도 피곤해서 그냥 웃으며 아- 감사합니다, 라고 대답을 했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의 말은 '지금 너무 잘하고 있네요. 앞으로도 이렇게 꾸준히 하세요! 멋져요!'라고 응원해 주시는 것처럼 들렸다.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아주머니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이 아주머니는 55살의 딸을 가진, 77세의 할머니였던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 에- 정말요? 라고 일본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되물었고, 할머니는 웃으면서 마스크를 내려 얼굴을 보여주셨다. 주름이 거의 없는 반딱반딱한 피부. 나이가 가늠이 안되는 눈빛. 


알고 보니 35세부터 꾸준히 운동을 하신 분이고, 지금은 갑상선 호르몬 문제 때문에 복부가 좀 늘기는 했지만 (본인피셜) 여전히 꾸준히 스스로를 돌보고 계셨다. 


"운동도 그렇고 뭐든지 자신의 몸에 적당하게 하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저분들에게 직접적으로 얘기는 안 하지만, 나는 저기 저 사람들, 무리해서 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 안쓰러워. 그렇게 스스로를 너무 푸시 하다 보면 다쳐요. 오래 못해요. 항상 자신에게 맞게 적당히 하는 게 맞는 거 같아..."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적당히. 힘빼기...왜 운동을 하는 지 그 근본적인 것을 자꾸만 살펴보기. 삶이 버거울 때면 자꾸 근본으로 돌아가 살펴보려는 습관이 있는 나는, 이 얘기가 '운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결국 삶 전반의 공통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런 얘기를 듣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나는 아주머니, 아니 할머니에게 얘기했다. 


"앞으로 운동할 때마다 선생님 생각날 거 같아요. 너무 멋지세요!" 


할머니는 웃으면서, 몇 마디 더 하시더니 그럼 운동 열심히 해요! 라고 유유히 사라지셨다. 


할머니가 지나간 자리에서 바벨을 들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것도 참 멋지지만, 그 어떤 편견의 눈도 없이 모든 것들 예쁘게 봐주시는 그 시선이 가장 좋았다,라고.


그리고 그 힘은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