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심장이 뛰는 누구보다 느린 나.
임신을 하고 양가적인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한창 그라운드를 누구보다 빠르게 누비던 시절의 박지성이 '두개의 심장'을 가진 사람으로 불렸다던데 현재 내가 물리적으로 두개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 차이점은 난 그라운드는 커녕 일반적인 보도조차 누구보다 느리게 그리고 조심히 걷는다는 사실.
24시간을 몸속 아이와 함께 한다는 사실이 태어나서 처음 갖는 결속감을 갖게 만들었다. 동시에 세상에서 동떨어진 외로움을 느꼈다. 내가 아닌 '임산부, 산모님' 태그를 달게 된 순간이다.
처음엔 마냥 신기했고 불편했고 두려웠고, 하지만 '10개월 내내 이렇진 않겠지 언젠가 적응되겠지' 라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홀로 겁없던 내게 24시간 함께 하는 그 시간들은 새로운 단계마다 걱정이, 두려움이, 신비로움이 다양한 감정이 찾아왔고 적응이란건 없었다.
놀랍게도 적응한건 나를 제외한 모두이다. 병원에선 산모님 1, 회사에선 임산부 1, 가족들에게 예비 엄마가 되어 마치 ' 늘 임신한 상태 아니였어?'의 환장할 편안함 덕분에 유일한 부적응자의 환장한 불편함은 점점 커졌다.
한창 입덧을 하던 아마 5개월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게워내고 업무를 하고 집에 도착했다.
다시 속이 안 좋아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잡고 한참 게워내고 나오니 화장실 문 정면에 위치한 전자레인지에 피자가 돌아가고 있는게 보였다. 방음도 잘 되지 않는 20평대 아파트에서 아내의 게워내는 소리를 들으며 피자를 돌리는 편안함에 대한 화가 났지만 일단을 속이 안 좋아 침대에 잠깐 누웠다 다시 화장실에 달려갔다 나온 사이 냉장고 문을 열고 음료를 마시며 피자를 먹는 그의 모습에 결국 폭발했다.(무려 저녁식사를 회사에서 하고 온 후 야식으로 먹는 중이였다!)
회사에선 야근을 하며 먹는 배달음식이나 콜라를 보며, 점심시간에 마시는 커피를 보며 걱정 한마디씩. 야근을 하는 나를 보며 또 다시 걱정 한마디씩.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이런 주제를 올리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즐어들어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그냥 모두가 적응한거다. 임산부에게. 나를 제외하고.
임신을 해서 신체적으로도 불편하지만 병에 걸린게 아니니 슬프고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 축복해야 할 행복한 상황이라는 인식도 한 몫할 것이다.
축복받은 탄생의 마수에 걸려 마음껏 두려워할 수도 힘들어 할 수도 없어 슬픈, 하지만 두 개의 심장을 가진 행복한 임산부.
누구보다 결속되어 있고 누구와도 동떨어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