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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Sep 28. 2023

뮌헨 서점 탐방

후겐두벨

효율의 국가라는 선입견과는 다르게, 은행 갈 때 서류만 수십 장 챙겨가야 한다는 독일의 악명 높은 행정 처리에 지레 겁먹어, 카드 발급이 필요한 도서관 방문은 일찌감치 포기한 채, 저녁 식사 전 잠시 비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서점을 찾았다.



목적지는 독일의 교보문고라 할 수 있는 휴겐두벨(Hugendubel).


1893년 하인리히 후겐두벨이 뮌헨에서 연 작은 서점이 커져 현재는 독일 어느 대도시에서나 찾을 수 있는 대형 서점 체인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본점이 위치해 있는 뮌헨답게 매장만 10개에 달했는데, 그중에서 중앙 광장인 칼스플라츠(Karlsplatz)에 위치해 있으며, 구글 기준 리뷰가 가장 많이 달린 서점으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마리엔플라츠(Marienplatz)에 위치한 서점이 뮌헨 시내에서 가장 많은 외국 장서를 보유했다고 들었으나 (독어를 못하기에 읽으려면 영어로 된 책이 있어야 한다.) 칼스플라츠의 분수가 그리워 발걸음을 옮겼다. (걷기 귀찮았던 걸 이렇게 포장한다.)



밖에서 본 후겐두벨은 내부에 3층 높이의 서점이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초라하다. 그저 투박한 문 여러 개가 이어 붙여져 있을 뿐.



내부에 들어서면 입구가 좁다는 사실을 먼저 깨닫게 되니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구조.



가장 먼저 눈길을 잡아끈 것은 만화 코너였다.


하이큐 등 대표적인 일본 만화들도 있지만, 한국 웹툰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코스타리카에서도 목격되었던 나 혼자만 레벨업의 세계적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어찌 됐든 서점의 목표는 최대한 많은 책을 팔아 치우는 것이기에, 한 바퀴를 돌아야만 에스컬레이터를 탈 수 있는 백화점식 운영을 가져가고 있었는데, 흥미로운 점은 그렇다고 중앙에 계단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


누군지 몰라도 내부를 설계한 건축가가 영리했다 싶은 게, 계단을 이용하려면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쳐야 하도록 공간을 배분해 놓았다. 



2층의 절반은 아동/청소년 코너에 할당돼 있다. 머지않아 한국에서는 축소되거나 아예 사라질 코너지만, 출산율이 아직 1.5 수준인 독일에서는 여전히 상당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장난감도 적지만 배치해 놓았다. 다만 카페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에겐 좋다고 할 수는 없는 구성 아닐까. 문제집 혹은 교과서로 추정되는 책들이 많지 않은 것도 한국과는 차이를 보였다.


나머지 절반은 패션, 요리 등에 할당돼 있는데 관심이 없는 분야라 과감히 생략. 


한 층 더 올라가니 여행 코너가 나왔다. 



여행을 좋아하는 독일답게 가히 압도적인 규모.


층의 절반이, 서점의 1/6이 여행에 할당돼 있었다.



당장 가을 방학에 찾을 예정인 조지아의 카즈베기 산부터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이름도 모를 북마케도니아에 대한 책, 그리고 나미비아, 레위니옹, 세네갈 등 아프리카 국가를 다룬 서적들까지.



K-유니버스, 그리고 한국에 대한 책들도, 일본과 태국에 비해서는 적지만 몇 권 있어 괜히 뿌듯했다.


그럼에도 서점 규모 대비 어마어마했던 여행 코너보다 눈길을 잡아끌었던 것은 바로 영문 책 코너.



한국에서도 동일한 표지를 사용하는 밀란 쿤데라 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도 눈이 갔고,



장기 여행이면 늘 들고 다니며 읽는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도 보였지만,



거리 표지판을 활용한 셜록 홈즈 코너와



동북아시아 문학에 할당된 코너가 특히 신기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부터 '82년생 김지영', '파친코'까지. 몇 년만 지나면 아마 김영하 작가님이나 김초엽 작가님의 책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간다면, 김훈, 조정래, 박경리 작가님들의 책들도 들어설 수 있겠다.


영문판 책들에 대한 흥미를 돋우기 위해 표지 디자인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실제로 미국에서 판매되는 판본과는 달리 스페셜 에디션 개념으로 마케팅해 독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표지와 함께 출간된 책들이 많다고 하는데 - 물론 내가 책을 사랑해 마지않아서 일 수도 있겠지만 - 표지만으로 꽤나 매력적이라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책들이 많았다.



시사 코너나 경제 코너는 한국과 비슷했다. 


푸틴 대통령을 위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책들이 전진 배치돼 있다는 점이 전쟁에 대한 유럽인의 경각심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이어 오펜하이머에 대한 책들도 눈에 띄었고,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코로나 시대 이후 퍼져나간 자산 관리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시사했다. 


반도체 전쟁, 레이 달리오의 '변화하는 세계질서'까지 국제적인 베스트셀러는 어디서나 비슷하다는 게 확실히 다가왔다. 



서점에서 과제를 처리하며 시간을 죽이기엔 양심에 가책을 느꼈기에 (다 핑계고 과제가 하기 싫었다.), 결국 한국 돈으로 2만 원 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 '해변의 카프카'를 집어 들었다. 


이미 한국에서 5번 정도 읽은 책이지만, 한국처럼 상하로 구분된 것이 아닌 통합본으로 출간된 모습이 묘하게 매력적이었고 (한 번에 소화시킨다는 성취감이 있다.) 무엇보다도 고양이와 인간의 얼굴을 결합해 녹여낸 표지가, 검은색, 흰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추가적으로, 작가가 일영 번역을 하기에 비록 다른 번역가의 손을 거쳤더라도 의도가 비교적 분명히 반영돼 일한 번역보다는 의미가 충실히 전달되지 않았을까 싶어 구매한 것도 있지만, 사실 다 변명이고 그냥 마음에 들어서 샀다.


두 시간 정도 책을 읽다 보니 칼스플라츠에 밤이 내려앉았고, 책을 뒤로한 채 서점을 나왔다. 




세계 독서기행이라는 오래된 꿈이 있다. 


물론 출산율은 낮음에도 '문제집'이 빼곡히 들어선 한국의 서가와 '놀이'에 집중한 독일의 서가를 비교하고, 하나의 콘텐츠로서 한국 문화가 차지하게 된 위상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유의미한 일이겠지만, 


어찌어찌 시간이 남아 찾게 된 뮌헨의 후겐두벨은 독서기행이라는 오랜 꿈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웬만한 여행자라면 뮌헨에 들러 서점을 찾지 않으리라는 배덕감으로 말미암아 좋았다. 


칼스플라츠와 마리엔플라츠는 플라츠라는 이름에 걸맞게 호프브로이 하우스를 찾거나 뉴타운 홀을 찾게 될 경우, 필연적으로 지나칠 수밖에 없는 중심가에 위치해 있다. 


굳이 책을 사야 하는 것도, 의자에 앉아 진득이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니 한 번쯤은 짬을 내 찾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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