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리 눈치채지 못해 미안.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지만 모든 것이 달라진 평범한 하루가 지나고,
그날 저녁 터져 나오는 말을 참지 못하고 두줄의 시약선이 선명한 사진을 양가에 보낸 후,
회사에 출근해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는데 아무렇지가 않아 어딘가 붕 뜬 기분.
누구에게라도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옆자리 동료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나 할 말 있어." 한마디를 던지고 비식비식 웃음을 흘리니
"대리님 설마!"라며 (웃으며 그럴 리 없는 농담처럼) 배 위에 손을 얹었고 난 여전히 비식비식 웃으며 끄덕끄덕
그리고 곧 화장실로 끌려갔다.
점심 대신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 촬영을 하니 이미 내 몸속의 아주아주 조그만 부분을 무단 점유하고 있는 검은 물체가 선명하다.
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산부인과 선생님의 따듯한 목소리
"축하해요"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 나를 보며,
"많이 기다리셨나 봐요."
하시는 선생님에게 "네"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왜 눈물이 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결혼 1년 차, 연애 2년 차 아직 준비가 아직 안되어있다고 생각했기에
명절 어른들의
"2세 계획은 있니?"
"앗, 그거 명절 금기어예요"
주변 동료, 친구들의
"아가는 언제?"
"글쎄, 아직 생각 중이야"
그냥 그렇게 넘기던 대화들,
이미 뱃속에서
"엄마! 저 여기 있어요!"라고 외치고 있었을 내 예쁜 아가.
엄마가 더 빨리 눈치채지 못해서 미안해.
+ 글을 쓰며 뻐끔뻐끔 옹알이를 하는 조그마한 입이 생각나 당장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