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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쏭 Jan 23. 2023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그럼에도 또 하루 살아갈 수 있는 이유


요즘 본격적으로 시험공부해야 하는데 하염없이 알고리즘의 노예가 된 나 자신을 보며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022년 한 해를 돌아보면 시간이 정말 금방 지나간 것 같다. 지난 한 해는 영국에서 보낸 5년 차에 접어들기도 했고, 장기적으로 영국에 살 것을 고려하여 영국 공인회계사 자격시험 ACCA 회원을 등록하고 시험공부를 시작하기도 했다.


새롭게 시작한 것들이 많았던 만큼 결국에는 두려움과의 싸움이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함으로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채 당장 내 발아래만 바라보다가, 내 발 저 끝까지 내려가 스스로의 바닥을 보는 순간들도 있었다. 시험공부 스트레스 때문에 자존감이 바닥나기도 하고,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꾸준히 예배에 참석하고 계속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헌신하려고 애썼지만 그렇지 못한 순간들도 많았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내가 왜 이럴까 자책하기도 했다.


삶 속에서 갈등하던 많은 순간들을 지나 하나님이 내 삶에 더 관여하시도록 내 삶의 모든 부분들을 내어드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에는 삶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런 내 곁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사랑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내가 얼마나 사랑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지를 많이 느끼기도 했다. 마음이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을 지나 오히려 나에게 많은 성장을 가져다준 한 해였던 것 같다.




흐르는 시간들을 붙잡을 수 없기에 내 삶의 순간들을 조금이라도 더 소중히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기록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기록 자체만으로도 내 삶에 또 하나의 큰 힘이 되기도 했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마음으로 벼랑 끝에 써서 기도조차 나오지 않을 때, 기도하는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무언가가 일기 쓰는 것이기도 했다.


하루하루 정성 들여 사는 것이 내 삶의 모티브이지만 가끔은 내가 무얼 위해 살고 있는가 잠시 멈춰 서게 된다. 과연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에 이끌려 살아가는 삶인가? 아니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걱정으로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허둥지둥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일지라도 좋아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삶 역시도 세상의 기준으로 아무리 '잘'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본인의 삶을 사랑하고 매 순간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과 비교할 수 있을까.


보잘것없는 내 삶 구석구석에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결코 내 삶에 소망이 없음을, 오로지 하나님만이 소망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하나님의 함께하심 없이는 아무리 내가 발버둥 치며 열심히 산다 할지라도, 여전히 공허하고 여전히 막막한 이 시간들을 견딜 수 있을까.




"여호와께서 직접 너를 인도하시고 너와 함께하실 것이며 너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아라.” (신명기 31장 9절, KLB)


위 말씀은 올해 교회에서 뽑은 말씀 카드였다. 말씀 카드를 미신처럼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방 안의 거울에 붙여두었더니 하루 중 문득 우연히 이 말씀이 생각나기도 하더라. 해당 구절의 앞 뒤를 보면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으며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때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한 말씀이었다.


어젯밤 부모님과 영상 통화를 하다가 6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이 다시 한번 들었다. 믿음이라는 유산을 물려준 부모님이 내 인생의 멘토이자, 여호수아에게 모세가 있었던 것처럼 내 삶에는 부모님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오늘은 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용기를 주신다는 것과, 부모님이 사랑으로 나를 위해 항상 기도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기억할 수 있었다. 여전히 나에게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있을지라도, 그럼에도 또 하루를 기쁘게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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